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Ⅱ. 국제콩쿠르

그때 나는, 나를 혹사시키고 있었다.

by 조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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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1월의 겨울 아침, 오전 6시 30분.

러사3.jpg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2층 복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복도에는 새벽이지만 이미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나는 늘 그렇듯 2층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중앙에 앉아 있던 관리 담당자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연습실 번호에 사인하길 기다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많이 춥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짧은 인사를 나누고 5번 방으로 들어섰다.

문을 닫는 순간에야 비로소 숨이 고르게 돌아왔다.

새벽 시간이었지만 음악원은 이미 깨어 있었다.

오전 9시 수업 전까지 연습실은 자유롭게 개방되었고, 대부분 러시아 학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정말 무섭게들 연습을 하는군'


그 사이사이 간간이 보이는 동양인의 얼굴은 대개 한국 학생들이었다.

자리를 잡은 뒤 복도 중간의 커피 머신으로 향했다.

초콜릿 향이 섞인, 에스프레소인지 아메리카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커피였다.

새벽 연습 전의 커피는 각성제이자 하나의 의식 같았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한 잔이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 준다고 믿었다.

음악원 새벽연습 때 커피 마시는 내 모습


그해 나는 5월과 12월, 이탈리아에서 열릴 두 번의 국제콩쿠르를 앞두고 있었다.

연습량과 일정, 그리고 나 자신을 마치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처럼 관리하고 몰아붙였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집중’이라 믿었고, ‘각오’라고 불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시기의 나는 음악을 단련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혹사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바흐, 베토벤, 슈만, 리스트.


콩쿠르 곡목들은 연습실 안에서 끝없이 반복되었다.

연습 시간은 늘어났지만 음악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손은 더 빨라졌고 기억은 더 정확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소리는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건반 위에 얹힌 손끝은 늘 긴장해 있었고 한 음을 치고 나서도 이미 다음 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실수를 피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숨을 고르는 법을 잊은 연주처럼, 음악에는 여백이 사라져 갔다.



5월,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비행기.jpg 러시아에서 이탈리아 가는 길

러시아를 떠나 도착한 로마의 하늘은 유난히 눈부셨다.

이탈리아 하늘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 1악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화창한 날씨였다.

그러나 나는 낭만을 볼 여유가 없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피아노부터 찾았고, 연습실과 무대 사이만 오갔다.

콩쿠르가 시작되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내 번호가 전광판에 떴다.

“다음 참가자, 한국, 조윤미.”


첫 곡은 ‘바흐 프렐류드와 푸가 3번 BWV 848.’

빠르고 투명한 음형 속에서 정확성과 균형을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곡이었다.

첫 왼손의 도#, 오른손의 미#.

시작음을 누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힘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컨디션은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콩쿠르는 끝났고, 결과는 3등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실수 때문이 아니었다.


음악을 사랑하고 느끼고 싶었던 내 안의 깊은 소리를 외면한 채,

음악을 이용해 나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는 사실을 나는 무대 위에서 정확히 보고 말았던 것이다.


상을 받았지만 그 무대에서 나는 실력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잃고 내려왔다.

그 미움은 오래 내 안에 남았다.

나는 그 감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다시 러시아의 연습실로 돌아갔다.

러사1.jpg 러시아 쌍트페테르부르크 국립 음악원에서


이번에는 ‘더 잘해야 한다’기보다 ‘이번만큼은 만회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쉬는 법을 배우기보다 버티는 법을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

버티는 방식이 곧 ‘실력’이라고 믿었고, 나는 ‘나’라는 존재를 담보로 계속해서 결과를 요구했다.



12월, 다시 이탈리아


이탈리아 겨울의 낭만은 마음이 느슨해질 만큼 아름다웠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상점들,

치즈와 갓 구운 빵 냄새가 흐르던 거리,

중세시대 고성과 같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던 건물들.


그러나 내 마음은 오히려 더 단단히 조여 있었다.

이번 콩쿠르 무대의 첫 곡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나에게 익숙했고, 몸에 잘 맞는 곡이었다.

연주를 시작했고 초반의 감각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중반을 지나던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실수가 터졌다.


‘수없이 연주하며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던 그 부분에서...’

나는 그렇게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무엇인가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러시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너에게는 콩쿠르가 아니라 여행이 필요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 순간 무너진 것은 ‘손’이 아니었다.

‘숨’이 먼저 무너졌고, 음악은 그 뒤를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콩쿠르에 나가려 했을까.’


그리고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나는 어떤 상태로 음악 앞에 서야 하는 사람인가.’


러시아 유학이라는 환경,

모국이 아닌 곳에서 홀로 버텨야 한다는 압박,

국제콩쿠르를 향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울리던 메시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결과로 말해야 한다.’


그 목소리는 너무 자연스러워 나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5월에 이미 알았으면서도 끝내 외면하고 있었다.

음악원 친구들.jpg 음악원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그 이후, 음악을 대하는 나의 근본적인 태도가 달라졌다.

어떻게 쳐야 하는가 보다 어떤 상태로 이 소리 앞에 서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연습할 때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손’이 아니었다.

속도를 점검하기 전에 숨을 살폈고,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몸이 어디에서 긴장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밀어붙였을 구간에서 나는 일부러 멈추는 연습을 했다.


이 변화는 연주보다 먼저 ‘말’에 나타났다.

누군가의 연주를 이야기할 때 나는 더 이상 얼마나 잘 쳤는지를 중심에 두지 않게 되었다.

그 연주자가 어떤 상태로 무대에 서 있었는지,

어디에서 숨을 고르고 어디에서 자신을 믿었는지를 보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였나 보다.

해설은 기술을 번역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상태를 읽어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해설은 기술을 번역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상태를 읽어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 하나를 치기까지의 시간,

한 프레이즈를 버티지 않고 건너오기로 한 선택,

완벽하지 않아도 음악 안에 머무르려는 태도.

나는 그런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울리는 선율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망설임과 회복의 순간이 먼저 들렸다.

그래서 나는 얼마나 대단한 연주였는가보다 이 음악이 왜 여전히 사람을 붙잡는지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연주후 친구들과.jpg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룩셈부르크.. 여러 나라에서 온 음악 친구들..

돌아보면,

그 국제 콩쿠르의 실패는 나를 무대에서 멀어지게 한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 곁으로 데려온 경험이었다.

나는 연주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주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마음을

함께 바라보는 쪽으로 조금 이동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음악을 증명하기 위해 말하지 않는다.

숨이 가빠진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그 옆에서 말을 건넬 뿐이다.


‘나는 음악을 증명하기 위해 말하지 않는다.
숨이 가빠진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그 옆에서 말을 건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