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병원은 조용하다. 암 환자들은 장기간 입원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말에는 외출을 많이 나간다. 나 또한 예전에는 주말마다 집에 가서 아이들과 자고 왔었다.
지금은 집보다 병원이 편하다. 몸이 불편하니 집에 가서 아이들 식사 차려 주는 것도 부담스럽다. 내 취미가 요리하는 거였는데…. ‘오늘은 뭐 해줄까?’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만드는 시간이 좋았다. 만들어 먹고 치우는 게 귀찮긴 했어도 내 음식에 모두가 만족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련하게 일한 것 같다. 학원에서 일하고 와서 집안일도 바쁜데 아이들 저녁과 간식까지 다 해 먹였다. 아기 때는 이유식도 전부 만들어 먹였다. 일하시는 분이 청소는 도와주셨지만, 아이들 씻기고 먹이고 공부시키고 같이 놀아주면서 집안일에 학원 일까지...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다. 내가 못 받은 사랑을 아이들에게는 다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가능한 배달 음식이나 밀키트 음식으로 간단하게 먹는다. 밀키트 음식도 맛있게 잘 나온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도 오후에 잠깐 집에 가면 아이들과 떡볶이와 치킨을 먹기로 했다.
갑자기 떡볶이와 치킨 이야기가 나오니깐 어제의 감정이 남아있는지 남편 생각이 난다. ‘아직 화가 덜 풀렸나? 어제 그렇게 글로 표현했는데도 마음 정리가 안 되었나? 왜 남편의 부정적인 생각이 또 올라오는 걸까?’
남편은 음식에 매우 민감했다. 아이들에게 몸에 나쁜 음식은 절대 먹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1년에 몇 번 정도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었다. 학원에서 돌아와 아이들을 보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나 또한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끔은 먹어주어야 했다.
남편 없을 때 시켜 먹지만, 아이들이 어려서 치킨도 한 마리 시키면 남았고 피자도 한판 시키면 남았다. 수업하고 들어온 남편은 상자를 보거나 먹다 남은 음식을 보면 나를 흘겨보았다. 그러다 못 참으면 “엄마라는 사람 집에서 아이들 먹는 거 하는 게 뭐가 힘들다고 인스턴트를 시켜 먹어?”라며 짜증 섞인 말투로 말을 했었다. 나는 눈치가 보여서 빨리 치웠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다. 먹으라고 사주지는 못할망정 내가 번 돈으로 먹고 싶은 거 먹는데 왜 눈치를 보면서 먹었는지 모르겠다.
유방암으로 인해 잦은 입원으로 아이들을 5년간 남편이 케어 했었다. 그때 집안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금은 안 듯하다. 가끔 집에 있으면 힘들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학원 운영할 때는 하루 종일 일하고 온 나에게 아이들 음식이나 청소가 마음에 안 들면 들어오면서부터 인상을 썼었다. 해봐야 안다고 놀면서 집안일만 했어도 힘들었나 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스낵을 좋아하는 나는 마트에서 세일 할 때마다 많은 양의 과자를 사다가 벼란다에 두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먹을 거를 주기 전에는 허락 없이 먹지 않았다.
생리 전후 나는 단 과자가 당긴다. 먹으려고 벼란다를 가보면 사다 놓은 과자가 하나도 없다. 나는 이해를 못 했다. ‘많은 과자가 어디로 갔지?’라고만 생각하고 마트 가서 또 사다 놓았다. 그러면 또 사라진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삶이 바쁘다 보니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깐, 남편이 자기 방에 깊숙이 숨겨놨다가 유통기간이 지나면 버리거나 학원 가서 자기 반 학생을 준 것이다.
미리 말을 했으면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혼자 생각에 갇혀 안 좋은 과자를 아이들에게 줄까 봐 그랬다는 것이다. 아이들 과자는 남편이 한 살림에 가서 사 온 것만 주었다. 나는 속으로 ‘지랄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처럼은 못한다. 아이들도 컸고, 나도 용납하지 않는다. 얼마 전, 주말에 남편이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당신 올 수 있어? 그럼 같이 먹자. 나도 지금 집에 가니깐 6시쯤 될 거 같은데….”라고 말하자, “나도 지금 들어가면 그때쯤 될 거야.”라고 남편이 대답했다.
나는 “이쁜 딸이 치킨을 먹자고 하던데 그럼 오늘은 뭐 먹지?”라고 말하자, “어휴…. 무슨 치킨이야…. 치킨이 몸에 얼마나 안 좋을지 몰라? 딸 얼굴 여드름 좀 봐봐. 아이들이 그런 것만 먹으니깐 몸이 안 좋지.”라며 짜증 섞인 말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만해! 그만하라고…. 당신 나중에 아이들 앞에서 안 죽을 거야? 우리도 안 좋은 거 알아. 하지만 먹고 싶은데 안 먹어? 우리가 못 먹게 하면 안 먹을까? 아들도 치킨 사 먹을 돈 있어. 말리지 말고 오늘 당신이 와서 다른 거 사주면 최소한 하루는 늦게 먹겠네. 이렇게 생각해.”라며 짜증 내면서 말했다.
딸이 단 음식을 좋아하는 걸 남편은 안다. 딸이 학교 갔을 때, 딸 방에 가서 책상 서랍들을 열어보고 사탕과 캐러멜 등 남편 마음에 안 드는 음식을 발견하면 물어보지도 않고 버린다. 어릴 때는 딸이 참았다. 고등학생일 때 딸이 “엄마. 친구가 생일 선물 준거 아껴먹고 서랍에 넣어 두었는데, 아빠가 다 버렸어.”라며 가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깜짝 놀랐다. 사춘기 소녀 방을 함부로 들어가 서랍을 열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데, 허락도 없이 아이 물건을 버렸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남편에게 “여보! 당신 딸 다 컸어. 당신이 버리면 못 사 먹는 나이야? 아무리 부모여도 지킬 건 지켜야지. 내가 당신에게 그런 행동 하면 좋겠어? 생일 선물 받을 것을 버리다니?”라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아이들은 듣기보다는 흘려보내는 거 같다. 딸이 조금 컸다고 가끔 말대꾸한다. 딸바보인 아빠가 그래서 조금 나아진 건지, 일이 바빠서 그런 건지 요즘은 잔소리가 덜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 셋은 아빠 있을 때는 가급적 배달 음식을 먹지 않는다.
남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끝이 없고 미칠 것만 같다. 이런 내가 싫어서 최대한 안 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의 아빠니깐, 내가 선택한 남자니깐, 최대한 이해하면서 존중하면서 살자’라고 마음먹다가도 생일날의 부재처럼 기본을 벗어나면 다시 마음속의 화가 한꺼번에 올라온다.
나는 내가 선택한 남편과 남들처럼 웃으면서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다. 길을 갈 때도 손잡고 팔짱 끼고 내 애교에 웃는 남편 얼굴을 보고 싶다. 내 남편이라고 자랑하며 다니고 싶다. 내가 슬플 때 안아주는 남편이었으면 좋겠다. 남편이 힘들 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네 명이 웃으면서 대화하고 식사하며 사랑스러운 가족이 되고 싶다. 가능할까? 그냥 지금처럼 아이들과의 대화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나의 가장 큰 숙제이다.
202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