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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Dec 03. 2023

암과의 싸움 속에서 :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나

   

병원의 창가에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치료가 없는 토요일에는 보통 링거를 맞는다. 심한 기력저하로 영양제조차 몸이 받아들이지 못해 한동안 링거 치료도 받지 못했다. 이번에 온 요양병원에서는 수익이 없음에도 수액에 간단한 비타민을 첨가해 링거를 처방해 주었다.    

  

수액만 맞아도 몸이 가벼워진다. 보통 1500 ML – 2000 ML 수액을 맞는다. 주사를 맞는 20시간 동안, 병실 안의 고요함 속에서 보낸다. 주사 바늘이 꽂힌 내 모습을 가족은 물론 다른 암 환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남들에게는 병원에 있어도 항상 건강해 보이는 모습만 보이고 싶다. 병원에서만 10년이다. 처음에는 편안함을 누리고 싶었다. 씻기도 귀찮았다. 남들의 위로도 받고 싶었다. 병원에 입원한 만큼 환자로 나만을 위해 주 길 바랬다.

      

지금은 다르다. 남들에게 이쁜 모습만 보이고 싶어졌다. 항상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이며 부정적으로 살다 죽으면 억울할 거 같다.      




두 번째 암 수술을 마치고, 수술한 병원에서 만난 암 환우 소개로 송파에 있는 통증 치료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 나와 같은 날 입원한 환우가 있었다.

      

나는 오후에 입원하고, 그 친구는 오전에 입원한 같은 병실 동생이었다. 화장을 이쁘게 하고 있었지만, 항암치료로 대머리였다. 뒤뚱뒤뚱 오리처럼 양손을 흔들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걷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나이 많은 언니가 괴로움을 감추기 위해 이쁘게 화장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몸도 가누기 힘든데 화장하고 관리하며 자신감을 내 뿜고 싶어 하는 모습이 뭔가 불안해 보였다.     


나이를 알고 깜짝 놀랐다. 나보다 한 살 어리다고 했다. 식당에서 병실 식구들과 같이 식사하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화장을 이쁘게 했어? 어디가?”라고 웃으며 무심코 물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친구는   

  

내가 화장한 것에 언니가 뭐 보태준 거 있어요? 내가 화장을 하던 말던 무슨 상관이에요?”라며 흥분된 목소리로 화를 냈다. 그녀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식사 중에 놀라서,     


“이뻐서 물어 본건 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해.”라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같은 방의 다른 언니들은 우리 모습을 보고 그 친구를 안쓰러워했다.      


나이 드신 같은 방 언니가 “자기가 이해해!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봐! 자기의 건강한 모습이 부러워서 그런 거 같아? 같은 방 식구인데 자기가 봐주라.”라며 나에게 이해를 요구했다.   

  

“많이 안 좋데요? 몸도 안 좋은데 왜 저렇게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말을 심하게 한 것도 아니고, 같이 밥 먹으면서 그런 말도 못해요?”라며 나의 속상함을 표현하자,     


“말기인가 봐! 살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바로 다시 올라오지도 않는 것 같고. 우리가 이해하자.”라며 나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그 당시 6인실 병실에서 화장한 친구 다음으로 내가 어렸다. 2번째 암 수술 한 내 모습은 항암치료과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아 겉으로는 가장 건강해 보였다. 병실의 다른 언니들은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 중이라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음식 또한 구역질로 거의 먹지 못했다. 통증과 대머리로 겨울이라 머리도 시리다고 했다. 내가 제일 심각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겉모습은 가장 건강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언니들과 친해지면서 본인들의 상태를 말하기 시작했다.         


화장으로 화를 냈던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그 친구는 우리에게       


“언니! 제가 유방암이 발견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은 항암치료 외에는 방법이 없데요. 그때부터 항암치료를 12번 했어요. 10번째부터는 휠체어를 타고 부모님이 데리고 다니셨어요.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살리기 오직 나에게 헌신하셨어요. 그렇게 12번을 마치고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 병원을 알아보다 여기로 온 거예요. 나는 희망이 없나 봐요.”라고 말하며, 10분 정도 앉아 있는 걸 힘들어했다.     

“아이고. 허리가 아파서 앉아 있지 못하겠네.”라며, 엄마처럼 나이 든 언니 침대에 누웠다. 나는

“병원에서는 뭐라고 해?”라고 물자,     


“나는 일하고 싶어요. 직장을 그만두기는 너무 아까워요. 직위도 높고 큰소리치며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내가 화장하는 이유도 나를 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병들어 초라해진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언니가 처음 만나 말하는데 그냥 화가 났어요. 현재의 내가 너무 싫었어요. 내가 왜 이런 병원에 지금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직도 현재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요.”라며 말하는 모습이 슬퍼 보였다.      


그 당시 그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나의 심정이 그때 그 친구 같다. 소중한 내 인생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병원이 집이 되어 지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화장품과 샴푸, 비누, 염색약 등이 유방암에 해롭다. 알지만, 나는 그냥 사용한다. 암 환자가 되면 친환경 제품으로 바꾼다.   

    

친환경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품이나 염색약 등을 어떻게 친환경으로 만들 수 있을까?” 원료들을 살펴보고 화장품 공장에 다닌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내 생각이 맞았다.      


처음 유방암이 왔을 때는 나 역시 친환경 제품만 사용했다. 염색도 하지 않았다. 긴 흰머리가 보기 흉할 정도로 머리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건강 먼저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내가 이뻐 보이고 싶고 어려 보이고 싶다. 옷도 점잖으면서도 어려 보이는 밝은 색상으로 구매한다.  최대한 나를 가꾸고 싶다.  

  

20대 30대에도 귀찮아서 신지 않은 롱부츠에 원색 원피스나 레깅스를 입는다. 가끔 딸과 다니면서

엄마랑 너랑 옷을 바꿔입어야겠다.”라고 말하면,


“난 편한 게 좋아.”라고 말하는 딸을 보면서,

나도 너 나이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 후회하지 않게 우리 이쁘니도 아름다움을 추구해 봐.”라고 말한다.     




병원에 있을 때도 병원복은 치료할 때만 입는다. 화장은 아직도 잘하지는 않지만, 평상시는 긴 원피스를 주로 입는다. 약속이 있어 외출할 때는, 맨얼굴이 아닌 약간의 파우더를 바르고, 립스틱으로 입술에 포인트를 주면서 최대한 나를 꾸며본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이다. 나의 사망 소식은 주위 사람들에게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내 자식과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름다우면서 긍정적인 내 모습만 보여주며 살려고 한다. 이제라도 나를 아끼며 밝고 이쁘게 살아가고 싶다.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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