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6

회색신발

by 기도집주인딸

2024.10.17

내가 신는 신발은 회색 신발이다.
사이즈는 꼭 맞고, 딱히 불편하지도 않다.
그 회색 신발을 신고 평범한 하굣길을 걷는다.

회색 신발은 예쁘지 않다.
단지 몇몇 사람만이 예쁘다고 느낄 뿐이다.
어디에도 딱 맞게 어울리지 않는 애매한 색,
소수만이 좋아하는 색,
그런 색이 회색이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니,
가로등 불빛 아래 한 폭의 그림이 내 앞에 펼쳐진다.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가로등 아래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숨고 싶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고개를 숙여 내 발끝을 바라보면 회색 신발이 보인다.
어쩌면 때 묻은 하얀 신발 같기도 하고,
빛바랜 검은 신발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회색 신발이다.

나는 오늘도 회색 신발을 신는다.
신발은 비록 회색이지만,
나는 눈처럼 하얀 길도,
밤처럼 어두운 길도 걷는다.
그곳이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부터 나는 이 회색 신발을
조금은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