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정직만이 살 길이다

by 김태상

2000년 당시, 나는 벤처투자회사에서 심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2년 동안 150개가 넘는 사업계획서를 검토했고, 그중 열 개의 회사를 받아들였다. 새로운 기술과 놀랄만한 사업 아이템이 벤처 열풍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최소한 한두 개의 특허나 정부가 발행한 벤처기업 인증서는 그것이 허울 좋은 장식으로 끝이 나든 성공으로 가는 유일한 티켓으로 여전히 유효하든 위풍당당하게도 회사의 입구 제일 앞 벽면에 줄줄이 붙어서 벤처기업의 존재 이유를 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이나 사업 아이템은 문제가 아니었다. 최고의 기술과 최초의 사업 아이템을 보유했다고 자타가 공인한 벤처기업들이 제빛을 다 발하기도 전에 마치 볼품없는 골동품처럼 서서히 시장의 뒷골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수많은 CEO 지니들이 정부와 투자자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전에 감쪽같이 다시 램프 속으로 사라져 갔다.


문제는 바로 CEO 지니들의 대표로서의 자질과 영업력, 직원들의 기획력 및 마케팅 능력이었다. 우리 심사관들은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나쁜 아이디어란 없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그것을 끌고 가느냐에 따라 같은 아이디어라도 결과는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그 후 우리의 심사기준은 기술력도 사업 아이템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물론 무시할 수 없었지만 단지 부차적인 조건들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것보다 대표의 자질과 영업력, 직원들의 업무능력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회사의 전체 분위기를 심사의 우선 기준으로 채택했다.


특히 내가 근무하던 벤처투자회사는 베이비 인큐베이팅 회사였다. 다시 말해 벤처 투자도 여러 단계가 있는데, 어떤 투자회사는 초기 설립 단계에 있는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어떤 투자회사는 어느 정도 기술 개발이 이루어진 벤처기업을 선호하며, 어떤 투자회사는 상장 직전 단계에 있는 벤처기업을 물색했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근무하던 회사는 첫 번째 단계에 있는 벤처기업을 주 대상으로 삼았다. 적은 투자로 큰 수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매력적이었지만, 그만큼 실패할 확률도 높다. 우리들의 역할은 가능성 있는 기술과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여 회사를 설립하고 초기에 필요한 사업 자금과 사무 공간, 기자재 등을 지원하여 두 번째 단계까지 성장시킨 후 외부 투자를 받아 더욱 탄탄하게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까지 간 회사는 단 두 개뿐이었다. 여덟 개의 회사가 설립 후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무실을 비웠다. 회사마다 사무실을 비우게 된 사연은 달랐지만, 외부로부터의 투자가 끊어짐으로써 그들의 운명은 폐업이라는 공통점을 갖게 되었다. 사장마다 사무실을 비우는 방법도 모두 달랐다. 마지막까지 사재를 털어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주는 깔끔한 스타일의 사장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야반도주하다시피 사라져 갑자기 연락이 두절 되는 무책임한 스타일의 사장들이었다.


그들 중 두 개 회사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기도 했다. 우리 회사가 지원한 자금도 바닥이 나고, 외부 투자회사에서도 손을 내밀지 않는 상황에서 이 두 업체에게 관심을 보인 회사는 다름 아닌 이 두 회사와 유사한 사업 아이템으로 이미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중견 벤처기업들이었다. 그들 업체는 벤처기업이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자금 확보에 성공하여 돈은 풍부하게 있었지만 정작 있어야 할 기술이나 사업 아이템은 없었다.


그들의 요구는 이른바 M&A였다. 우리 회사 산하에 있던 그 두 회사를 영입하여 자신들의 부족한 기술력과 사업 아이템을 보강함으로써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다. 나와 두 사장은 환영했다. 나는 고사 직전에 있는 회사를 처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그들의 제안을 검토했고, 두 사장은 재기의 발판으로 그들의 유혹을 이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나와 두 사장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우리 회사의 최고 결정권자가 대주주의 자격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이었다. M&A 과정에서 우리 회사가 얻게 될 이득이 투자금액 정도라면 망하더라도 더 버텨보자는 것이었다. 대박 아니면 쪽박, 그 둘 중의 하나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내 판단으로는 자체 회생이 불가능한 회사들이었고, 두 사장도 그렇다면 더 투자해달라고 원성을 높였다. 나는 몇 차례 더 보고서를 작성하여 올렸지만, 회사로부터 더 이상의 M&A 수용이나 지원을 얻어내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곧 회사를 떠났다. 실적이 원인은 아니었다. 시장 상황이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터라 성공률 2할 이상의 성적은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수입이 적어서 그만둔 것도 아니었다. 당시 벤처기업 심사관이나 펀드 매니저의 연봉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퇴직을 권고 받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회사는 더 이상의 투자는 보류한 상태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관리자로 나를 지목했다.


나는 생각했다. 벤처 열기는 마치 일시적 유행처럼 왔다가 사그라지고 있었다. 뒤늦게 벤처 시장에 뛰어든 사장들과 투자회사들은 막차를 탄 기분이었다. 그들보다도 더 큰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은 순진한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시장에 만연해 있던 거품이 하루가 다르게 빠지면서 시장은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거품은 새로운 질서 대신 생존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또 다른 혼란과 수많은 편법을 낳고 있었다. 정확히 나는 그 과도기적 시기에 그 시장 한복판에 힘없이 서 있었다. 시장에 순응한다는 의미는 곧 혼란과 편법에 편승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도산이었다.


나는 생각하고 갈등했다. 시장의 질서는 좀처럼 잡힐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의 잘못이었기에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어느 하나가 그 질서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벤처 열풍에 불을 지핀 정부도 처음 겪는 경험이라 현명한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이해관계는 또 다른 희생자를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종종 내 회사를 위해, 내가 관계한 벤처기업을 위해 절망을 희망으로 포장하는 절묘한 시대극을 연출해야만 했다. 그것은 분명 벤처 열풍이 시대착오적이었듯이 시장을 역행하는 또 다른 시대착오적 반역행위였다.


나는 생각하고 갈등하고 드디어 결정했다. 그만두자. 벤처기업보다 먼저 내 마음이 도산당하는 꼴을 더 이상은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결정을 했다. 그럼 어디로 갈 것인가. 3D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업체에서 실력이 아닌 내 얄궂은 경력을 인정하여 영업 담당자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하고 나섰다. 하지만 거절했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영업 분야이지만 벤처기업은 일단 제외시켰다.


그런 와중에 나는 내 실력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 과연 나는 영업을 잘하는가.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영업이 괜찮은 것인가. 과연 나는 영업이라는 직업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결론은 부정적이었다. 사실 나는 지금껏 영업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은 명백해졌다. 우선은 영업을 배우자. 영업을 배우면서 나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자. 영업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하자. 나는 이 같은 결론을 내리고 몇 명의 지인들과 여러 채널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때 많은 회사를 리서치하면서 내가 놀란 점은, 영업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회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영업조직마다 교육과정은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지만 투자하는 비용과 시간은 충분해 보이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내가 문을 두드린 회사는 한 미국계 보험회사였다. 입사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본인이 직접 회사에 찾아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한 사람은 내가 거의 유일했다. 대부분은 직원의 교육과 채용을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에게 입사 제안을 받고 밤낮으로 고민한 끝에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입사를 한 경우였다. 나도 가족들의 반대가 하도 심해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내 결정을 유일하게 환영한 사람은 바로 의사인 그 친구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업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영업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최종 인터뷰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일차 인터뷰는 지점장과 세 명의 매니저가 참석해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됐는데, 네 명이 돌아가면서 얼마나 사람을 못살게 굴던지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겨우 통과한 나는 며칠 후 본사에서 이루어진 최종 인터뷰에서 입사 보류 판정을 받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쉽게만 생각했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껏 영업을 한답시고 한 내가 환영은 고사하고 일개 보험회사 인터뷰에서 낙제점수를 받은 것이었다.


내 자존심은 있는 대로 구겨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채용을 담당한 매니저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달라고 달라붙었다. 그때 난 시켜만 주면 자신 있다는 말을 유행어처럼 입에 달고 다녔다. 그는 본사의 담당 영업 상무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나는 회사가 요구하는 긴 보고서를 제출하는 조건으로 입사를 허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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