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아들 : 깝쪽 되는 담임 선생님과의 전화상담(1)

by 김인경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역할은 고등학생 사춘기 시절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교사의 시각과 대화는 학생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아들은 담임 선생님 말 한마디에 미래가 좌우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우리 딸이 중2 2학기부터 고1까지 공부를 포기했었다. 그러다 고2 담임 선생님 덕에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까지 올라가는 기적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중요한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아들이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무시를 깔고 상담했다. 엄마인 내가 현명하게 풀지 않으면 아들 인생이 어떻게 꼬일지 모른다. 병원에서 나는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아들 담임 선생님이 8시 반부터 전화가 왔다. 시끄러운 병원이라 첫 번째 전화는 못 받고, 두 번째 전화를 받았다.


“XX 어머님 되십니까? 담임 선생님입니다.”라며 말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지나가듯 말하고 있었다.

“예.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라며 최대한 웃으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라며 선생님은 사무적이고 귀찮은 투로 말씀하셨다.

어제 저희 아들이 선생님과 상담했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하자,

“네.”라고 짧게 선생님은 대답하셨다.


우선 아이에게 성적이 “건동홍숙”도 가기 힘들다며 들어보지도 못한 대학을 말했다는데 맞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이가 중학교에서 10%라고 말했기 때문에, 아래 아이들 빼고 15% 정도로 생각하면 3등급 초반이다. 과를 낮추면 갈 수 있는데, 과가 높아서 선생님은 보수적으로 국민대 정도를 불렀다고 했다.

지금 고1 입학한 지 1주일밖에 안 되었고, 3학년도 아닌 1학년생으로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는지 웃으면서 물었다.


자신은 아이 수준이 이 정도니깐 앞으로 공부해서 올라가자는 의도에서 말했다며, 아이에게 말한 것과 다르게 학부모에게 하는 전형적인 변명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다시 나는 “학원을 안 다닌다는 이유로 무조건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라고 하셨다는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나와서 어떻게 공부하라는 것도 없고,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상황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부모인 저에게도 아무 말씀 안 하시고 학원을 안 보냈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라며 정중하게 따지듯이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러면 제가 애한테 뭐라고 말하지요. 어머니?”라며 기가 막힌다는 목소리로 나에게 반문했다. 또한

네가 원하는 대학에 못 가니깐 학교에 나와서 열심히 공부해라! 라고, 말해야지 그러면 집에 가서 있어라! 라고, 말합니까?”라며 당연한 것을 왜 따지냐는 듯이 말했다.

“아니죠? 집에 가서 꼭 해야만 하는 건지, 학교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상황인지. 저는 말이 듣기에 따라 틀린 것 같아요. 제가 선생님과 대화했다면, 무슨 뜻인지 알았겠지만, 아이가 들어서 저에게 전달했을 때는 말이 바뀔 수는 있어요. 선생님!”이라며 계속 말하려는 나의 말을 끊고,


객관적인 것만 봤을 때, 선생님 입장에서 아이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 하고, 성적은 원하는 대학에 갈 수준이 아닌데, 열심히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잘못된 건가요?”라며 이해 못 하겠다는 듯이 반문했다.


원론적이라는 말이 나오자, 할 말이 없어졌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의도와 대화의 태도가 어떠했냐가 중요하다. 나는 여기서 절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내 아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다.


보통의 학부모라면 여기서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녹음한 담임 선생님과의 내용을 들은 몇 명의 학부모는 화도 내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간 나에게 대단하다고 할 정도였다.




원론적인 이야기인데 제가 기분이 나쁜 건 아이가 학원을 안 다니고 집에 있다는 이유로 어떤 상황인지도 물어보시지 않고, 무조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나와서 공부하라고 하셨다는데, 학교에 간다고 누가 아이를 체크해 주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상황이잖아요? 선생님!“라고 말하자,


”학교 선생님이 감독하지요.”라며 말이 통하지 않는 한심한 엄마라는 듯이

어머니 똑똑하시니 공부해 보셨겠지만, 집에서 애가 얼마나 의지력이 좋아서, 뭐 어머니 아들은 의지력이 좋아서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집이 아니라 도서실에서 공부하잖아요? 그렇죠?”라며 나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갑자기 머리가 확 도는 느낌이었다. “똑똑하시니 공부해 보셨겠지만.” 완전히 무시를 깔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일이었으면, 그 즉시 내 성격에 “뭐라고 하셨습니까?”라며 목소리부터 앙칼지게 되물었을 것이다.

거기다 내 아들이 뭐 그리 대단한 아이도 아닌데 무슨 집에서 공부하냐는 의도가 확실하게 들어가 있는 대목이었다. 또한 얼마나 가난하면 학원도 도서실도 못 보내냐는 의도도 엿보였다.

이해는 간다. 과학 중심 반에 온 아이 중에 대치동의 유명한 학원에 다니는 아이가 적지 않다. 어쩌면 이 선생님에겐 과중반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는 학생은 처음일 수도 있다.


그 순간, 남편이 말하는 ‘깝쪽 된다는 뜻이 이건가? 아니면, 이 선생님은 아예 우리를 무시하고 말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이 머리까지 올라왔지만, 최대한 흥분하지 않았다.


“그건 아이들 차이인 거지요. 제 딸은 도서관에서 공부했었어요.”라고 말하자,

“그렇죠. 도서관에서 공부하죠?”라며 더 말하려는 것을 나는 잘라 버렸다.


얘는 그런 성격도 아니고 체력도 안 좋아요. 아이가 학원 가는 것도 싫어하고 우리 여건에 맞추어 집에서 시키는 거예요?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입학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아이에게 원론적으로 너는 건동홍숙도 힘드니깐 학교 와서 해라”라고 말하자,


그게 다죠. 그게 다죠. 어머님 말씀대로 그게 다죠.”라며 당연한 걸 왜 자꾸 말하냐며 귀찮다는 듯이 다음 말을 끊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게 다라는데 틀린 말은 없다. 하지만 전화상담임에도 선생님 말투에는 처음부터 무시가 깔려 있었다. 귀찮고 당연한 원론적인 말이라며 한심한 학부모로 취급하는 태도에 화가 났다.

-계속

202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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