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타일'처럼 붙여질 수 있을까

by rio

나는 직장인이면서 동시에 사업자를 가진 투잡을 뛰는 사회인이다.

다만 직장에서는 주거 인테리어의 현장 담당 소장으로, 사업자에서는 상가 인테리어의 대표로서 1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직장에서 겸직을 동의하고서 스카웃된 개념이라 생각보다 큰 허들없이 현장들을

처리하고 있다. 다만 아무래도 직장의 책임감이 더 중요하기에 주거에 집중하고 있고, 덕분에 사업자로 들어오는 현장들은 정말 지인의 추천이나 과거 고객님들의 또다른 매장일 경우에만 1년에 4~5개 정도만 도와드리고 있다.


그 와중에 하필 이번 달부터 직장 내 주거 프로젝트로 달에 3건, 내 사업자로 요청주신 건 2건하여 총 5건을

혼자서 처리하고 있다보니 최근 2주 정도는 거의 좀비처럼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이야 공사의 중반기에 다다른 상황이기에 한 숨을 돌릴 수 있지만, 지난 주 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잠을 하루에 5시간도 못자고 나아간 것 같다.


이런 상황에 있다보면, 내 생활패턴이 의도와 다르게 마구잡이식이 되거나 항상 하던 나만의 루틴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오늘과 같은 가만히 앉아 생각에 빠지는 글쓰기나 체력을 기르기 위한 헬스나 스포츠 등은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루틴 중 1순위에 속하곤 한다.


물론 어떠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나의 일상을 지켜내는 그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언제나 상기하고 지내고 있다. 하지만 사람 맘이란 것이 현실과 타협하고, 당장의 달콤함이 미래의 부유를 잊게 해주는 것이지 않겠는가?





이런 '나'의 우유부단함과 타협성을 보다보면, 융통성이란 것에 대해 반문이 생기곤 한다.

과연 융통성이 허락하는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가장 지향해야할 융통성은 배제가 아니라 최선의 맞춤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인테리어 공정 중에 타일에서 비슷한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타일은 다른 공정에 비해 재단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많이 적용되는 공정 중 하나이다.

특히 목공이나 콘크리트 벽 등 다양한 구조물의 모양을 그대로 따서 붙여야하기 때문에 타일공의 숙련도의 기준이 재단의 세심함에서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욱이 소비자도 작업자도 그리도 나와 같은 감리자도 이 재단의 숙련도에 따라 마감의 퀄리티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가장 눈여겨보곤 한다.

하지만 사람은 항상 한 쪽 구석에 간사함을 품고 사는지라 실리콘이나 메지로 가릴 수 있을 만한 사소로운 재단들은 간혹 배제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금 당장에는 눈엣가시가 되지 않을지라도 결국엔 마감 공정까지 두고본다면, 재단면들의 아쉬운 각들과

두꺼운 선들이 전체 인테리어 리뷰에 큰 영향을 끼친다.


소비자들은 인테리어회사가 이것 저것 서비스 해준 것들과, 당연히 잘 되어야하지만 꼭 확인해야하는 단열이나 방수 등의 기초 공사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 분야에서는 알고 있는 정보고 적고 시각적으로 바로 보이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감에 대해서는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조금만 디테일한 소비자를 만난다면

과거 융통성이라는 명목 하에 방치하고 배제시킨 마감들이 오히려 큰 화로 되돌아 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나'도 이 점을 항시 생각해야한다.

내가 지켜야만 하는 하나의 루틴, 혹은 계획 등 어떠한 요소에 대해

'오늘은 괜찮을거야.' 라는 융통성이란 허명에 덮어씌워 안일한 대처를 한다면, 결국 후에 이르러

이를 꾸준히 지킨 타인의 경험치 레이어와 '나'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게 될 것이다.


내 하나하나의 행동을 타일 한 장 한 장으로 생각해보자.

한 장 한 장 빠짐없이 그리고 최선을 다해 붙여 나가야, 클라이언트가 만족해 하는 결과물로 귀결되는 것처럼

하루하루 빠짐없이 최선을 다하는 나날들을 보낸다면, 결국 사회 누구나 원하고 찾는 사람으로 반모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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