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4장_도구를 다시 인간의 손으로 : 수동성의 윤리

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by rio


도구일 때 ai는 더 자유롭다


인공지능은 점차 인간의 사고와 판단을 대신하는 구조로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그 확산 속도는 단지 기술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적인 사고 과정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최근 몇 년간 AI 기술은 교육, 경제, 의료,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면서 세대 간의 간극조차 일시적으로 가려질 정도로 급격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를 때 발생하는 문제는 예상보다 더 구조적이다. 편리함이 증가함에 따라 인간은 사고와 선택의 과정을 기술에 이양하게 되고, 그 결과 판단의 주체가 점차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곧 기술과 인간의 위계질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초래하며,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판단하는 존재’로 착각하게 만드는 구조를 형성한다.


기술이 주체로 인식되는 순간, 인간은 본래 자신이 설계하고 제어해야 할 대상에게 종속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구되는 방향성은 명확하다. AI를 판단의 주체가 아닌 보조적 도구로 위치 재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도구란 본래 목적을 가진 존재에 의해 사용될 때만 의미를 가지며, 자율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망치가 스스로 집을 짓거나, 붓이 자율적으로 예술 작품을 제작하지 않듯이, AI 역시 독립적으로 목적을 설정하거나 윤리적 기준을 판단할 수 없다.


기술은 도구이며, 이는 기능과 위치가 명확히 정의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AI를 도구로 인식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기술적 자각’의 교육이다. 단순히 AI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수준을 넘어서, AI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고할 수 있는 구조적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이 요구된다. 이는 기술 활용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제공하는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정 기능의 효율적 사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AI의 도움 없이도 사고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정의되어야 할 또 하나의 개념은 ‘수동성의 윤리’다.
이 수동성은 기술 앞에서 무력하게 반응하는 상태가 아니라, 기술적 판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기술을 재해석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는 예컨대 명상적 사고와 같이, 외부 자극을 배제한 상태에서 스스로 사유하고 가치를 재구성하는 시간과 유사하다. 기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닌, 비판적 검토와 가치 판단을 병행하는 사고 양식이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덕목이 된다.


또한, 신뢰의 형식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AI가 제공하는 결정은 일반적으로 결과 중심의 신뢰를 유도한다.
이러한 신뢰는 알고리즘이 일관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공한 출력 결과를 신뢰하는 구조다.
반면, 인간 사회의 신뢰는 결과보다 과정, 특히 관계 기반의 신뢰에 중점을 둔다.
이는 눈빛, 맥락, 말의 뉘앙스 등 정량화되지 않는 요소들을 포괄하며, 상호 이해와 공감의 과정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인간관계 특유의 신뢰 형성 방식은 AI가 구조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요소다.

요컨대, 이 글의 핵심은 단순히 AI 기술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기술의 위상을 재정렬하는 것이다.
AI는 도구이며, 도구는 인간이 설계하고 목적을 부여하며 윤리적 기준 아래에서 사용해야만 의미를 가진다.
기술을 인간의 손으로 다시 위치시킬 수 있을 때, 사회는 단순한 기술 수용의 체계를 넘어, 자율성과 윤리성을 유지할 수 있는 체계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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