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나로 살아가기
나는 계속해서 달려왔다. 일곱 살이었던 내가 열다섯이 된 지금까지, 참 긴 시간을 쉼 없이 달려왔다. 물론 중간중간에는 넘어진 적도 많았고, 뒤를 돌아보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고,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바닥까지 무너져 내리곤 했다. 그래도 결국 나는 다시 일어나 뛰었다.
내 인생의 절반을 연약함과 함께 보냈다는 건 참 무겁고 허탈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사실이었다. 그 시간은 분명 고단했고, 가끔은 너무 슬펐다. 왜 나는 평범하지 못할까, 왜 나만 유난히 느려야 할까, 그런 질문을 수도 없이 되뇌며 혼자 괴로워하던 시간을 보내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간이 내게 약속이 되어 주었다. ‘너는 무의미하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약속. ‘너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증거. 내가 겪어온 모든 눈물과 아픔이 그냥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안에 새겨져 하나의 증표가 된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내면이 깎이고 닳아 없어지는 줄 알았던 시간이 사실은 보석을 다듬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보통 반짝이는 결과만 보려 하지만, 나는 그 결과 뒤에 얼마나 많은 세공의 시간이 필요한지 안다. 내가 겪은 과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다른 이에게는 내 모습이 보석으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누군가 내게서 반짝임을 본다면, 그 사람 또한 분명 보석일 것이다. 보석은 보석을 알아보니까.)
사실 가끔은 바란다. 외롭고 두려워했던 그 시간이 조금만 짧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모든 시간이 다 필요했음을.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음을. 성숙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매 순간 부딪히고 깨지고 울면서 자라났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깊어졌고,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은 넓어졌다. 그건 결코 억지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 가르쳐준 선물이다.
이렇게 말하니 누군가는 나를 ‘애늙은이’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도 가끔 그렇게 느낀다. 친구들이 단톡방에서 밈을 보내며 폭소할 때, 나는 갑자기 “삶은 결국 한 번뿐인 기회야” 같은 말을 속으로 곱씹을 때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께는 사랑스러운 딸이고, 친구들에게는 유쾌한 친구다. 장난도 치고 농담도 잘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필요할 때는 진심으로 곁을 끝까지 지켜 주는 사람이 돼주고자 한다.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내 연약함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과자 봉지를 뜯는 일, 무거운 책들을 드는 일, 달리기를 할 때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일. 그때마다 누군가의 손이 내 곁에 있었다. 어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도와주었고, 어떤 선생님은 애써 티 내지 않으려 하면서도 나를 배려해 주셨다. 처음엔 그게 불편했다. 늘 도움만 받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그건 단순한 ‘도움’이 아닌 사랑이 담긴 마음이었다는 것을. (혹시라도 그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의무적으로 마음 없이 도움을 준 사람은 없을 거라 믿는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도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폭풍성장해 나갈 것이다. 일곱에서 열다섯까지 달려온 시간은 나의 작은 서막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너무 많이 넘어지고 울었지만, 그보다 더 많이 웃고 일어섰다. 그리고 이제, 열다섯을 넘어서는 길 위에 선다. 그 길에는 여전히 눈물도 있고 고단함도 있겠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
내가 만난 사람들, 내게 도움을 준 사람들, 내게 웃음을 주고 기도를 해주고 사랑을 나눠준 사람들. 그 모든 사람이 내 곁에 있다. 나는 그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더 멀리 갈 수 있다. 앞으로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뿐이다. 작은 웃음 하나, 사소한 농담 하나, 손을 꼭 잡아주는 한순간. 그것이 내가 가진 사랑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을 아끼지 않고 건네며 살고 싶다.
나는 이제 미래를 기다리지 않는다. 미래가 내게 오기를 바라며 앉아 있는 대신, 내가 스스로 발걸음을 옮겨 미래로 간다. 더디게 가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중요한 건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것이다.
나는 일곱에서 열다섯까지 달려왔다. 그 시간은 끝났지만, 끝이 곧 또 다른 시작이다. 이제 나는 열다섯에서 그 너머까지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