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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신호등 아래 충돌 : 사고 처리와 인간관계

by 김인경

노란불로 바뀌었다. 달리던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놀란 나도 아슬아슬하게 멈추었다. 앞차는 신호등과 사거리 사이에 있었다. 내 차도 정지선 앞으로 나와 있었다. 후진하고 싶었다. 기어를 바꾸고 백미러를 보았다. 바로 뒤에 차가 정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 정말! 뒤 차가 바로 붙었네. 아저씨 조금 뒤로 가면 안 될까?”라며 들리지도 않는 혼자 말을 중얼거렸다. 앞차가 움직였다.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놀란 나는


“빵---”하고 클랙슨을 꾹-욱 눌렀다. 아랑곳하지 않고 앞차는 나를 향해 뒤로 오고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하는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큰 진동이 내 몸을 흔들었다. 온몸이 앞으로 쏠렸다.

“아이 정말! 뭐야. 이거.”라며 짜증스럽게 혼자 말했다.


앞차에서 젊은 남성이 내렸다. 나는 창문을 내려면서

“아저씨! 빵---하고 누르는데 안 들렸어요? 사거리에서 보지도 않고 후진하면 어떻게 해요?”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못 봤어요.”라며 당황해 사과하자,

미친. 내 성질에 못 이겨 또 소리를 지르네.’라며 나의 성급함이 미웠다.


나도 차에서 내렸다. 생각보다 깊게 박혔다. 추운데 짜증이 났다. 병원 치료에도 팔다리 통증이 좋아지지 않았다. 오늘은 목까지 아팠다. 사우나 가는 중이었다. 빨리 따뜻한 물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지요”라고 말하자,

“차를 고쳐야 할 것 같아요. 보험회사에 연락해야지요?”라고 말하며 나에게도 연락하라고 했다.

저는 왜 연락하나요? 후진하시다 사고 난 건데? 난 잘못이 없는데.”라고 말하자,

“그래도 양쪽 보험사가 와야 하지 않나요?”라며 전화를 걸고 있었다.




차 산 지 10년이 넘었다. 나는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차는 필요하다. 마트나 걸어 다니기 애매한 곳을 가기 위해 장만한 차다. 가족 전체가 움직일 때는 남편 차가 있다.

차를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에 걸렸다. 차는 1년에 3천 킬로 달리기도 어려웠다. 현재 4만 킬로 달린 차이다. 움직이는 시간보다 주차시간이 길다.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 친구 집에 가서 짐을 꺼내다 내 차를 보고 놀랐다. 운전석 맞은편 뒷좌석 문과 바퀴 있는 부분까지 깊게 긁혀서 녹 쓸 정도였다. 언제인지도 모른다. 위치로 봐서는 트럭이 사고 내고 도망간 것 같다.


트렁크도 누가 박고 도망갔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고 범퍼에도 작은 구멍이 났다. 포기했다. ‘이젠 바퀴만 잘 굴러가면 된다. 자주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외관이 뭐 그리 중요할까? 세차도 거의 하지 않는데.’라며 나의 교통수단을 위한 차이다.




오늘은 박은 범인이 내 눈앞에 있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차를 아끼며 타는 스타일도 아니고. 지금은 따뜻한 물이 그립다. 도로의 찬 바람이 내 몸을 파고드는 이 느낌이 싫었다.

보험회사에 전화하고, 사고 현장 사진을 찍는데 차에서 어린 꼬마가 나왔다.

“아빠. 집에 안 가? XX 오기로 했는데?”라며 아이는 급했다.

아빠가 뭐라고 말하자, 사내아이는 말없이 도로 위를 돌아다녔다. 눈이 휘 둥글 헤진 나는 아이부터 데리고 와서,

아가야! 여기서 막 돌아다니면 안 돼. 차들이 달리잖아. 사고 나면 어쩌려고. 여기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자, 운전자는 깜짝 놀라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손잡고 있었다.


자상한 아빠였다. 아이도 착해 보였다. 사고 당시는 정신이 없었지만, 몇 마디 해보니 착실한 젊은 신세대였다. 차를 인도로 옮겨 보험회사 직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 앞 범퍼에 칠이 까지고 약간 찌그러진 상처가 있었다. 상대방 차는 뒤 범퍼에 스크레치가 꽤 있었다. 생각보다 사고가 컸다. 사고 낸 운전자 말에 의하면, 내 차를 백미러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후방카메라로 보면 보였을 텐데 왜 급하게 뒤로 왔는지.

운전자는 조용히 계속 자신이 한쪽 백미러만 본 걸 후회했다. 내 차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내 뒤차만 보였다고 했다. 나는 차를 고칠 생각이 없었다. 귀찮았다. 공장에 맡기고 렌트하고 이런 과정이 싫었다.



이 정도 사고면 아프다고 병원에 가야 한다. 알고 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성실히 사는 착한 젊은 청년이다. 우리 아들딸이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모습 같았다.


교통사고가 나면 대부분 후유증을 핑계로 입원한다. 큰 사고는 당연히 입원해야 한다. 지금 같은 가벼운 사고는 다르다.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사고당한 차의 운전자나 동승자가 아프다고 하면 무조건 치료해 주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다칠 것을 인지하면 반사적으로 피하게 된다. 지금은 체벌이 없어졌지만, 우리가 어릴 때는 학교 체벌이 흔했다. 남자학교는 더했다. 이때 선생님이 체벌하겠다고 학생의 엉덩이를 때렸을 때, 심하지 않으면 치료받지 않는다.


아이는 선생님이 자신을 떄릴 걸 알고 있다. 맞으면 아프다는 것도 안다. 미리 준비가 된 상태이다. 사고도 마찬가지다.



앞 차가 내 차를 향해 올 때 나는 인지하고 있었다. ‘저 차가 내 차를 박겠구나!’ 나는 벌써 핸들을 꼭 잡고 그 차만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하고 있었다. 예측된 사고는 심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충격으로 입원하거나 치료할 정도의 통증은 오지 않는다.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있을 때, 뒤 차에 받히면 충격이 크다. 앞 차에 박힌 거보다 약한 충격임에도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받친 충격은 훨씬 크다. 그때 당시는 아무렇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속이 메스껍고 온몸 여기저기가 아프다.


나는 준비된 상태에서 받쳤다. 처음엔 손이 떨려서 보험회사도 생각나지 않았다. 좀 지나자, 모든 게 귀찮아졌다.




“처음에 큰소리 낸 거 미안해요.”라고 먼저 사과를 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뒤 차를 못 봤어요. 후진하다 사고 난 거니 제 잘못입니다.”라며 그때 서야 인정했다.


“혹시 차 고치실 건가요?”라고 묻자, 어떻게 대답할지 내 표정을 살피다,

“아니요. 괜찮을 것 같아요.”라며 솔직히 말했다.


“파운드로 닦으시면 될 것 같아요. 제 차는 칠이 벗겨지긴 했는데, 수리비 주면 가고 싶어요.”라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얼마나 반가운 소리였을까?’ 그 청년은 망설임 없이

“얼마 드릴까요?”라며 반갑게 금액을 물었다.


“제가 어떻게 말해요. 조금 있으면 보험회사 직원 오니깐 물어보지요.”라고 말하자,

“댁에 가셔서 알아보시고 의논하신 다음, 연락해 주시겠어요?”라며 나를 배려해 주었다.


내 쪽 보험회사 직원이 먼저 왔다.

보험회사 직원은 차를 보더니 “수리비 꽤 나올 것 같아요.”라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장님! 가장 싼 곳에 가서 고치면 얼마 정도 해요?”라고 묻자, “저는 말 못 해요. 가격이 천차만별이에요. 우리가 함부로 말하면 안 돼요.”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아이는 집에 가고 싶어 아빠만 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사장님. 그냥 말씀해 주세요. 저 누구 탓 안 해요. 아시는 데로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빨리 정리하고 갑시다.”라고 내가 말하자,


“그럼, 성수동으로 가야 하는데 거기 가시겠어요?”라며 은근히 합의하지 말라는 의사를 보였다.

“가격만 말씀해 보세요. 가장 싼 금액으로.”라며 웃으면서 내가 재촉하자,


“20-25만 원 정도인데 이건 제일 싼 금액이에요.”라며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바로,

30만 원 주시면 갈게요.”라고 아기 아빠에게 말했다.


남편분 차 아니세요? 상의하지 않으셔도 괜찮으세요?”라며 다시 확인했다. 생각보다 적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안다. 여기서 더 받아서 내가 부자 되는 것도 아니고.


“제 차예요. 지금 이체해 주시면 좋겠는데.”라고 말하자, 망설임 없이 바로 입금해 주었다.

“아가야. 미안해. 추운데 조심히 들어가.”라고 말하며 나는 사우나로 갔다.




오싹한 몸이 따뜻한 물 속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웃음이 나왔다. ‘30만 원으로 뭐할까? 공돈이 생겼네.’


온 가족과 외식하면서 “이 돈을 어디에 쓸까?”라며 즐거운 고민을 했다. “나. 병원에 갈걸 그랬나? 그러면 차도 고치고 합의금도 100만 원 이상 나오는데”라고 웃으며 말하자,


딸은 놀라서 “엄마. 그렇게 살면 안 돼!”라며 핀잔했다. 우리는 다 같이 크게 웃었다.


“당연하지. 우리가 상대방에게 당하면 ‘재수 없다’라고 생각하잖아. 그러면서 우리도 똑같은 행동을 남에게 하며 살면 안 되지. 엄마가 잘못하면 그 죄는 너희에게 가거든. 항상 이치에 맞게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차는 우리의 편리 수단을 위해 사용되는 소모품이다. 잘 사용하면 우리 생활을 더없이 윤택하게 해주지만, 잘못 사용하면 인생을 망칠 수 있다. 운전할 때는 항상 운전에만 신경 쓰고, 무보험차는 장식용 차로 여겨야 한다.


나는 그 돈으로 두 권의 잡지 책 구독을 했다. 하나는 딸이 원하는 “W”, 하나는 청소기를 위해 “주부 생활”을.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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