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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지는 삶에서 빛과 그림자를 본다

by 윤해



2024.06.02

삶은 능동태일까 아니면 수동태일까 어느 한쪽으로 정의되지 않는 복잡성을 띠고 있는 것이 삶이기에 우리는 혼재된 삶 한가운데 놓이며 이리저리 방황하며 수습하고 사는 것이다.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시절에 들었노라는 유행가 가사 마냥 우리네 인생은 한번 가면 언제 다시 올 줄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렇기에 한 번뿐인 인생 멋지게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며 분투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나름대로 아등바등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인생은 나 자신의 개인적 노력으로 살아가는 능동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개인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엄청난 사태, 예를 들면 전쟁과 테러에 직면한 한 개인의 삶은 공포에 떨고 맥없이 사라져야 하는 수동태로서의 한 가련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쟁의 광기가 온 지구촌을 뒤덮고 그 파고가 서서히 지구촌을 덮치는 상황이다. 전쟁의 상황이 전후방이 없고 군인과 민간인이 없으며 남녀노소도 없어지는 갈수록 흉포화 되고 무도화되어 이게 전쟁이라기보다는 치졸한 대규모 테러라고 불러야 그 진상이 보인다.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는 휴전 70년을 지나고 있는 우리로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를 머리에 지고 일상의 평화를 당연시하면서 나름 능동적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더 평화로워야 하며 더 안전해야 하며 더 이상적이고 완벽해야 한다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싸우고 주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이 알 수 없는 평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이 끝 모를 분열이 어디까지 갈지 그리고 완벽한 평화가 그저 말과 구호로서 달성될 수 있고 상대의 선의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참상은 왜 일어난 것이냐고 묻고 싶다.

나나 나라나 개인이나 국가나 힘의 균형이 팽팽할 때는 평화가 유지되고 힘의 균형이 깨어지면 전쟁과도 같은 참상이 벌어진다. 평화시 개인의 삶이 능동태라면 전쟁 중 나의 삶은 오로지 행운에 기대는 수동태적 삶이다.


피는 피를 부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쟁, 아니 이러한 극악한 테러 앞에 놓인 개인의 미시사는 목적달성에 혈안이 되는 목표지향적 삶을 사는 지구촌의 공적들에게는 쓰다 버리는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살아가는지 사라지는지 모를 삶을 하루하루 살고 있는 이의 일상은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고 , 강 건너 불구경 중인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가짜 평화의 빛만 환하게 보인다.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는 능동적 행동으로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선 우리들에게 주어졌던 70여 년의 오랜 평화가 결코 녹록지 않은 힘의 균형을 바탕으로 전쟁억지력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젊은이의 땀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우리의 평화를 지키는 첫 단추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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