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누구세요?”
“옆집 아줌마야.”
그날도 여느 때처럼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운동복 차림, 질끈 묶은 머리.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오후,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피아노 위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설마 피아노 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하러 오신 걸까?’
문을 열자, 마주 선 이는 종종 계단에서 스치듯 인사만 나누던 러시아 아주머니였다.
환하게 웃는 얼굴은 왠지 낯설면서도 안도감을 주었다.
“안녕? 어느 나라에서 왔니?”
“한국, 서울에서 왔어요.”
“피아노 전공이지? 음악원에서 공부하니?”
“네.”
“그럼, 우리 집에 와서 차 한잔할래?”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낯선 나라에서의 초대, 그것도 거의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이웃의 집이라니.
‘괜찮을까? 혹시 이상한 분은 아니겠지?’
그녀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손바닥을 살짝 펴 보이며 말했다.
“그냥 편안하게 차 한잔이야. 1시간 뒤에 보자.”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가 이내 작은 설렘을 느꼈다.
‘환영받는 느낌이네. 연습도 지루해지던 참인데...’
엄마가 국제택배로 보내준 한국 음식을 챙기며,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말이 서툴러도 괜찮아. 그냥 웃고 있으면 되겠지.’
내가 살던 동네는 음악원에서 걸어서 20분쯤 되는 작은 주택가였다.
도시적인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서민적인 풍경은 내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맞은편 가게에서 치즈와 깔바사(러시아식 소시지)를 사고, 케이크가 먹고 싶을 땐 골목 끝 작은 가게를 찾았다.
크림이 듬뿍 올라가고 붉은 체리가 올려진 케이크 한 조각은 외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위안이었다.
여름이면 강가에서 샤슬릭(러시아식 꼬치구이)을 굽는 동네 사람들이 신문지를 깔고 모였고, 가을이면 거리는 황금빛 낙엽으로 물들었다.
나는 낙엽을 주워 방 안 피아노 위에 올려두곤 했다.
겨울엔 허벅지까지 눈이 쌓여, 케이크를 사러 가는 길이 눈밭 산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곳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유학생이던 내게 꼭 맞는 배경이었다.
아주머니의 집에 들어서자,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오래된 벽지와 소박한 가구, 벽에 걸린 가족사진들.
따뜻하게 데워진 공기와 갓 끓인 홍차의 향이 나를 맞이했다.
작은 소파와 탁자, 진한 색의 카펫 위에 놓인 케이크와 초콜릿.
레이스 커튼 너머로 부드럽게 들어오는 빛.
“홍차 마실래, 녹차 마실래?”
“홍차요. 감사합니다.”
“레몬과 설탕은 원하는 만큼 넣으렴.”
러시아 사람들은 보통 홍차에 레몬과 설탕을 넣어 마셨다.
나는 늘 레몬을 좋아했다.
찻잔을 코끝에 가져가자 은은한 홍차 향에 레몬의 상큼함이 스며들었다.
이국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사르르 풀려내리는 듯했다.
“네 이름이 뭐니?”
“조윤미예요.”
그녀는 내 이름을 러시아식 발음으로 따라 하며 웃었다.
내가 가져간 한국 음식을 받으며 기뻐하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서툰 설명에도 귀 기울여 주던 그녀는 이내 물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연습하던데, 힘든 부분은 없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저 “시끄럽다”라는 말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아왔다.
한국이었다면 “무슨 곡 연습하나 보네” 정도로 끝났을 터였다.
그런데 이웃 아주머니의 말은 훨씬 깊고, 묘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대답했다.
“많이 힘들어요.”
짧고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끝없이 쌓인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손에 땀이 차 건반 위에서 미끄러지던 순간들.
2 주제에 숨어 있는, 사랑에 빠진 듯 설레는 울림.
사람의 심장소리를 닮은 리듬, 그 뒤에 서린 작곡가의 심정에 대한 끝없는 질문들.
말로는 담지 못한 수많은 생각들이 눈빛에 실려, 그 짧은 대답을 대신 채워주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덧붙였다.
“네가 연습하는 걸 가만히 듣다 보니, 우리 문화를 조금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문화를 조금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뿔싸!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
그녀는 단순히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매개로 문화를 건네고 있었다.
나는 그날의 차 한잔의 대화를 잊지 못한다.
언어는 서툴렀고, 대화는 짧았지만, 그녀의 눈빛과 태도는 오래 남았다.
음악을 삶으로 품은 자부심, 낯선 이를 향한 따뜻한 개방.
그리고 그 손길은 단순한 환대가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작은 신호였다.
‘만약 내 옆집에 외국인 학생이 살았다면, 나는 저렇게 손 내밀 수 있었을까?’
그저 인사만 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혹은 조금의 거리감을 두고 관망했을지도.
하지만 그녀는 음악이라는 다리를 놓았다.
말보다 깊게, 눈빛과 손길로 문화를 건네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을까?’
‘내가 건넨 작은 친절과 관심은 얼마나 멀리, 얼마나 깊게 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음악이라는 언어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벽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날의 초대는 단순한 다과가 아니었다.
한 잔의 차,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음악보다 더 깊은 울림을 들었다.
그 울림은 지금도 내 안에서 차 향기처럼 은은히 번지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라나고 있다.
그 울림이 바로,
점점 커져가는 나의 크레셴도다.
점점 커져가는 나의 크레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