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Ⅳ. 엄마와 피아니스트

by 조윤미

“얘들아, 일어나! 학교 가야지!”


역시, 한 번에 일어날 리가 없지.

전날 불려둔 귀리를 냄비에 붓고 물을 더한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우유를 넣어 조심스레 젓는다.

냉장고에서 그릭 요구르트를 꺼내 아이들 그릇에 담고, 바나나와 사과, 견과류를 얹는다. 식탁 위에 귀리 우유죽과 요구르트를 차려놓고 다시 외친다.


“일어나자~ 니들 좋아하는 요구르트 있지요!”


‘요구르트’라는 단어에 마법이라도 걸린 듯, 아이들이 벌떡 일어난다.

아들은 눈을 비비며 자리로 오고, 딸아이는 아직 꿈속인 듯 비틀거리며 앉는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침을 먹는 동안, 나는 딸아이 머리를 묶으며 말한다.

“오늘 받아쓰기 시험 있지? 어제 엄마랑 공부했으니까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봐.”

“아들, 오늘 학교 끝나고 학원 가는 거 잊지 말고.”

“여보, 오늘 회식이지요? 자극적인 음식은 조금만요.”


오전 7시 40분.

출근과 등교를 위해 현관문이 닫히면, 집 안은 잠시 고요해진다.

방금 전까지 쏟아지던 말과 웃음소리가 천천히 가라앉는 그 틈.

그제야 나는 비로소 나에게 돌아온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오늘의 할 일을 천천히 정리한다.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하루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

글을 쓰는 일은 체력의 싸움이자 마음의 훈련이다. 피아노 연습처럼, 집중과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는 ‘엄마와 피아니스트’.


‘엄마’


결혼과 출산은 내 삶의 리듬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첫아들의 이유식을 만들다 졸아 냄비를 태워버리고 괜히 엉엉 울었던 날,

둘째가 새벽에 배가 아파 울어 응급실로 급히 달려갔던 날,

놀이공원에서 첫째를 잃어버려 미친 듯이 뛰어다니던 날.

다들 그렇게 엄마가 된다고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책임감과 성실함을 요구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마음은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점점 돌덩이처럼 굳어갔다.

‘세상엔 몇 가지 역할을 척척 해내는 슈퍼맘들이 많은데, 왜 나는 매일 힘들다며 징징거릴까.’

‘나는 피아니스트인가, 아니면 그냥 엄마인가.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질문들은 매일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내 안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돌보며 손은 늘 바빴지만, 마음의 다른 방에서는 여전히 ‘피아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내 삶의 1순위였던 피아노 연습은 결코 ‘주어진 시간’이 아니었다.

살아내는 하루 속에서 쟁취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쟁취해야 하는 시간’

아이들의 새벽잠이 자리 잡고, 더 이상 수유로 깨지 않아도 되는 무렵,

나는 나만의 시간을 되찾기 시작했다.

건반을 누르는 대신 악보를 눈으로 더듬으며 강의 준비와 연구를 이어갔다.

첫째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쯤, 나는 연주회마다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처음엔 대기실에서 조용히 기다리며 엄마의 연주 영상을 모니터로 보던 아들이,

일곱 살이 되자 이젠 매니저처럼 체크하는 게 아닌가.


“엄마, 지금 리허설 두 번째야. 엄마는 마지막 순서니까 컨디션 조절 잘해.”

“엄마, 피아노 조율 중이래.”

그런 아들이 어느 날, 내가 집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유심히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 소리는 베토벤을 표현하기엔 너무 지저분하고 거칠어. 다시 소리를 내봐.”


순간 웃음이 터졌지만, 마음 한편이 뭉클했다.

내가 연습과 무대 사이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어느새 그에게도 ‘음악의 일상’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이가 내 음악을 단순히 ‘소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의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피아니스트’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면서도 나는 여전히 피아니스트다.

다만 그 모습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엔 완벽한 음을 내기 위해 하루 몇 시간씩 건반 앞에 앉아 있었다면,

지금은 짧은 연습 속에서도 단 한 음을 진심으로 눌러보려 한다.

삶이 내게 가르쳐준 건 음악도 결국 살아내는 일이라는 것.

음악도 결국 살아내는 일이라는 것.

2024년 여름, 장천아트홀.

연주회 해설자로 초청받았던 그날,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로 찾아온 아들과 함께 주최 측에 인사를 드리는데

그분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엄마가 참 자랑스럽겠구나.”

그 말에 아들이 수줍게 웃었다.

그 순간, 나는 오래전 무대 위의 나를 떠올렸다. 과거의 피아니스트가 지금의 ‘엄마’와 손을 맞잡은 듯했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아들이 고열로 몸이 불덩이 같았던 어느 날 아침,

하필 그날이 내 연주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리허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집을 나서야 했고 남편이 대신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공연장 속 피아노 앞에 앉아도 눈앞이 흐려졌다.

마음 한쪽은 무대에 있었지만, 다른 한쪽은 여전히 아파하는 아들 곁에 머물러 있었다.

그날의 연주는 음 하나하나에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살게 하는 사랑’을 향한 기도처럼 연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이기에, 피아니스트로서 끝까지 설 수 있다.

그리고 피아니스트이기에, 엄마로서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음악이 삶이 되고, 삶이 음악이 되는 순간들이 쌓여 어느새 내 안에서는 또 하나의 크레셴도가 자라났다.

엄마로서의 시간도, 피아니스트로서의 시간도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오히려 밀어 올렸다.

사랑이 나를 다시 건반 앞으로 이끌었고, 건반 위에서 다시 얻은 힘이 삶을 붙잡아 주었다.

그래서 오늘 내가 건반 위에 올리는 단 한 음도 내가 살아낸 하루들의 무게와 온기를 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한 번 살아 있는 피아니스트다.

멈추지 않고, 흔들리며, 다시 커져가는 소리.

그것이 바로, 내 안에 영원히 살아있는 크레셴도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어쩌면 서로 다른 이름의 크레셴도를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일터에서,

누군가는 가정에서,

누군가는 오래 미뤄둔 꿈 앞에서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커지는 어떤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도 살아 있는 피아니스트라면,

당신 역시 지금 살아 있는 당신의 소리를 품고 있을 것이다.

그 소리가 작아도, 흔들려도,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크레셴도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각자의 소리를 키우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어쩌면 서로 다른 이름의 크레셴도를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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