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Ⅱ. 라디오를 하며 깨달은 것들

by 조윤미

ann 1> 여러분은 지금,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올림 바단조 작품번호 1번」중 1악장을 듣고 계십니다.


(3초 더 듣다가)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

조윤미 피아니스트 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

조윤미 : 네, 안녕하세요.


KBS 라디오 방송국에서 아나운서와 리포터와 함께



라디오는 얼굴 없는 대화다. 그만큼 진심이 더 멀리 닿는다.

몇 년 전, 예상치 못한 기회로 KBS 라디오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에 여러 해 동안 초대되었다.

그 시간은 내게 ‘음악을 말로 전하는 법’을 가르쳐준 배움의 장이었다.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
- 조윤미 피아니스트 연결합니다.


생방송 중


라디오에서는 오직 ‘말’로 음악을 전해야 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청취자가 머릿속으로 ‘보게’ 하려면 언어 속에 온 감각을 담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객관적인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하되, 다른 사람의 글이 아닌 내 언어로

음악을 다시 재정리했다.

그 과정은 곧, 내 안의 음악을 새롭게 해석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목소리의 질감도 중요했다.

딕션(정확성과 유창성을 두루 갖춘 발음)은 또렷해야 했고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말의 온도와 리듬을 달리해야 했다.

이렇게 아무리 철저히 준비를 해도 생방송은 늘 예측 불가였다.

그 갑작스러운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방송의 일부였다.

(신기하게도 긴장해서인지 생리적인 현상은 생방송하는 중에는 벌어지지 않았다.)


음향감독님과 라디오 생방송 함께

그렇게 매주 생방송을 이어가던 어느 날,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찾아왔는데...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떨린다.

늘 그렇듯 작가님께 원고를 전달하고 피드백을 받은 뒤,

수정된 부분을 꼼꼼히 다시 읽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노트북 속 원고 파일을 여러 번 열어 확인했다.


글의 구조와 메시지는 처음부터 내 머릿속에서 그린 것이었기에,

어디서 감정이 고조되고 어떤 문장에서 여운을 남길지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모차르트의〈“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주제에 의한 열두 개의 변주곡 다장조, K.265〉.

우리에게는 ‘작은 별 변주곡’으로 더 잘 알려진 작품이었다.

앞 코너가 마무리되고 모차르트의 음원이 흘러나왔다.

나는 조용히 목 상태를 점검하며 원고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약 3초간의 오프닝 음원이 끝나갈 즈음,

내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 곧 내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세상으로 나갈 순간이다.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
조윤미 피아니스트 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
조윤미 : 네, 안녕하세요.


그 순간, 내 손끝이 살짝 떨렸다.

숨을 고르고, 한 문장씩 정확히 말이 흘러나왔다. 대화는 원고대로 매끄럽게 이어졌다.

그런데, 중간 음원이 흐르기 시작하자.

툭.

노트북 화면이 꺼졌다.

‘노트북 화면이 꺼졌다.’

‘오, 이런... 세상에! 이거 생방송인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고 입술은 덜덜 떨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냥 웃어버렸다. 그건 어이가 섞인 본능적인 웃음이었다.

놀라운 건, 아나운서가 그 미묘한 내 신호를 단번에 알아챘다는 것이다.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내가 하려던 설명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아 공백을 메워주었다.


‘아, 역시 아나운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지만 문제는 내 멘트가 분량의 반이나 남아 있었다는 것.

나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 전원을 여러 번 눌러봤지만 화면은 여전히 어둡게 잠겨 있었다.


‘큰일이다... 페이퍼 원고를 여분으로 챙길걸...’


내가 당황해하는 사이 아마도 방송국 스튜디오 안은 분주해졌을 것이다.

“조윤미 피아니스트 원고 날아간 것 같아요!”


그야말로 ‘레드 상황’이었다.

음악은 길게 흘러나왔고 나는 그 사이 머릿속으로 원고를 떠올렸다.

그야말로 ‘레드 상황’



그런데 그때,

기억 저편에서 문장 하나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내가 썼던 주제의 결론 문장이.

마지막 음원 전에 나는 가까스로 이렇게 멘트를 했다.


“어머니 죽음 이후 상실삼에 빠졌던 그가 단순한 선율을 음악으로 변주해 냈습니다.

삶은 변주곡 같습니다. 기쁨과 슬픔, 상실과 회복이 모두 한 선율 안에 있죠.

그의 ‘작은 별 변주곡’은 어쩌면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 아닐까요.”


아나운서가 곧바로 내 말을 이어받아 멘트를 마무리했다.

엔딩 음악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휴...”


그날의 생방송은 끝났지만, 내 안에서는 새로운 깨달음이 피어났다.

무대의 조명이 꺼진 후에도 음악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라디오라는 얼굴 없는 공간에서도 음악과 언어는 살아 숨 쉬었다.

음악이 말이 되고, 말이 다시 음악이 되어, 청취자의 마음속에 장면과 감정을 그려냈던 순간들.


그 경험은 이후 보이지 않는 내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소리가 아닌 ‘말’로 음악을 전하는 나의 자연스러운 진심과 맞닿았다.

라디오 안팎의 세계가 내 안에서 하나로 이어지며, 모든 떨림과 긴장, 감정이 한데 모이는 순간.


나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크레셴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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