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생활 10년 동안 요즈음처럼 소중한 친구가 시간인 적은 없었다. 매일 매일 아쉬움이 남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쓰고 싶은 이야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풍부한 표현력과 매끄러운 문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독서가 필요하다.
치료받고 남는 시간에 글쓰기와 책 읽기를 하고 있다. 시간의 부족함이 느껴졌다. 매일 2시간씩 알바생에게 치료받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병원 정규 치료도 오전 내내 바쁘게 움직여야 끝낼 수 있다. 치료 시간까지 아깝다고 느낀 건, 10년만에 처음이다.
나쁘지 않다.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10년 동안 낭비한 시간이 아깝다. 지금이라도 낭비한 시간을 보상하기 위해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변화하는 내 모습에 놀라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 글쓰기에 왜 즐거움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나는 돈을 좋아한다. 다시는 어린 시절 가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언젠가부터 나는 돈과 연결되지 않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더 신기한 건 나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학교만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부모님도 “계집애가 공부해서 뭐 하냐? 시집이나 잘 가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분이셨다.
초등학교 때, 학원 좀 보내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주산학원 1달을 보내주셨다. 다음 달 수강 일이 다가오자, 한 달이나 다녔는데 실력이 나쁘다며, 돈만 낭비했다며 학원을 바로 끊었다.
나는 그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기초도 없고, 공부 방법도 몰랐다. 제일 중요한 건 앉아서 1시간 이상 공부하지 못했다. 끈기나 지구력도 없었다. 고등학교는 실업계를 갔다.
실업계 공부는 기초가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과목이 많았다. 대학에 들어가 새로운 전공을 배우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왔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다. 내 성격에 적응이 힘들었다. 9 to 6가 나에겐 맞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는 몇 년 다니다 그만두었다. 공부하고 싶었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시집이나 잘 가라며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의 구박이 더 심해졌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취업해다.
외국인 회사에 입사했다. 처음 들어간 대기업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역시나 적응하지 못했다. 거기도 몇 년 다니다 그만두었다. 이제는 돈도 어느 정도 모은 상태였다.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27살, 드디어 대학에 들어갔다. 나의 능력이 조금씩 남들 눈에 띄기 시작했다. 교수님들이 실력을 인정하면서 늦은 나이에 대학 온 걸 안타까워하셨다. 학과장님은 대학원을 권유하셨다. 대학원에 입학하자, 사회교육원 강사 자리를 주셨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내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글이라고는 교수님이 펴낸 사회복지에 관련된 교재 제작을 도와드린 게 전부이다.
글은 똑똑한 사람이 쓰는 거로 생각했기에 시도조차 안 했다.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정말 멋있어 보였다. 나랑 다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맞다.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사람.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내 이야기를 중심으로 친구들에게 말하듯이 편하게 쓰기 시작했다.뭔가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잡지 필사가 나왔다. 잡지 책을 샀다. 몇 년 된 “W” 잡지 책 2권과 “주부 생활” 10권을 중고 마켓에서 샀다. “W”는 표지가 “아이유”라는 이유로 비쌌다. 사고 나서 후회하자, 딸은 자신이 본다고 했다.
나는 잡지 책을 필사하면 좋은 점을 아들딸에게 말해주었다. 엄마를 믿고 따라주는 아들딸은,
“그럼 나는 “W”를 보고 할게.”라며 바로 필사를 시작했다. 기대하지 않은 딸의 행동에 감동하였다.
1시간 반 동안 첫 필사를 마친 딸에게,
“이쁘니! 필사 해 보니깐 어때?”라고 묻자,
“글쎄. 표현력이 좋아.”라며 필사한 좋은 구절을 읽어 주었다.
“우리도 그런 표현력이 술술 나올 때가 있을까?”라고 웃으며 말하자, 딸은 나에게 필사를 빨리 시작하기를 권유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어 엄마. 성취감도 있고, 뭔가 했다는 증거도 남잖아. 뿌듯해. 엄마도 해봐. 손 글씨도 나쁘지 않아.”라고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나는 잡지 책 보다 시사가 좋은데.”라고 말하며, 자신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감사했다.
“우리 멋쟁이 똑똑하네. 아들은 이코노믹이나, 시사 저널 같은 걸 구독해 줄까?”라고 말하자,
“엄마가 알아서 해죠. 엄마가 하라는 데 할게.”라며 웃으면서 흔쾌히 동의 했다.
“그러면 누나는 “W” 구독해 주고, 아들은 기말고사 끝나고 생각해 보자.”라고 말하며, 우리 셋은 기분 좋게 웃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아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고, 가까워지고 있다. 아이들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아들딸이 이야기하는데 못 알아들어 물어보면 답답해했었다. 그런 아이들이 지금은 내 말을 따라주고 같이 필사도 해준단다. 나의 모든 고난이 날아가고 행복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잡지 책은 샀지만, 솔직히 필사할 엄두가 안 났다. 글씨도 악필이고, 성질 급한 나는 손 글씨 자체를 답답해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처음으로 필사했다.
간단한 광고 몇 개를 써봤다. 긴 글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직은 나의 수준이 아니다. 필사하면서 현대사회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나만의 세계에 갇혀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고의 감칠맛 나고 멋스러운 표현력이 감동을 주었다. 보고 쓰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필사하기 전에, ‘필사하고 싶은 글인가?’ 한번 잃어본다. 필사하면서 읽어본다. 제대로 필사했는지 읽어본다. 필사 후 좋은 표현은 다시 본다. 적어도 4~5번은 보게 된다.
학창 때라면 그 표현을 다 외울 정도다. 지금은 4~5번을 읽어도 “좋다.”라고 느끼는 순간, 벌써 이쁜 단어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아들딸은 머리에 남아있겠지?’라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광고를 필사하면서 중요한 건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한 문장을 쓰면서 새로운 단어들을 네이버에서 찾아 적었다. 무식함과 세련미가 떨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1시간 정도를 했지만, 잡지에 있는 짧은 광고 몇 개밖에 못 썼다. 얼마나 해야 글이 좋아질지는 모르지만, 글쓰기 표현에 꼭 필요한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내 소중한 보물인 아들딸과 함께 할 생각을 하니 행복감이 밀려온다. 몇 달만 꾸준히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W”는 어제 1년 구독을 했다. 아들에게 좋은 시사 내용은 무엇으로 정할지 고민 중이다. 이것이 내가 만든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