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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성적 : “70점”에 만족해야 하는 엄마의 마음

by 김인경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며 밤을 지새운 병원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다. 몸이 여기저기 부어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핸드폰 화면에 9시 46분이란 시간이 떠 있었다.



무음으로 설정된 폰 윗부분에 ‘내 멋진 아들’이라는 이름과 번호가 갑자기 떠올랐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소중한 이름을 보며 통화 모양을 누르자, 아들의 밝은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아들과의 통화 목소리인가?


아들이 먼저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말 없고 소극적인 아들은 전화해도 가만히 듣기만 한다. 대답은 오직 “응”과“어”뿐이다. 이런 아들이 먼저 전화했다. 기쁜 소식일 것이다.


“아들! 시험 보고 왔어?”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

“시험 잘 봤어? 몇 점인데?”라며 기대에 찬 엄마는 물었다.

70점대야.”라고 대답하는 목소리엔 신이나 있었다.


“정말! 역시 내 아들이야. 50점에서 70점이면 진짜 잘한 거야. 내 멋쟁이 해냈구나! 70점 되면 다음에 80점 되는 건 쉬어져. ‘티쳐스’에서도 고등학생은 그렇게 못 올릴걸? 아들이 공부 방법을 서서히 깨쳐 가나 보다. 역시 내 아들이야!”라며 눈도 뜨지 못 한 채 엄마의 칭찬이 이어졌다.

어”라는 대답에는 자신도 만족한다는 기분 좋은 대답 투였다.


“누나는 뭐라고 해? 누나도 만족해하지?”라고 묻자, 옆에서 딸이 큰소리로 대답해 준다.

어! 잘한 거야. 나도 ‘티쳐스’에 나가도 될 것 같아.”라며 신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들은 항상 공부 가르쳐 주는 누나의 말에 신경을 많이 쓴다.

누나도 잘했다고 하네. 내 멋쟁이. 정말 수고했고. 우리 주말까지 열심히 해서 마지막까지 잘 보자. 싸랑해! 내 멋쟁이.”라고 말하는 엄마는 아들을 응원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어.”라며 짧게 대답하는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지난 토요일에는 힘이 없다며 외식하러 가는 길도 힘들어했다. 감기에 몸살까지 온 것이다. 약을 먹이고 경옥고를 먹이자, 아들의 혈색이 돌아왔다. 경옥고가 맛이 없어 아이들이 먹는 걸 꺼려했다. 먹고 몸이 편해지는 걸 느끼자, 지금은 불만 없이 하루에 한 포씩 먹고 있다.


어제 집에 갔었다. 감기를 달고 사는 아들은 기침을 계속했다. 약을 먹으면 며칠 괜찮아졌다 다시 기침한다. 시간만 되면 입원시켜서 치료도 해주고, 좋은 한약도 꾸준히 먹이지만, 선천적으로 약한 몸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시험 기간이라 표현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듯하다. 중 3 마지막 중간고사 때 올백을 맞으며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를 마쳤다. 그때만 해도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누나가 고 1부터 고 2까지 성적이 나오지 않자, 누나에게

왜 1등급을 못 맞아? 공부가 뭐 힘들다고.”라며 놀렸다. 그만큼 자신이 찬 아들은 고등학교를 과학 중심 반에 지원했다. 초창기 담임 선생님과 문제가 있을 때도 나 또한 담임 교사에게 연대 보낼 거라며 큰소리쳤다.


하지만, 첫 시험은 비참했다. 영어가 50점대, 국어 수학도 70~80점대였다. 가장 자신 있던 수학까지 기대에 못 미쳤다.


처음에는 우리가 중3부터 고1 올라올 때, 3~4개월 놀아서 공백이 생겼다고만 생각했다. 기말고사는 “잘 보겠지?”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아이와 몇 번의 말다툼이 있었다.


딸도 자신의 수능을 준비한다며, 아들에게 할 양만 정해주고 신경 쓰지 않았다. 학원을 보내고 싶었다. 아들은 어쩔 수 없이 간다고는 했지만, 가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계속 비췄다.


딸도 “가봤자야. 지금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공부 방법이 문제야.”라며 별로 찬성하지 않았다. 나도 알고 있었다. 공부 방법이 문제라는 걸. 학원을 운영해 봐서 안다. 학원 가봐야 우리 아들은 학원에 돈 보태주는 아이라는 걸.


하지만, 엄마인지라 공부 시간이라도 늘려보고 싶었다. 결국 가지 않았다. 2학기 첫 중간고사는 더 비참했다. 딸은


엄마! 알려고 하지 마! 기말고사에 내가 신경 쓸게. 중간 기말 합쳐서 나오는 거니깐 그때 이야기하자.”라며 나를 달랬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이 많았다. 내가 조급해하면 아이는 더 힘들어진다. 딸과 같은 성격이라면 성적이 안 나와도 괜찮다. 딸에게는 시험 성적을 물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가 본 딸은 공부를 못해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은 아니다. 몸도 약하고 착하기만 하다. 마음도 여려 거절도 못 한다. 융통성도 없다. 그나마 기댈 곳은 공부 하나이다.



아들이 어렸을 때,

“엄마! 내가 경찰이 되면 어떨까?”라며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아들이 경찰이 되면 좋겠지? 그러려면, 우선 성격부터 고쳐야 해. 거짓말 잘하고 험악한 범인들에게 아들 목소리로 제압할 수 있을까? 운동도 많이 해야 하고. 경찰은 우선 자기방어는 해야지. 범인한테 맞고 다니면 안 되잖아. 지금의 아들과는 정반대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데 가능하겠어?”라고 설명하자, 다시는 경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장래 희망이 의사라고 했다.

“아들! 왜 의사가 되고 싶어?”

의사는 자기 할 일만 하면 되잖아. 남에게 간섭받지 않고.”라고 말할 때, 나는 크게 웃었다.


“아들아! 의사가 얼마나 힘들지 않아? 인턴 레지 할 때 의사들 잠도 못 자. 매일 혼나고. 아들 체력에 가능할까? 그리고 공부도 엄청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엄마는 별로야?”라며 내 눈치를 살폈다.

“엄마야 우리 집안에서 의사가 나오면 최고지. 하지만, 내 아들이 의사가 되는 건 별로야. 인생 별거 없어. 의사 되려면 적어도 30살 넘어서까지 공부만 해야 해. 그렇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고. 왜 그렇게 힘든 길을 택해?


아들이 한다면 막지는 않겠지만, 아들 공부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의사 되려면 지금부터 공부만 해야 해.”라고 말하자, 옆에서 웃으면서 딸이,


너 공부도 못하잖아. 하지만, 집안에서 법조계와 의료계 한 명씩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며 나를 비행기 태웠다.


“그럼. 의사는 아들, 판사는 딸?”하고 황홀하다는 듯이 내가 물었다. 둘 다 웃기만 했다.


엄마는 그러면 소원이 없지. 아프면 아들이 책임져 줄 것이고. 엄마가 포기한 명예와 부를 두 자식이 이루어 준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만, 엄마는 반대야. 거기까지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어. 우리 주제를 알고 재미있게 살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를 때 가진 꿈들이다. 의사나 판사는 지금 실력으로는 꿈도 못 꾼다. 가끔 이야기하면 웃기만 한다. 이런 아들이 “올 한해 공부 때문에 혼자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딸이

“엄마! 아들이 공부 잘하고 싶데. 영어도 잘하고 싶고.

“아들이 직접 말했어?”라며 놀라서 물어보자,


“어. 이번에 친구와 내기도 했데?

“거기 가서는 친한 친구도 만들었나 보네?”

“4명이 노나봐. 그중에 한 명 하고 좀 더 친하고. 그 친구가 성적이 자기에 0.5점 정도 차이가 난데.”

“도긴개긴이네.”라며 내가 웃자

끼리끼리 놀지. 나도 그랬어?”

“딸 친구 중에 대학 잘 간 친구 있어?”라며 의아해 물어보자,

“홍대 경영학과 갔잖아.”


“그 정도면 이 동네에선 잘 간 거지. 내기는 뭐했다니?”

“지는 사람이 만원 한도에서 밥 사 기래!

“만원? 만원으로 뭐 먹어?”라며 신기해하자,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맘스터치가 있잖아!”라며 말하는 딸 말에 둘은 크게 웃었다.



아들이 학교 다니면서 처음으로 친구들과 밥을 먹고 온 적이 있었다. 놀랬다. 돈을 줄 테니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는 아들이 저녁을 먹고 온다는 전화를 했었다. 궁금한 나는 물었다. 어디서 먹었는지. ‘맘스터치’라고 했었다.


이번 시험은 아들이 이길 것이다. 아들은 오늘의 힘을 얻어 마지막 남은 고1 시험을 잘 볼 것 같다. 1등만 고집한 나의 기준이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 몰랐다. 어쩌겠는가? 내가 공부하는 게 아닌데.


무조건 아들을 응원해야 한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건 아들의 자신감이다. 더더욱 중요한 건 엄마에 대한 신뢰이다. 항상 엄마는 자신을 믿어 주는 최고의 지지자라는 걸 심어주어야 한다.


시험 끝나는 날 우리 셋은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보고 외식하며 특별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은 아들이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맞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우리의 작은 약속이다. 월요일 날을 기다리며 마지막까지 노력하는 아들을 사랑한다.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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