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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Dec 16. 2023

고통과 희망의 빛 : 유방암과 맞서는 나날들


창문 틈새로 칼바람이 스며들 때생명줄과 같은 이불을 꼭 끌어안는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블라인들 내리는 손길은 익숙하다. 눈을 떠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아픔은 오랜 동반자가 되어 팔과 다리의 통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투병 생활 중 가장 힘든 건과다 생리혈이다. 내 몸에 있는 피의 양이 얼마나 될까? 1년에 15~16번 할 때마다 쏟아져 나가는 피를 보면서 아직 살아있는 나에게 감사한다.    

 

우리 몸에 있는 피의 양은 체중의 8%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의 피는 4-5킬로 정도이다. 이 정도면 몇 리터일까? 4~6리터 정도 될까? 생리 한 번 할 때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피의 양이 1~2리터는 되는 것 같다4분의 이상이 2~3일 안에 몸 밖으로 흘러 나간다.     


혈액이 다시 몸에서 온전히 보충되는 데는 4~6주가량이 소요된다. 그래서 수혈 후 60일 이상 지나 다시 수혈하는 것을 권장한다. 나의 생리주기는 일정하지 않다.      


두 번째 암 수술까지는 보통 23~25일 주기였다. 3번째 수술 후에는 반년간 주기 없이 계속되었다한약을 먹고 3주 정도로 줄어들긴 했지만몸의 기력이 없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피를 보충하는 고열량 철분제부터 여러 비타민 등으로 최대한 보충했다.      


문제는 수치이다. 피에 좋은 음식과 영양제 등으로 의학적인 수치는 그리 나쁘지 않다하지만 내가 느끼는 기력은 최악이다숨을 쉬기도 힘들다온몸의 관절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의학적인 수치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일반 병원에서는 치료도 불가능하다.     


나는 주로 한방병원을 찾는다. 한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 정도의 맥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네요일상생활이 가능하세요?”라고 물어본다. 뼈는 사골 뼈로 생각하면 맞을 거란다. 구멍이 송송 뚫린 사골 뼈라? 황당했다.      


심한 운동도 삼가라 했다스트레칭만 많이 하라고 한다. 그나마 가끔 즐겼던 골프도 탁구도 배드민턴도 멈추었다. 어느 정도 적응될 때쯤 4번째 유방암이 찾아왔다. 끈질기다. 이제는 반기는 사람도 없는데 또 왔다.      


4번째 유방암 수술 후생리는 더욱더 불규칙해졌다한 달에 두 번씩 하는 경우가 벌써 4~5번은 된다양은 처녀 때의 10배 이상은 되는 듯하다최소 1리터 이상은 나간다몸에 피가 생성되는 양보다 내보내는 혈의 양이 훨씬 많다.   

  



어제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한 달 만에 시작했다. 지금 숨을 쉬기도 힘들다머리도 몽롱하다아픈 팔과 다리의 통증은 더욱 심하다몸은 퉁퉁 부어 몸무게도 2킬로나 늘었다.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먹는 음식이 살로만 간다. 한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조금씩 오래 씹으라고 한다많이도 먹지 말라고 한다일반사람들처럼 씹고 삼키면 음식을 소화시킬 수가 없단다.      


입에서 오래 씹어서 가루가 되게 만들란 말인가? 오래 씹으면 맛도 없다. 노력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오늘은 집에도 가 봐야 한다아들 시험이 월요일에 끝난다가서 응원도 해주고 자신감도 불어 넣어 주기 위해 아낌없이 칭찬도 해주어야 한다.     


언제쯤 생리가 끝날까? 남들은 다 끝났는데. 친구들 몇 명도 끝났다. 왜 나만 이러는 걸까? 이렇게 오래갈 줄 알았다면 유방암 첫 번째 수술 후, 자궁적출 수술도 했었어야 했다. 기력이 약해지니 암도 계속 온다     


지금은 수술할 기운이 없다. 8월에 검사하면서 수술하려고 했다. 그때도 수술하면 눈을 뜰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한의사 선생님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나이도 있으니 조금만 참아보자고 해서 포기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레나 시술하려고 했지만, 유방암이 호르몬 암이라 거절당했다. 생리할 때마다 겁이 난다. 내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죽음이 무섭진 않다죽기 전에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무서울 뿐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나의 병시중을 요구할 순 없다내가 지금 잘못되면 아이들이 평생 지고 가야 하는 죄책감도 크다. 아이들은 내 상태를 모른다. 항상 건강해 보이는 모습만 보았다.     


병원에 자주 가는 건 알지만, 힘든 모습은 딸만 한두 번 보았을 뿐 본 사람이 없다. 아이들 만날 때는 가능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난다상태가 별로일 때는 평소 하지 않는 화장도 한다     


내 자식에게는 항상 이쁜 엄마로 남고 싶다용기를 주고 자신감을 키워지는 엄마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같이 있으면 즐겁고 행복한 엄마이고 싶다. 아프다고 찡찡대는 엄마가 아닌.    

 



나는 이 고독한 싸움 속에서도 자식들을 보며 희망의 빛을 찾는다아픔과 투병 속에서도 나의 삶의 가치를 주는 아이들이 있다나만이 줄 수 있는 사랑과 용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투병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내 자신의 강인함을 발견하고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 이야기는 아픔과 싸우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우리 각자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우리가 겪는 고통마저도 우리를 더욱 강하고 지혜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최대한 이쁘게 나를 가꾸려고 한다.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로서 이 정도의 노력은 당연한 건데.


20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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