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은 단순히 지식 전달만 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형성해 가는 과정의 장소이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 한마디와 태도에 영향을 받는다. 부정적인 말은 민감한 성장기 아이들의 자신감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나의 아들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이 상담을 부드럽게 끝내야 한다. 만약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내 귀한 아들의 미래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올지 모른다.
담임 선생님이 학급에서 우리 아들에게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면 반의 다른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무시하게 된다. 심할 경우, TV에서 나오는 왕따도 될 수 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나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다시 물었다.
“또 하나 궁금한 게 선생님께서 “너 왜 전기 전자를 가니?”라고 물어보시니깐 얘가 “취업이 잘 되어서요”라고 말하니깐, 선생님께서 “행복 기준이 중요하지. 나도 여기서 아이들 때리고 막말해도 때 되면 돈 나와서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신 거 맞나요?”라며 억양의 변화 없이 대답을 요구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경악을 금치 못할 대답을 하셨다.
“그건 농담이죠? 내가 뭐 애한테 진짜 때리겠습니까?”라며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냐는 투였다.
이런 말이 농담이다니? 학부모인 나에게도 무시하면서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억지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면 아이에게는 어떻게 했는지 말 안 해도 짐작이 된다. 대화하기 싫어서 억지로 대답하는 것을 알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만약에 여기서 멈춘다면 전화하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
나는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웃으면서,
“선생님!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면 대게 황당해요. 농담이라고 애한테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듣는 아이나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돼요. 입학한 지 1주 일도 안되고 적응도 안 된 상태예요. 그리고 지금은 대학에 관한 생각도 크게 없는 아이예요.”라고 말하자, 한숨을 쉬면서 정말 무식한 엄마와의 상담이라는 투로,
“대학에 관한 생각은 하셔야죠”라고 말하자,
나도 말을 끊고, “당연히 하지요. 누나도 원하는 대학보다 못 간 거 봤고, 아빠도 고대 나오고, 저도 성대 나왔고, 우리 집에서는 경희대가 제일 수준이 낮아요. 아이도 알아요. “누나가 더 잘 갈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도 하는 아이라 공부를 안 하지는 않아요.
다른 학부모에게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 말하면 어떻게 들리는지 물어보세요? 그게 좋게 들리는 말일까요?”라며 말하자, 선생님은 한심하다는 투로 들리지도 않는 작은 목소리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한번 들어보세요!”라며 한숨을 크게 쉬더니만,
“제가 애하고 이야기하면서요. “너 전기 전자는 왜 가니?”라고 물어보니깐 취업 잘되어서 간대요. 그래서 “너 이거 꼭 행복해서 가는 거니? 반도체에 대해 공부한 게 뭐야? 아는 게 뭐야?”라고 물어보니깐 잘 모르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내가 기가 막힌 듯이 웃으며 말하려 하자, “잠시만요.”라며 내 말을 끊고 들리지도 않게 빠른 말로 ““너 정말 행복하길 바란다”라며 아이들에게 장난치듯이 말했어요. 솔직히 학교 선생님이 되면요. 공부도 가르치고 입시도 가르치면서 아이들과 라포를 형성하는 거고요. 아이들하고 즐기는 거예요.”라며 왜 이렇게 답답하냐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처음 우리 아들과 상담할 때, 선생님의 의도가 아이와 친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을까? 아니다. 엄마인 내가 전화해서 따지듯이 말하니깐 최대한 좋은 말로 변명하는 중이다. 그것도 억지로 전화를 끊을 수 없어, 들리지도 않게 의무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이제 입학한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과에 대해 뭘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선택한 과에 대해 모르면 행복하지 못한 것인가?
“그건 당연한 거고요.”라고 말하자.
“그렇지요. 그런 의미에서 농담 따먹기도 할 수 있는 거고요. 언제나 FM 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겁니다.”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었다.
“그거는 저도 인정해요. 선생님!” 그러면서 서로 자기 말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을 다루는 교사가 농담할 때, 아이는 황당해하는데 선생님은 농담 따먹기라고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이게 농담조라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 그러면 아이들 종례 조례하실 때, “너희 과중 왔는데 공부하기 싫으면 목매달아 죽어라. 내가 목줄 갖다줄게”라는 말씀도 하셨나요?”라고 말하자, 어이없다는 웃음소리가 전화기 속으로 작게 흘러나왔다.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들리지도 않게 아주 작게 말했다. 들리지 않는 나는 “네?”라며 반문했다.
“그런 말은 안 했고요. 제가 한 말은 “과중 왔는데 열심히 공부해야지. 공부하기 싫고 대학 가기 싫으면 여기 있지 말고 옆의 다른 학교로 가는 게 낫다.”라고 한 거죠.”라며 적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죽어라!” 이런 말 안 하시고요?”라며 다시 반문했다.
한숨을 크게 쉬면서, “제가 뭐 죽으라고 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정말 안 했을까? 저런 태도인 선생님이 “목매 달아 죽어라! 목줄 갖다줄게.”라고 말하지 않았고,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면, 다 죽어가는 목소리도 들리지도 않게 말했을까? 내 생각으로는 저 정도의 선생님이라면 거짓말 한 우리 아들을 모욕하면서 바로 삼자대면을 하자고 했을 것이다. 분명 했기 때문에 말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식을 안다. 말을 안 하면 안 했지. 선생님이 하지도 않을 말을 했다고 할 아이가 아니다. 내가 몇 번을 확인했는데 자신 있게 말할 정도면 분명히 했다고 믿는다.
“저는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단어들이 많았습니다. 남자 학교니깐, 종례 조례 때 간단한 욕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합니다. 이야기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성격이 엄청 소극적인 아이입니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싸움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말도 딱딱 하는 아이도 아니고,”라고 말하자,
“어머니 성운이가 성격이 좀 보수적이잖아요? 내성적이잖아요?”라며 들리지도 않는 답답한 목소리로 내 말에 동의하는 듯 말했다.
“많이 내성적이지요.”라며 나도 내 아들의 성격을 인정했다.
“이 성격도 좀 밝게 고쳤으면 좋겠어요.”라며 갑자기 아이 성격으로 대화를 옮겨 갔다.
“당연하죠. 우리도 그 부분에 대해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엄하게. 아니 ‘엄하게’가 아니라 재미있게 밝게 키우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라며 아이의 성격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다 웃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아들은 안 웃는다는 것이다.
지금 학부모인 나와 이야기하면서도 이렇게 무시가 깔려 있는데, 아들과 대화했을 때는 오죽 했을까? ‘이런 담임과 대화하면서 웃으면 그 아이가 이상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변명도 이해할 수 있는 변명으로 해야지. 할 말이 없으니, 아이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 일부러 “엄하게”라는 표현을 썼다가 다시 엄하게가 아니라?’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말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부모로써 우리 아들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이 무리일까? 아이의 성격을 탓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선생님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끼며, 학교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