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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한 종로 여행:금 모으기 시작과 효과(2)

by 김인경

몇 년 전부터 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 금을 사게 된 것은 금은방 하는 언니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사게 되었다. 자신의 가게로 불러 피자를 사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남편에게 말하니 금은 사도 손해 볼 거 없으니깐 조금 사 놓으라고 했다.

남편 말을 듣고 “언니 덩어리로 천만 원어치만 사주세요. 금이 얼마지요?”라며 물어보았다. 언니는 “한돈에 195,000원이야. 그러면 50 돈 사줄까?”라며 좋아했다.


“그렇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쁜 거 뭐 있어요? 덩어리만 사면 뭐해요. 장식품은 좋아하지 않지만, 목걸이와 반지 하나씩 보여주세요.”라며 금을 사기 시작했다. 이때 산 금은 벌써 50% 이상 상승했다.


그렇게 덩어리는 몇 번 더 사서 모았다. 금값이 몇 달 만에 몇만 원씩 올랐다. 언니는,

“인경아! 금 있는 거 다 가지고 와.”라며 전화가 왔다. 나는

“왜요?”라고 묻자,

팔자. 그리고 떨어지면 다시 사자”라며, 나와 함께 종로로 가서 팔았다. 몇 달 만에 몇백만 원을 번 것이다. 그때부터 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몸에 찬 금은 유방암 수술 통증을 없애 주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면서 왼쪽 팔 통증이 없어졌다. 믿기지 않아, 유명한 한의사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가능합니다. 금의 효과는 사람마다 달라서 어느 정도라고 말할 수 없지만, 잘 맞는 사람은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금을 파는 언니 또한 금이 맞는 사람은 금을 몸에 차면 금의 노란 색이 선명해지면서 이쁘게 빛난다고 했다. 반면에 금이 맞지 않는 사람은 금이 까맣게 변한다며, 가끔씩 가짜 금을 팔았다고 반품해 달라고 오는 손님이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금은 나의 재테크 수단에 포함되었다. 요즈음은 아이들에게도 용돈이 있으면 금 사 놓으라고 한다. 현재 금 한 돈에 32만 원 정도 한다. 금을 금광에서 한돈 캐는데 원가가 70만 원 이상 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미국에서 달라 유지를 위해 금액을 누르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금이 모자라 캐게 되면 금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금을 사주는 이유는, 내가 만약 잘못되면 비상금으로 사용하는 용도로 모아주고 있다. 그때 아무 곳에서 팔면 손해가 크다. 내가 거래하는 곳은, 종로에서 도매로 판매하는 상점과 수공으로 만드는 공장이다. 팔 때도 거기 가서 팔아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 전국의 70% 이상의 금이 종로에서 나가는 걸로 알고 있다. 동네 금방도 내가 거래하는 곳에서 금을 사다 판다.

일반인이 가면 받아주지 않는다. 나는 장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거래가 많아 알게 된 곳이다. 내가 없을 때, 아이들이 스스로 거래할 수 있게 도매 집과 공장을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를 시켰다.


“앞으로 저 대신 우리 아이들 오면 잘해 주세요”라며 웃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고 목걸이 매달 하나를 추가로 주문하고 왔다. 주인분은,

“너희가 오면, 엄마 이름 꼭 말해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말이 없는 내성적인 아들을 챙기면서,

“아들 엄마랑 사장님이랑 대화하는 거 잘 들었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엄마처럼 항상 웃으면서 좋은 말만 하는 거야. 우리 멋쟁이도 이렇게 사람들과 이야기해야 해. 대학에 가도 취업을 해도 알았지?”라고 말하자,

“응”이라고 한마디 대답하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뭐가 젤 중요할까? 바로 미소야. 멋지고 잘생긴 아들이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모두가 아들을 좋아하겠지?”라며 아들에게 말하자, 아들은 만족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시내 구경을 거의 하지 않았다. 모든 물건을 인터넷으로 사는 시대라 쇼핑하러 시내까지 나갈 일이 없었다. 거기다 길어지는 엄마의 투병 생활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지 못했다. 딸은 나랑 다니는 걸을 좋아해 같이 가자고만 하면 무조건 따라나섰지만, 아들은 그때마다 둘만 가라며 한 번도 같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금을 사고 처음 계획한 생고기 집으로 갔다. 평상시에 먹어보지 못한 비싼 곳으로 가자고 하자, 딸은,

“엄마 괜히 모험하고 돈 아까워하지 말고 고기 먹자. 고기가 최고야!”라며 한 번 데리고 간 생고기 집으로 갔다.


가격은 엄청 저렴한데 고기 질은 상급이다. 종로에서 고기 먹으러 갈 때마다 가는 곳이다. 오늘은 딸이 냉면과 공깃밥까지 시켜서 고기는 3인분밖에 못 먹었다. 오랜만에 나는 하이볼도 한잔 마셨다. 계산할 때,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 명이 맘껏 먹었는데 4만 원도 안 나온 것이다. 일반 식당 가격의 반도 안되는 가격이었다.


우리는 딸에게 먹고 싶은 디저트를 고르라고 했다. 인사동을 지나 익선동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플리퍼스”라는 수플레 케이크 가게를 발견했다. 딸은,

수플레 케이크가 먹고 싶었어”라며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우리는 딸이 정하면 무조건 따른다. 세 명이 가서 큰 거 하나와 음료 하나를 시켰다. 가격이 고깃집과 별 차이가 없었다. 세 명 모두 “수플레 케이크’를 처음 먹어보았다. 아들딸은 맛있게 먹었다.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자식들이 먹는 모습도 이뻤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병원으로 왔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힘들긴 했지만, 뿌듯했다. 앞으로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질 예정이다. 아들딸도 만족도가 높았다.


20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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