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AI가 경제와 사회 전반의 의사결정 구조를 빠르게 장악하면서, 다수의 노동자와 일반 시민은 점차 ‘판단 과정’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결정은 알고리즘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알고리즘이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어떤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성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대다수는 결과만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위치에 머무르게 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설명 없는 결정을 받아들이는 구조에 익숙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판단과 참여의 능력은 축소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편리함이 증가했지만, 이는 인간 고유의 인식 능력과 사회적 감각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동반한다.
따라서, 기술의 자동화 속에서 회복해야 할 첫 번째 능력은 ‘저항’이다.
여기서 말하는 저항은 기술 자체에 대한 거부나 부정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적 효율성에만 의존하지 않는 능동적인 감각의 유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계산기에 의존하지 않고 손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보는 행위, 자동번역기에 기대지 않고 직접 단어를 학습하려는 시도, 배달 애플리케이션 대신 직접 시장을 방문해 상품을 고르는 선택. 이러한 느린 행동들은 비효율이 아니라 감각의 자율성을 보존하는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술의 일상화는 인간 감각을 단순화하고 표준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음식의 선택은 맛이 아니라 클릭 수에 의해 결정되며, 감정 표현은 실제 표정이 아니라 이모티콘으로 대체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감각은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통해 간접화되고, 신체적 경험은 축소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다수가 회복해야 할 핵심 역량은 감각의 사고화, 즉 경험을 능동적으로 인식하고 구성하는 역량이다.
손으로 사물을 만지고, 실제 표정을 관찰하고, 목소리의 미세한 차이를 인지하는 활동은 인간의 사회적 기능과 연결되어 있으며,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감각의 회복은 결국 인간성의 복원과 연결된다.
인간성은 단순히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수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실수와 오류를 통해 반성하고, 타인의 상황을 고려하여 조율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능력이다. AI는 고도화된 판단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 판단은 정량화 가능한 정보에 국한되며, 감정적 고려나 도덕적 책임은 포함되지 않는다.
AI는 계산은 가능하지만, 신뢰를 구성하거나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성은 이 공백을 채우는 구조적 기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 사례들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미국 일부 주에서 도입된 범죄 예측 알고리즘은 과거 범죄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지역, 특히 흑인 인구가 밀집된 커뮤니티를 집중 감시 대상으로 분류했다. 이 알고리즘은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이었지만, 그 결과는 편향된 감시와 사회적 불신의 확대였다. 또한 금융권에서는 과거 채무 이력을 바탕으로 신용도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데, 이 역시 역사적으로 구조적 불이익을 받아온 집단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함으로써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들 시스템은 기술적으로는 정합성을 갖추고 있었으나, 사회적 정의와 윤리적 가치에서는 명백한 결함을 드러냈다.
이러한 사례들이 보여주는 핵심은 명확하다. 기계적 효율성과 윤리적 정당성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AI의 결정은 실시간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실수 이후의 반성, 그리고 그 반성을 토대로 한 사회적 개선이라는 구조를 통해 문명을 형성해 왔다.
후회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학습과 개선을 위한 사회적 자산이다. 따라서 기술 주도의 속도 체계 속에서 ‘느림’은 비효율이나 퇴행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사회적 관계의 기반을 복원하기 위한 핵심적인 전략이다. 속도가 아니라 대화의 지속성, 신뢰의 축적, 판단의 공동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 구조가 필요하다. 기계적 판단이 아닌 인간 중심의 판단이 작동하는 사회에서만, 인간성은 기능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잊힌 다수가 회복해야 할 가치는 단순한 기술 저항이 아니라, 관계와 신뢰의 구조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식량, 대화, 신뢰와 같은 고정된 가치는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삶의 핵심 요소로 작동해 왔다.
기술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인간이 스스로의 사회적 구조를 재정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AI가 만들어낸 자동화된 효율성에만 의존하는 사회는 기술적 완성도는 확보할 수 있어도, 사회적 정당성은 지속적으로 위협받는다. 따라서 인간은 기술의 판단을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되, 사회적 판단의 중심은 여전히 인간의 책임 하에 유지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잊힌 다수가 보존해야 할 윤리적 기반이며,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가능케 하는 핵심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