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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누나가 가르쳐 주는 잘못된 공부습관

by 김인경




고등학교에 첫발을 디딘 아들은 생각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내가 공부를 많이 시키지는 않았다. 초등 저학년 때, 한글을 배우는 것조차 다른 아이들보다 늦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 사실이 염려스러워 전화까지 주셨다.


그래도 나는 공부보다는 학교 다녀온 아들의 모습이 이뻐서 껴안고 뒹굴며 놀기 바빴다. 시간이 흘러 아들이 초등 고학년 때부터는 공부에 조금씩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적 또한 점차 오르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코로나19로 거의 2년 가까이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2학년보다는 3학년 때 성적이 꾸준히 올랐다. 마지막에는 올백도 맞았다. 여기서 내가 방심했다.



몸이 약하고 여린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중3 때 다니던 태권도 학원을 그만두고 복싱장을 보냈다. 아이가 체력이 약해 적응하는 도중 독감에 걸렸다. 폐가 약한 아들은 그때부터 병원 치료를 2달 이상 받았다.


아들이 유일하게 다녔던 학원은 수학뿐이었다. 그것조차도 쉬고 싶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매일 시키던 공부도 고1 2월까지 놀게 했다.



딸과 다르게 아들은 시키는 공부만 했다. 스스로 할 줄 몰랐다.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걱정이 없는 아이다. 긍정의 힘이 너무 강하다. 자신도 알고 있다.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초등 고학년 때부터 입버릇처럼 “아들은 서울대나 연대 갈 거야. 걱정하지 마!”라면서 아이에게 희망을 주었다. 딸은 그때마다 비웃었다. 지금은 나를 원망 한다.


엄마가 맨날 아들에게 잘한다. 잘한다. 하니깐, 엄마 아들이 주제를 몰라요.”라며 어쩔 거냐고 한다.




얼마 전 아들딸과 침대에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들아! 엄마가 아들이 왜 성적이 안 나오는지 생각해 봤어. 아들이 공부를 누나보다 적게 하지는 않거든. 그렇다고 많이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정도면 성적이 나와야 하는데 왜 나오지 않을까? 고민했거든.”이라고 말하자,

아들은 웃으면서 내 손을 꼬옥 잡고,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쳐다보고만 있었다. 딸 또한 엄마가 무슨 말을 할까? 가만히 있었다.


아들이 아직 공부 방법을 모른다고 엄마가 말했지? 누나는 공부 많이 안 해. 알잖아? 그래도 성적이 나오는 건 방법을 알아. ‘우리 똑똑한 아들이 왜 방법을 터득하지 못할까?’라고 곰곰이 생각해 봤어.

아들이 너무 말이 없잖아. 목소리도 작고, 가끔 말하면 엄마도 누나도 잘 못 알아듣잖아. 그게 문제야. 책을 보아도 요점 정리가 잘 안돼. 그걸 말로 표현하면 더욱 안 되고. 엄마랑 같은 책 읽고, 요약해서 말해 보라 하면 잘 못 하잖아.


거기다 아들이 유튜브나 교육 방송을 들을 때, 2배속으로 들어서 말이 너무 빨라. 말할 때는 1배속으로 말해야 해. 안 그러면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 그러니깐 아들이 더 말을 안 하게 되고.

공부할 때, 숲을 보고 나무를 심어야 하거든. 아들은 숲도 잘 보지 못하는데, 그나마 뿌린 씨앗이 땅속에서 올라오지도 못하고 말라죽네. 나무로 자라야 하는데, 땅도 갈라지고 물도 부족해. 우린 그걸 먼저 해결해야 해.


엄마가 결론을 내린 건, 공부가 잘 안되면 글쓰기를 하자. 멋진 아들! 읽은 책을 정리해서 글쓰기로 나타내보는 거야. 엄마가 ’자청‘작가의 ”초사고 글쓰기“책도 주었잖아. 그걸 읽으면 글쓰기 편해질 수 있어.”라고 웃으면서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자, 아들은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그러자 딸은, “수능 끝나면 내가 아들 데리고 문제 하나씩 하나씩 같이 풀면서 공부 방식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게.”라며 긍정적으로 말해주었다.


역시 내 딸이야. 이번 기말은 이쁘니가 아들 성적 올려 준다고 했으니깐 엄마 기대할게.”라고 말하자, 딸은

“그럼 나 알바비 더 주는 거야?”라며 바로 돈을 요구했다.

“당연하지. 성적 오르면 오른 만큼 주고, 아들 붙잡고 한 만큼 따로 줄게. 아들도 성적 오르면 줄게.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자 둘 다 만족해했다.



이런 대화 내용을 아는 분께 말했다. 깜짝 놀라 하셨다.

“아니, 고1한테 초등학생이 하는 글쓰기를 하자고 하면 어떻게 해?”라는 것이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면 실력이 초등학생 실력인 아이에게 고등학생이라고 고등공부시키면 성적이 나와요? 지금은 내용 파악과 문제 요점을 찾는 게 우선이니 초등학생이 하는 글쓰기라도 해야지요.

급하지 않아요. 안되면 1년 재수하면 되는 거고. 급하게 공부시킬 필요 없어요. 만약 실패해도 글쓰기 실력만 남아있고, 책만 많이 읽으면 내가 데리고 사업하면 돼요.”라고 말하자 놀라셨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다.



아이의 실력이 초등학생이면 초등학생이 하는 것부터 배워야 실력이 빨리 늘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공부에 자신감도 붙는다. 조금 늦는 게 늦는 게 아니라 더 빠른 길일 수 있다. 맞지 않는 신발을 신으면 발만 다칠 뿐이다.

부모가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의 욕심에 맞추면 자식과 부모의 사이만 멀어지게 된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는 나가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안되는 아이를 고등학생이라고 고등학생이 다니는 학원에 보내면, 아이는 미안함에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지 못한다. 이때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우리 아들처럼 내성적인 아이는 더 심하다. 또한 시간과 돈의 낭비는 어디서 보상을 받겠는가?


타인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내 자식이 중요하고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 부모·자식 간의 믿음과 신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나는 내 아들을 믿는다. 공부를 못하면 잘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 아들이 엄마를 믿고 따로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금 부족해도 행복하고 긍정적으로 사는 아들을 사랑한다.


아들의 학업 성취를 위해, 가족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나는 자랑스럽다. 가족의 사랑과 믿음이 아들을 지탱해 주고 있다. 아들이 더 많은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도록 딸과 나는 계속 응원해 줄 것이다.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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