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낮의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빛에 나는 작은 기쁨을 느낀다. 밤이 되면, 창문 너머로 무수한 아파트 불빛이 반짝거린다. 깊은 밤, 깜깜한 어둠은 나에게 마음의 고요함과 평온을 준다.
지금 있는 요양병원은 외진 곳에 홀로 있다. 한적한 동네는 낮에도 밤에도 사람을 거의 만날 수 없다. 도시의 소란에서 벗어나 세상과 분리된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생활이 나에게는 새롭다. 평소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안정된 삶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있다.
사람 많고 북적거리는 도시의 활기찬 생활을 벗어나면 죽는 줄 알았다. 저녁이면 네온 불빛이 반짝이는 거리를 거닐며 행복을 느꼈다. 서울을 떠나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 잠깐의 미국 유학 생활에 우울감과 외로움에 빠졌던 나는 생각보다 일찍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한국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고요함과 적막감을 견디지 못해 돌아왔다.
지금은 고요함과 적막감, 혼자 있는 느낌을 즐긴다. 편안하다.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이번에 만난 한의사 선생님의 약이 잘 맞는 건지, 내 마음의 평온함이 몸을 치유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사람들과 부딪쳐야 살 수 있는 성격이다. 어떻게 내가 도시 생활을 벗어나서 이렇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글쓰기와 책 읽기에 몰두하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나는 무료함을 못 참는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글쓰기는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책 읽기 또한 다독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많은 시간을 빼앗아 간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글쓰기를 빼 먹는 날에는 큰일을 놓친 것 같다. 마음속으로는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까, 글쓰기는 하루 건너뛰자.’라는 마음을 먹다가도 쓰게 된다. 좋아하는 도시 생활이 글쓰기에 밀렸다. 놀라운 일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 보다. 말이 많던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입이 간지러우면 글로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쁘지 않다. 에너지가 덜 딸린다.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미흡한 글이지만, 나에게 행복을 준다.
병원 생활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글쓰기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말 대신 글로 소통하면서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핸드폰이나 TV보다 더 친해진 노트북. 끊임없이 감사함을 준다.
갑자기 돈 벌고 싶어졌다.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는 건가? 다시 무언가 하고 싶다. 지금 가장 많이 시간을 소비하는 글쓰기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긴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5개월도 지나지 않았는데 욕심이 과하다. 알고 있다. 단지 희망 사항이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치료를 받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앉아서 편안히 핸드폰 볼 시간이 거의 없다. 자기 전에 유튜브를 한번 흟어보게 되었다. 여기서 돈 버는 글쓰기를 보았다. 몇 달 만에 한 달에 1억씩 번다는 유튜버가 있었다. 들어보았다.
두 달간 잡지 책을 필사했다고 한다. ‘왜 잡지 책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유튜버는 말했다. 잡지 책에 실린 글은 글쓰기에 자신 있는 사람들이 쓴 글을 여러 번 퇴고를 걸쳐 올라온 글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잡지 책은 일반 대중이 본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글을 써야 한다. 똑똑한 사람보다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본다. 글이 어려우면 읽지 않는다. 재미있어야 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골라야 한다. 현재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나도 하고 싶어졌다. 딸에게 말했다. 딸이 얼마 전에 토익책과 일본어 시험을 준비한다며 책값을 알아봤다. 생각보다 비쌌다. 용돈으로 사기는 아까웠나 보다. 똑똑한 딸은 중고를 알아보았다. 놀랄만한 결과를 얻었다.
일본어 교재는 2,000원에 샀다. 책값의 10분의 1 가격이다. 토익책은 반값에 샀다. 책이 와서 살펴보았다. 새 책이었다. 만족해하는 딸을 보면서 칭찬해 주었다.
나도 당근에서 잡지 책을 찾았다. 중고 잡지 책을 싸게 구입 하려는 노력은 쉽지 않았다. 헤메는 모습을 본 딸이 “엄마! 여기 새 잡지인데 3월부터 11월까지 한 권에 2,000씩 한다. 택배비 포함 2만 원이래? 살까?”라고 말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사죠.”라고 말했다.
딸에게 카카오 페이 2만 원을 보내면서, ‘나는 왜 똑같은 책을 찾아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먹었다는 증거일까? 잡지 책은 내일 올 예정이다. ‘내가 과연 얼마나 필사할 수 있을까?’ 읽기라도 많이 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행복을 찾아가는 나의 모습에 만족한다. 인생에서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 지금이 아닌가 싶다. ‘돈을 좋아하는 나는 이 행복이 돈과 연결되면 더 즐거울 텐데.’라는 욕심을 부리며, 오늘을 즐기고 있다.
2023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