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커지는 크레셴도’
2025년 1월 23일 오스트리아 빈.
같은 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듣는 음악이 이전과 같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연주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호흡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
그리고 음악과 사람 사이에서 서서히 커져가는 크레셴도였다.
ON AIR
조윤미: 안녕하세요, 조윤미의 크레셴도, 피아니스트 조윤미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정말 특별한 무대를 소개하려고 해요.
2025년 1월 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있었던 무대입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마린 알솝 지휘, 그리고 ORF 비엔나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죠.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공연 음원을 제 방구석에서, 오전 11시에 들었어요.
아침도 아니고, 점심도 아닌 애매한 시간인데...
그런데 그 시간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눈물 흘리는 순간, 흔치 않잖아요?
그날은 달랐습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와 마린 알솝 지휘자,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낸 놀라운 호흡이
제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버렸거든요.
마치 방구석 1열에서 그 긴장과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는 듯했어요.
궁금하시죠? 그 이야기, 풀어볼까요?
실시간 댓글과 함께, 오늘도 <조윤미의 크레셴도>, 시작합니다!
왼쪽 마린 알솝 지휘자와 오른쪽에 임윤찬 피아니스트<보석 같은 인연>
조윤미: 임윤찬 피아니스트와 마린 알솝 지휘자.
지휘자 ‘마린 알솝’이라는 이름이 우리 대중에게 친숙해진 건 아마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때였을 거예요.
당시 18살이던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최연소 금메달을 수상했지요.
결선에서 그가 연주한 작품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고,
함께한 지휘자가 바로 '마린 알솝'이었습니다.
그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793만 회를 기록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연주가 끝난 직후, 마린 알솝이 눈물을 닦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죠.
그렇게 세상에 널리 알려진 두 인물이 다시 무대에서 만나게 된 겁니다.
이번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요.
저는 두 사람이 어떤 보석 같은 음악을 만들어낼지 공연 전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을 마주하니 마음이 벅차올라 눈물이 났어요.
오전 11시에 음악을 듣고 울다니, 참 주책이지요.
민애: 그 시간대예요?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저도 이해돼요.
그 연주는 뭔가 특별했거든요. 마린 알솝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지휘자잖아요?
조윤미: 맞아요.
그는 미국 최초 여성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 아주 상징적인 인물이에요.
그야말로 선구자지요.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선 심사위원장 역할도 맡았었고요.
수현: 저도 그 소식이 기억나요.
결선 무대 직전, 마린 알솝 지휘자가 임윤찬피아니스트를 세심히 챙겨주는 영상이 있었잖아요. 그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지훈: 저는 콩쿠르가 끝난 뒤 마린 알솝 지휘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임윤찬 피아니스트를 보면서 환생을 믿고 싶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가 오래된 영혼을 가진 사람 같다고요.
민애: 저도 글을 읽었어요. 마린 알솝 지휘자는 이렇게 말했죠.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를 초월한다.
마치 시인이 시대를 넘어서는 것처럼’
조윤미: 다들 기억하고 계시네요.
마린 알솝은 임윤찬을 진심으로 아껴요.
엄마 같은 마음으로 돌보고, 지금도 잘 지내는지 종종 확인한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이번 2025년 1월 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공연을 더욱 기대하며 음원을 들었습니다.
수현: 맞아요. 저도 음원 들으면서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이 만나자 음악이 서로 빛을 주고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민애: 사람 사이에도 그런 게 있잖아요.
아무리 가까워도 결이 달라 어긋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만남은 단번에 시너지가 폭발하는 것처럼요.
지훈: 네, 바로 그런 순간이었어요.
음악으로 직접 말은 하지 않지만, 오히려 말보다 더 깊이 전해지는 만남.
보석 같은 인연이죠.
<인연의 울림>
조윤미: 맞습니다.
이번 협연 음원을 들어보니 전체적으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음색보다 조금 더 진하게 울리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야말로 편하게 본인의 음악을 펼친다고 할까요?
지훈 씨가 말한 것처럼, 단순한 협연을 넘어선 ‘인연’의 울림이었습니다.
해석의 차원을 넘어,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존재감과 자유로움이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드러났어요.
수현: 게다가 템포도 인상적이었어요. 보통보다 훨씬 빨랐거든요.
두 사람이 사전에 세심하게 의견을 나눈 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죠, 선생님?
조윤미: 제가 워싱턴 공연(2024년 9월 28일)의 음원 듣고 아까 느낀 글에도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첫 코드는 속도부터 눈에 띈다”라고 적었잖아요?
그런데 이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은,
그때보다도 아주 미묘하게 더 빠른 템포로 시작된 듯했어요.
수현: 그래서일까요? 첫 악장의 긴장감이 금세 몰입을 불러왔어요.
단순히 빠르다, 느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확 잡히는 느낌이었거든요.
민애: 저도 그래요. 그 순간, 객석 공기마저 달라지는 것 같았어요.
마치 모두가 같은 호흡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말이에요.
조윤미: 네, 그게 바로 음악이 가진 힘이에요. 템포 하나가 전체 분위기를 흔들고,
또 새롭게 만들어내는 거죠.
자! 제가 악보를 준비했는데요. 보실까요?
음원을 들어보시면서 보시면 시작 코드가 끝나고 제1 주제로 들어간 부분이지요.
여기서 임윤찬 피아니스트, 정말 거침이 없어요.
첫 주제를 그냥 쏟아내듯이 써 내려갑니다.
그게 바로 음악이 가진 힘이에요.
https://youtu.be/OvXQe1 VkwW8? si=XPN3 cREjxwVVk3 sC
<수영선수가 물속에 몸을 맡기듯>
지훈: 정말 물결처럼 밀려오네요.
조윤미: 마치 수영선수가 물속에 몸을 맡기듯, 피아노 소리에 온몸을 던지는 모습이에요.
힘으로 누르거나 조절하려는 기색 없이, 숨과 건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음악 속에 스며드는 느낌이죠.
그를 보면, 피아노를 치고 있다기보다 이미 음악 속에 잠겨 자유롭게 호흡하고 있는 듯했어요.
민애: 아, 그러니까 마린 알솝의 지휘라는 물길 속에서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활기차게 수영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네요.
그래서 오케스트라와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나 봐요.
조윤미: 맞아요. 바로 그게 마린 알솝 지휘자의 멋진 점이죠.
큰 흐름은 안정적으로 이끌면서도, 연주자가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여백을 주니까요.
덕분에 피아니스트의 움직임이 오케스트라와 부딪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파도를 타듯 어우러집니다.
그게 바로 그녀의 지휘가 가진 진짜 매력이에요.
수현: 저희가 들을 때도 마음이 편안했어요.
서로 긴장감이 생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지훈: 맞아요.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마음 놓고 자유롭게 연주하는 게 느껴졌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마린 알솝 지휘자가 음악의 안전망 역할을 확실히 해주니까,
피아니스트가 함께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었던 거겠죠.
조윤미: 네, 특히 제가 주목한 건,
그 여백 속에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음악적 표현이 훨씬 더 돋보였다는 점이에요.
피아노 솔로가 마치 독백처럼 나오는 부분이 바로 그곳이죠.
한번 같이 살펴볼까요?
https://youtu.be/OvXQe1 VkwW8? si=XPN3 cREjxwVVk3 sC
<독백- 눈물>
조윤미: 자, 저기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 보이시죠?
그 위에 Meno mosso라는 지시어가 적혀 있어요.
이탈리아어로 ‘덜 움직임’, 즉 ‘지금까지 보다 조금 느리게’라는 뜻인데요.
저는 이 순간을 늘 '피아노의 독백, 눈물’이라고 부릅니다.
민애: 왜 이 부분을 ‘피아노의 독백’이나 ‘눈물’이라고 하시는지 궁금해요.
조윤미: 1악장의 클라이맥스인 Alla marcia ‘행진곡처럼’ 부분이 끝나고,
피아노가 혼자 8마디 동안 애절하게 노래를 이어갑니다.
마치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속마음을 눈물로 고백하는 듯한 느낌이죠.
그동안 꾹 눌러왔던 울음이 서서히 터져 나오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8마디가 지나면 오케스트라가 합류하면서, 참았던 눈물이 점점 커지듯 음악이 풍성하게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면을 항상 ‘참다못해 결국 쏟아지는 눈물’처럼 느낀답니다.
https://youtu.be/OvXQe1 VkwW8? si=XPN3 cREjxwVVk3 sC
<함께 커지는 크레셴도>
수현: 와, 설명을 들으니 울컥하네요.
실제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은 이 부분 연습할 때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조윤미: 저는 일단 울기보다는, 감동으로 귀가 딱 멈춰 버려요. 하하.
연습할 때 이 부분이 항상 쉽지 않았습니다.
음악은 계속 흘러가야 하는데, 그 감정을 온전히 오른손 멜로디에 실으려다 보니
팔에 힘이 들어가서 소리가 자꾸 딱딱해지더라고요.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왼손이 자꾸 틀린다는 거예요. 하하.
감정에 심취한 나머지 소리를 자세히 듣지 않고 덤벙거리다가 실수하곤 했죠.
제가 많이 부족하죠? 너무 솔직했나요? (웃음)
지훈: 아니요, 전혀요. 오히려 선생님의 연습 체험담을 들으니 공감이 됩니다.
조윤미: 8마디 후 오케스트라가 돌아와, 함께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듯 음악이 커져 가요.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인데, 끝내 참았던 눈물이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함께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단순한 눈물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무대 위에서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를 비추며, 음악이 마치 대화처럼 오가고 있었죠.
민애: 정말 그래요. 단순한 협연을 넘어선 대화 같았어요.
피아노 독백의 음악이 흐를 때 모든 귀가 솔로에 집중되고,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합류하자 음악이 더욱 풍성해졌죠.
수현: 그러게요. 저도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가 함께 노래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훈: 그러니까 임윤찬 피아니스트와 마린 알솝 지휘자, 두 사람의 만남이 만들어낸 공간감이 정말 대단하군요.
조윤미: 맞아요, 지훈 님.
듣는 사람도 함께 ‘커지는 크레셴도’ 속에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죠.
단순한 결합을 넘어 서로를 비추며 커가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에요.
수현: 선생님, 그러니까 ‘커지는 크레셴도’가 음량이나 박자의 변화뿐만 아니라,
음악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흡까지 포함된 거군요.
조윤미: 네, 수현 님. 이번 연주가 저에게 남긴 감동은 바로 그 부분이에요.
음악 속에서 서로를 비추며 함께 커가는 에너지를 느낄 때,
그게 바로 음악의 힘이자 우리가 음악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커지는 크레셴도- 음악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