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조롱하는 (일부) 교회와 목회자, 평신도의 소견

제사가 아닌 정의와 공의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사자후에 귀 기울여야

by 어나미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더 이상 영혼의 안식처가 아닌 듯하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과 종교계의 지표들은 가히 충격적이다. '2023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한국 성인 중 종교가 없는 '무종교인'의 비율은 무려 60%를 넘어섰다. 2004년 40%대였던 무종교 비율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개신교의 하락세는 독보적이다. 한때 20%를 상회하던 개신교 인구는 이제 15% 선까지 위협받고 있으며, 매년 수십만 명의 성도가 교회를 떠나고 있다.


특히 미래 세대인 2030 청년층의 이탈은 '종교적 멸종' 수준이다. 20대 청년 중 개신교인의 비율은 10% 초반까지 추락했다. 청년들은 교회의 배타성, 세속화, 그리고 언행불일치를 등을 돌리는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그들에게 교회는 이제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 비상식과 꼰대 문화의 발원지로 전락해 버렸다. 기독교인으로서 신자가 줄어드는 현상은 뼈아픈 일이지만, 솔직히 말해 "그럴만했다"는 자성도 하게 된다. 한국 교회의 세속화와 우경화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 보인다.


청년 시절,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따랐던 두 분의 목회자가 있었다. 당시 설교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그분들의 설교를 반복해서 듣곤 했다. 그중 한 분인 곽ㅇㅇ 목사님은 이후 MBC <PD수첩>을 통해 드러난 실상이 충격적이었다. 최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고, 겉으로는 세습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아들에게 교묘하게 자리를 물려주는 가시적이지 않은 세습을 단행했다. 그 순간, 내 영혼을 울리던 그분의 메시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나는 더 이상 그분의 설교를 찾지 않게 되었다.


또 다른 한 분은 70년대 빈민촌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던 김ㅇㅇ 목사님이었다. 그분의 책을 읽고 가슴이 뛰었고 그의 뜨거운 사랑과 열정에 감복해 20대 말에는 그분이 운영하시던 공동체에 수련생으로 참여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어느새부터인가 뭐가 잘못됐는지 그분의 행보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소외된 이들을 향한 사랑보다는 극단적인 정치적 발언만이 기사를 장식한다.


2024년 말부터 한국 사회를 뒤흔든 계엄 논란 속에서 드러난 일부 목회자들의 태도 역시 나를 깊은 충격에 빠뜨렸다. 이미 알려진 몇몇 극우파 목사님들의 말도 안 되는 발언은 그렇다 치자. 언론인 출신으로 강남에서 성공적으로 개척해서 많은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었던 조ㅇㅇ 목사님이 "계엄령 선포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것을 듣고 사실 굉장히 놀랬었다. 최근에는 유명 설교자 박ㅇㅇ 목사님이 은퇴 과정에서 설교할 무대가 사라진다면 "자살하겠다"는 말로 성도들을 위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신도도 입에 올리기 어려운 그 단어를 목회자가 공개된 자리에서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분의 설교가 그동안 내게 아무리 천사의 말처럼 들렸을지라도 이제는 그저 '울리는 꽹과리'로밖에 들리지 않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의 위기는 단지 몇몇 지도자의 개인적 타락만으로 초래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성장주의’라는 이름 아래 숫자와 건물, 영향력을 신앙의 성패 기준으로 삼아왔다. 목회자 양성 시스템은 영성보다 리더십을, 섬김보다 조직 운영 능력을 강조했고, 대형 교회 중심 구조는 권력 집중과 세습까지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교회가 사회적 약자보다 정치권력과의 연대를 통해 영향력 확보를 위해 했던 몇 번의 최악의 선택은 오늘날 교회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개신교의 흐름을 주도해 온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 역시 현재 깊은 자기모순의 늪에 빠져 있어 보인다. 도덕적 결함이 뚜렷하고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트럼프라는 인물을 왜 그토록 지지해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낙태 반대나 동성애 반대라는 특정 프레임을 지키기 위해, 정작 성경이 강조하는 겸손과 정직,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근본적 가치를 내팽개친 꼴로밖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개신교를 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인 '번영신학'은 신앙의 약이 아닌 독이 되었다. 조엘 오스틴(Joel Osteen) 목사는 저서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을 통해 전 세계에 '번영신학'을 전파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수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정작 성경이 그토록 강조하는 '죄'와 '회개',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은 빠져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값싼 긍정주의가 복음으로 둔갑되어 찬양되고 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기복주의와도 닮아 있다. 이런 기복주의는 신앙을 목적 아닌 현실적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리고 말았다.


지금 이런 교회와 지도자들을 보며 과연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형식에만 치우친 얘배를 단호히 거부하신다. 이사야 1장 11절에서 17절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외침은 분명하다. 정의를 방치한 채 형식적이고 화려한 예배만 드리는 것을 책망하고 계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
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성전 밖에서 약자를 압제했던 기득권층의 예배를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아모스 선지자 역시 제사보다 공의를 먼저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이렇게 대변했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1-24)


하나님의 본심은 호세아 6장 6절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여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애(히브리어 헤세드, חֶסֶד)'란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머무는 종교적 열심히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자비와 긍휼로 흘러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예수님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비난하자, 구약의 이 구절을 인용하시며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를 비판하셨다.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가서 배우라(마태복음 9:13)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 이웃을 향한 긍휼이 빠진 예배는 절대 기뻐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짜 예배는 웅장하고 멋진 건물이나 화려한 설교가 아닌 우리의 삶이 중심이 되는 예배다. 성전 문을 나선 이후의 일상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 또 교회는 권력 지향에서 벗어나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강자의 편에 서서 기득권을 옹호하는 대신,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고아와 과부, 소외된 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번영신학이 부르짖는 현세의 성공과 승리에 도취되는 대신,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낮아지며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세습과 비리, 정치적 편향에 오염된 값싼 예배를 멈추어야 할 시간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힘과 돈을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돌아보고 제자리로 돌아올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의 빛과 소금 되는 하나님의 진정한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에필로그 : 제가 쓴 글은 전체 개신교를 비판하는 글은 아닙니다. (제 기준에서) 모범을 보이지 못한 일부 교회나 목회자를 향한 글입니다. 결코 개신교 전체에 반감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제 의견이 틀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공간은 어찌 보면 사적인 공간일 수도 있으니 혹시 제 글이 본인의 의견과 많이 다르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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