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Ⅰ. 러시아 유학, 내 안에 살아있는 크레셴도
“러시아어를 많이 공부하고 오기를 바랍니다.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르고 그 나라의 문화를 안다고 할 수 없어요.
그 나라의 문화를 모르고 그 나라의 음악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 최희연 -
“굿모닝, 프런트입니다. 모닝콜드립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는 새벽 5시 30분.
‘뭐야... 분명 5시 50분으로 부탁했는데.’
하지만 이미 새벽 4시 57분부터 눈이 떠 있었으니, 사실 문제될 건 없었다.
떨리고, 긴장되고, 마음이 붕 떠 있는 아침.
여기는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 근처의 ‘호텔 닛코 나리타’.
어제 인천공항에서 6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오늘.
‘아, 러시아, 쌍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으로 가는 첫 유학 길이 열리는구나.’
쌍트페테르부르크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도시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랜 교감으로 배운 러시아 음악은 나에게 왠지 모르게 편안했다.
윗 선배인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림스키 코르사코프부터 지금의 마에스트로인 게르기예프, 소콜로프까지.
쌍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은 그야말로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권위와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 가다니 기대가 크면서도 모든 것이 생소하고 거칠고, 험난하게만 보였다.
‘모스크바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과정이 애매하다던데... 잘 도착할 수 있을까.’
라운지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호텔 안에서 탑승 수속을 마치고, 오전 11시 10분.
드디어 나는 일본의 하늘을 떠나 러시아로 향했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안에서 만나 친해진 러시아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국내선으로 힘겹게 갈아탄 뒤,
마침내 나는 러시아 쌍트페테르부르크 풀코바 공항에 내려섰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무릎이 덜덜 떨리고 온몸이 저려 왔다.
캐리어를 끌고 공항 밖으로 나서자, 찬 바람과 눈발이 나를 맞았다.
‘흠...’
한동안 눈을 감고 러시아 공기를 마셔보았다.
나에게 러시아의 첫 느낌은... 황량했다.
가슴 시리도록 적막하고 외로운 기분.
‘여기가 라흐마니노프의 나라, 러시아구나. 3월인데도 이렇게 눈이 오네... 춥다.’
나는 그저 얼떨떨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기숙사에 짐을 풀고 시차 적응은커녕, 무거운 캐리어에서 벗어날 틈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바로 학과장 앞에서 오디션이 예정되어 있는 날.
손도 제대로 풀지 못했고, 여행의 여독과 긴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정말, 그런 상황에서 오디션이라고?’
지금 떠올려도 웃음이 난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오직 음악을 향한 열정 하나로 뛰어든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오직 음악을 향한 열정 하나로 뛰어든 사람이었다.’
쌍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2층 복도는 끝없이 뻗어 있었다.
나는 ‘10번 방'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 앞 복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길게 숨을 내쉬었다.
‘휴... 몸이 너무 피곤하고 무거워. 오디션인데, 이거 큰일이네.’
예민해진 신경은 사소한 소리에도 반응했다.
"또각, 또각, 또각." 유독 크게 울리는 구두 소리.
미니스커트를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부츠를 신은 러시아 여학생들이 복도를 가로질렀다.
3월 초, 러시아 거리가 얼마나 질퍽하고 또 얼어붙어 있는지 도착한 지 하루 된 나는 알 리 없었지만, 또각거리는 그 부츠 소리가 이 혹독한 나라의 리듬처럼 느껴졌다.
낯선 풍경에 정신이 반쯤 빼앗겨 있던 순간, 복도 끝에서 걸어오던 중년의 남성이 내 쪽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아, 이분이 여기 국립음악원 피아노과 학과장님이구나.’
레오니드 미하일로비치 자이칙.
안경 너머의 눈빛은 차분했지만, 얼음처럼 매서운 선이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열정적이고 따뜻하다고 하던데... 이 분은 뭔가 다르군.’
짧은 인사를 마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의 1악장.
오른손 5번으로 시작되는 ‘파’를 누르는 순간, 손끝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뭐야? 소리가 왜 이렇게 울려?’
순간 당황스러움이 온몸을 덮쳤다.
천장을 쳐다보니 꽤 높고 돔 형태로 되어 있어 울릴만한 구조였다.
상상했던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 몸의 감각들이 움찔거렸다.
게다가 나의 손가락들은 빠르게 미끄러지듯 왼손의 ‘시♭’으로 치달아야 했지만,
몸은 생각보다 굼뜨게 반응했다.
‘역시... 시차 때문인가.’
나는 낯선 곳의 건반 느낌과 예상 못한 울림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연주가 끝나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자이칙 교수는 악보와 온몸의 여독이 묻어있는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통보하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제 도착해서 시차가 아직 적응이 안 된 것 같은데, 수고했어요.
아스삐란뜨(аспирантура) 과정은 석사 소지자만 지원할 수 있는 박사과정입니다.
그동안 입학시험이 11월이었는데, 올해에는 6월 25일로 변경되었어요.
러시아어 필기시험, 러시아어로 된 논문 제출, 성악·현악 반주 시험, 시대별 피아노 솔로 프로그램, 솔로 연주 후 인터뷰, 학위증명서와 성적표, 그리고 공증된 러시아어 번역본 서류들까지...
이 모든 것을 4개월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완벽히 준비해야 합니다.
기초가 훌륭하니, 소리를 좀 더 다듬어 피아노 솔로 프로그램을 함께 정해봅시다.”
‘이 모든 것을 4개월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완벽히 준비해야 합니다.’
러시아에서 아스삐란뜨(аспирантура) 과정은 이미 학생 영역을 넘어선 전문 연주자의 단계로 들어간다.
때로는 교수님의 강의를 대신하거나 후배들을 지도하는 역할까지 맡을 만큼, 그 위치가 갖는 무게감은 무겁다.
물론 외국인 학생의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학과장인 자이칙 교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고작 4개월이라는 사실.
학과장님도 아시는 듯, 이 일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류준비만 해도 산더미인데, 현지 적응에 러시아어 이론과 회화시험, 피아노 반주 시험, 솔로 시험까지... 이 모든 걸 로봇처럼 ‘뚝딱’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체 왜?’
왜 이분은 이런 불가능한 상황에서 외국인 학생인 나를 제자로 받아들인 걸까?
시험을 보자고 한 그 이유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박사시험을 위해 이 낯선 곳까지 왔지만 막상 러시아 현지 상황을 보자 불가능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의문은 러시아 유학 기간 내내, 그리고 지금도 풀리지 않는 질문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이칙 교수와 첫 레슨이 시작되자마자, 그 의문은 사치스러운 고민이었음을 깨달았다.
1시간이 1년같이 느껴지는 엄청난 강도 높은 레슨은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1시간이 1년같이 느껴지는 엄청난 강도 높은 레슨은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
다.’
그로부터 1주일 후,
“이렇게 치면 곤란합니다. 계속 이런 식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와. 눈앞이 깜깜했다.
충격 그 자체였던 1시간이 현실로 닥쳐온 순간이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문제는 나였다.
음악원 학생들은 새로운 작품을 공부하게 될 경우 다음 레슨 때까지 거의 일주일 만에 완성도를 9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국제 콩쿠르 경력이 있는 자이칙 교수의 수제자들은 더했다.
루빈슈타인 콩쿠르 경력의 한 젊은 남성 피아니스트는 ‘슈만 토카타’(고속에서 양손의 비대칭 반복 패턴과 지속적 긴장 상태를 동시에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극도로 어렵다.)를 첫 레슨에 완벽히 준비해 오는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러시아 학생들은 예비학교에서부터 이미 화성학, 대위법 등 바흐 음악을 집중 공부한 덕분에, 악보를 읽는 속도는 물론, 음악을 소화해 내는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반주든, 솔로든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귀 훈련을 받은 그들과 달리, 나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무엇보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얕았다.
나에게 음악은 시험이자 과제였지만, 그들에게는 삶 그 자체였다.
당시 그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그저 열정만 가득해 웃음 많은 한국에서 온 동양인 여자 학생일 뿐이었다.
게다가 가장 거대한 장벽은 러시아어였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4개월 안에 준비해야 할 산더미 같은 과제 중에서도 ‘러시아어 필기시험’과 ‘회화 인터뷰’는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막 마친 나에게 가장 거대한 장벽이었다.
‘아 이거 너무 불가능한데?’
망연자실로 가슴이 먹먹해지던 바로 그때.
한국에서 멘토로 존경하는 최희연 교수님의 메일이 도착했다.
“러시아어를 많이 공부하고 오기를 바랍니다.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르고 그 나라의 문화를 안다고 할 수 없어요.
그 나라의 문화를 모르고 그 나라의 음악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세 문장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속에서 중요한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에서 나는 이 문장들을 되뇌며 곰곰이 생각했다.
언어, 문화, 음악... 그 깊은 연결고리에 대해서.
4개월 후 6월 25일. 입학시험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
시험직 후 자이칙 교수님은 이 말 한마디를 남겼다.
"이 시험은 최고연주자 과정이므로 우리 심사위원들은 연주자의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봅니다."
간신히 턱걸이로 합격했다는 말씀.
러시아에서 마주한 현실은 한마디로 ‘훈련’이었다.
러시아에서 마주한 현실은 한마디로 ‘훈련’이었다.
러시아 쌍트빼쩨르부르그 국립음악원 글라주노프홀에서
언어의 벽, 시차와 환경, 압도적인 강도 높은 레슨, 그리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매일 확인하는 과정까지.
그 모든 순간은 나를 흔들었지만, 동시에 내 음악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었다.
자이칙 교수의 레슨에서 나는 ‘기교’보다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음악을 대하는 한 사람의 삶이 곧 연주에 스며든다는 것을 배웠다.
‘곡’이 아니라 ‘세계’가 된 셈이다.
그래서 러시아에서의 충격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기준’으로 남았다.
러시아에서의 충격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기준’으로 남았다.
최희연 교수님의 조언처럼, 언어와 문화 없이 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도 러시아에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음악은 배경 없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깨달음은 지금도 내 해설, 글, 연주 전반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축이 되었다.
쌍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작된 이 경험은 이미 끝난 과거가 아니다.
러시아에서 부딪혔던 모든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강렬한 크레셴도가 되었다.
그 크레셴도는 지금도 나를 밀어 올려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그래서 나의 러시아 유학은 하나의 여정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살아있는 크레셴도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낯선 세계 앞에서 흔들리는 순간, 누구나 각자의 크레셴도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낯선 세계 앞에서 흔들리는 순간, 누구나 각자의 크레셴도를 다시 세울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