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Ⅲ. 교실을 울린 크레셴도

베토벤 연주에 눈물 흘린 선생님

by 조윤미
‘베토벤,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

나는 연주와 해설 공연을 시작할 때,

항상 먼저 작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려면, 음악이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와야 한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무심히 건네는 한마디처럼, 그 순간에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나는 그 소리를 붙잡아 질문으로 바꾸고, 청중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길 바란다.

그런 음악 속 대화는 내 삶에도 오래 남는다.

'베토벤'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오래된 친구였다.

심한 좌절과 어둠 속에서 외롭고 지쳐 있을 때, 그는 언제나 조용히 내 편이 되어주었다.

그의 피아노 작품은 단순한 음표가 아니었다.

절망의 문턱에서 다시 걸음을 떼게 해주는 손길이었고, 세상의 소음 속에서 내 안의 고요를 되찾게 해주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연주와 이야기를 함께 들려달라고 청하면,

나는 여전히 조심스러우면서도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낀다.

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은 질문 - 마음에 파문’

그러던 어느 날,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교사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였다.

내가 유독 부담을 느끼는 청중이 있다면, 바로 교사 선생님들이다.

학생들의 눈빛을 매일 마주하며 가능성을 북돋아 주는 분들이 아닌가.

그 앞에 서는 순간, 내 이야기가 과연 충분히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지,

그들의 삶과 교차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마치 더 단단한 울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숙제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교실 문을 열자, 열댓 명의 선생님들이 앉아 계셨다.

젊은 선생님들의 맑은 눈빛 사이로, 연세 지긋한 선생님들의 잔잔한 미소가 어우러졌다.

나는 차분히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피아니스트 조윤미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베토벤, 넘버원(Number 1)이 아닌 온리원(Only 1)’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연주에 앞서 말을 이어갔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을 지도하시느라 참 고생 많으셨지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싸우고 우는 소리, 고자질 소리, 의자와 책상 끄는 소리까지...

종일 들으시느라 귀가 지치셨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모든 소리를 잠시 내려놓고, 베토벤의 음악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마음이 열리길 기다리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모두에게 익숙한 멜로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곡이었다.

연주가 흐르는 동안 공기는 따뜻해졌고, 이내 차분해졌다.

함께 듣는 분들의 마음이 서서히 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많은 소리들 속에서,
나는 어떤 소리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면 좋을까?’

약 5분 남짓의 음악이 지나간 뒤,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첫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방금 들으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은 베토벤의 귀가 심각하게 손상되기 직전에 쓰인 작품입니다.

이 곡이 세상에 나온 몇 년 후, 그는 결국 소리를 완전히 듣지 못하게 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오히려 내면 깊은 음악을 끝내 찾아내고 창조했습니다.

사실 우리 선생님들의 하루도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투정, 떠드는 소리에 둘러싸이다 보면,

마음이 지칠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우리는 문득 이렇게 질문하게 됩니다.

‘이 많은 소리들 속에서, 나는 어떤 소리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면 좋을까?’

오늘은 그 답을 음악 속에서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내가 연주 후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선생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곱씹듯 앉아 있었고,

또 누군가는 두 손끝을 꼭 맞잡으며 마음속 깊은 울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타인의 소리 - 진정한 온리 원’

나는 확신을 담아 목소리에 힘을 싣고 말했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내면의 소리를 끝내 붙잡아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을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타인의 소리’입니다.

음악가로서의 길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음과 물질로 묵묵히 함께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베토벤은 단순한 최고인 ‘넘버원(Number 1)’을 넘어 진정한 ‘온리원(Only 1)’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이어 다음 곡을 소개했다.


“다음 들려드릴 작품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입니다.

베토벤의 든든한 후원자,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된 곡이지요.

그는 베토벤에게 ‘하이든에게서 모차르트의 정신을 이어받으라’라며,

한 젊은 음악가가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흔들림 없는 울림을 건네주었습니다.”


나는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숨을 고르며 덧붙였다.


“잃어버린 청각을 넘어 내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베토벤의 소리,
그리고 그의 곁에서 함께 울려 준 이들의 소리가 합쳐져 오늘 우리가 듣는
감동스러운 음악이 된 것입니다.”


‘발트슈타인’의 첫 화음이 교실을 채우자, 음악과 해설은 40분 가까이 쉼 없이 흐르며 이어졌다.

마지막 화음을 내리고 청중을 바라보는 순간,

한 연세 있으신 선생님이 흐느끼며 눈물을 쏟아냈다.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무슨 일이지? 내 연주와 이야기가 혹시 잘못 전해진 건 아닐까?’

모두들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선생님이 황급히 휴지를 건넸다.

교실은 숨조차 죽인 듯 고요했다.

잠시 후, 그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우리 반의 한 학생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의 물건을 훔치고, 때리고, 매일 사고를 치며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

저는 그 아이를 보며 ‘나를 힘들게 하는 나쁜 학생’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베토벤의 음악과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베토벤이 위대한 음악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서 함께해 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지금 우리 반의 그 학생도 앞으로 어떻게 자라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아이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지금의 모습만 보고 판단했었어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저는 아이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지금의 모습만 보고 판단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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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교실 안은 더 이상 강의실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고백과 눈물, 음악의 여운이 서로 부딪혀 하나의 거대한 울림으로 번져 나갔다.

목 놓아 울며 자신을 돌아보는 그 선생님의 모습은 내게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음악은 단지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흔들고, 무너뜨리고, 그러나 결국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

그 거대한 울림이 교실 가득 메아리치며 하나의 커지는 크레셴도가 되어,

우리 모두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거대한 울림 - 크레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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