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무엇일까? 며칠 전 나는 “이게 행복이구나!”라는 감정을 깊이 느끼고 실감했다. 평범한 우리 가족의 일상이 최고로 소중한 선물이다.
딸의 퇴원이 시작이다. 우리는 퇴원을 기념으로 저녁에 치킨과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운동을 못한 딸과 나는 배달료도 아낄 겸 서로 한가지씩 사러 갔다. 딸은 치킨, 나는 떡볶이.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으면서 딸은 내일 케이크 만들러 간다며 설렘을 자랑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케이크는 만든 날보다 생크림이 어느 정도 굳은 다음 날이나 그다음 날 먹는 게 맛있다.
냉장고에 보관해야 하는데 공간이 없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지나가는 말로
“엄마 있을 때 냉장고 정리할래?”라며 은근히 떠보았다.
작년 남편이 일하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시킨 적이 없었다. 지금은 남편이 바빠 늦게 들어온다.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분담해 조금씩 하는 정도이다.
나는 자주 유도한다.
“아빠가 힘들게 일하고 와서 부엌일까지 하면 힘드니깐 너희가 먹은 건 너희가 치우면 어떨까?”라고 말하자,
“엄마 아들아! 너는 설거지하고 빨래해.”라며 딸이 시켰다.
착한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집안의 설거지와 빨래, 쓰레기 버리기, 자기 방 청소까지 맡아서 한다. 딸은 식사를 준비하고 자기 방 청소만 한다. 대신 음식을 책임지는 처지라 냉장고 정리도 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딸이 냉장고를 열었다. 나는 반찬이 담겨 있는 유리그릇을 전부 꺼냈다. 똑같은 김치가 여기저기에 있었다. 남편의 습관이다. 있는 줄 모르고 새로운 곳에 또 담는다. 오래된 음식도 많았다.
딸은 우리 집 냉장고 음식을 신뢰하지 않는다. 유효 기간 지난 음식이 많다는 이유이다. 전부 버렸다. 아까워서 못 버리는 나지만, 오늘은 다 버렸다. 딸이 과일 통 2개를 낑낑거리며 꺼냈다. 썩은 과일과 채소가 곰팡이꽃으로 가득했다.
과일 통 바닥은 썩은 야채들이 물이 흐르다 못해 눌어붙어 닦이지도 않았다. 딸은 자기가 쓰는 세정제라며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큰 야채 통은 화장실로 끌려가 물을 가득 담았다.
아들은 부엌에서 작은 그릇들을 닦았다. 끝도 없이 나오는 설거지에 두 아이는 놀랬다. 버려야 하는 과일과 채소들의 악취로 기분을 상하게 했다. 팔이 아픈 나는 말로만 시켰다.
놀라웠다, 두 아이의 협조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꾹꾹 봉지에 담고 있었다. 남편이 사다 놓고 먹지 않는 김치며 썩은 과일과 채소들. 냄새도 많이 날 텐데. 잘 참고 하는 모습에 감사했다.
두 시간을 넘게 했다. 처음으로 이런 중노동을 한 아들은 더워하며 선풍기를 켰다. 힘들어도 표현하지 않고 웃으며 함께 하는 아들딸이 너무 이뻤다. 딸은 버리면서 아빠에게 계속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다시는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 아빠 카드로 자신이 살림하겠다고.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딸이 해주고 있었다. 행복했다.
아들 시험이 코앞이다. 지금 아들 성적으로는 미친 담임 선생님이 말한 국민대 전기 전자과도 간당간당하다. 그렇다고 아들만 공부하게 할 수는 없다. 지금은 시험보다 함께 냉장고 정리가 우선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나만의 양육 방식이 있었다. 둘을 차별하지 않고 키웠다. 용돈도 나이가 많다고 누나를 더 주지 않는다. 학원도 똑같이 다녔다. 아들이 3년 늦게 다녔을 뿐, 똑같은 학원에 똑같은 과목을 가르쳤다. 먹는 것도 항상 똑같이 주었다.
어릴 때 이런 교육이 놀라운 결과를 보였다. 교회에서 어린아이에게는 간식을 준다. 일요일 각반에서 수업하고 집에 오면 아들딸은 서로의 간식을 꺼내놓았다. 나는 이상해서 물었다.
“왜 안 먹고 가져왔어? 친구들은 다 먹었을 텐데. 먹고 싶지 않았어?”라고 물어보면,
“누나랑 반씩 먹으려고. 반 잘라 줘.”라며 아들은 당연하듯이 말한다. 딸 또한
“나도 엄마 아들 거 챙겨왔어. 동생 주게 하나 더 달라고 했어.”라며 둘은 즐겁게 나누어 먹었다.
지금도 둘이 있을 때, 누나는 먹고 싶은 걸 사 오면 같이 먹는다. 아들은 누나가 사 온 걸 맛있게 먹고 다음엔 자기 돈으로 사라며 돈을 준단다. 딸은 좋아한다. 모든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을.
운동 종목은 태권도나 복싱같이 부모가 함께할 수 없는 종목을 제외하고는 같이했다. 탁구도 아들이 초3 때 하고 싶다고 해서 온 가족이 몇 달간 같이 다녔다. 골프도 스키, 볼링도 배우고 싶어 했다. 몇 달간 아들딸을 데리고 다니며 배웠다. 암벽은 유방암으로 내가 함께할 수 없어 아빠와 했다. 한 가지를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가족 모두가 움직였다.
어릴 때부터 아들딸은 심부름도 공평해야 했다. 심지어 식사 후, 냉장고 안에 반찬을 넣어야 하면 아들이 냉장고 문을 열고 딸이 넣는다. 한 명이 물병을 가져오면 한 명은 물컵을 가져와야 한다. 동생이라고 더 시키면 안 된다.
아무리 시험이 코앞이라도 세 명이 냉장고 청소를 하는데 공부한다고 방에 있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엄마나 아빠가 하면 몰라도. 노동을 처음 2시간 한 아들은 힘들다는 표현도 못 하고 혼자 삼키고 있었다. 귀여웠다.
적극적인 딸은 집에 올 때마다 화장실 청소를 걱정한 나를 생각해서 화장실까지 청소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지만, 몇 달 동안 팔과 다리가 아파서 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힘든 일을 하면서도 즐겁고 재미있게 하는 아들딸을 보며 행복했다.
내가 아이들을 잘 키웠구나! 자식들이 자라니깐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 평생 나만 억울할 줄 알았는데 모든 행복감이 몰려왔다. 살면서 마음 한구석에 늘 부족한 무언가가 한꺼번에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청소를 끝내고 사우나에 갔다.
사우나에 누워 있는데 웃는 아들딸 얼굴이 생각났다. 청소기를 빨리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에 사준 무선 청소기를 딸이 헤드를 부셨다고 했다. 나는 일반 청소기로 있어 신경 쓰지 않았다.
잡지 필사를 위해 잡지 책을 알아보던 중 주부 생활을 2년 구독하면 198,000원에 60만 원 상당하는 무선 청소기를 선물로 준다. 물걸레도 물티슈로 쓰고 버리는 거라 걸레를 빨 필요가 없다. 병원에 돌아와서 그것부터 주문해 주었다.
함께 즐겁게 청소하는 아이들 모습이 생각나면서 웃음이 계속 나온다.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살아있음이 소중함을 알게 해준 날이었다.
2023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