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 담임 선생님의 불신에서 아들 구출하기(1)

by 김인경


병원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어딘가 멀리 떠다니고 있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은 마치 아들의 밝은 미래처럼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아들 담임 선생님과 긴 전화상담을 마친 후, 몸이 급격히 쳐지고 마음이 무거웠다.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아 커튼을 치고 의사 선생님을 불렀다. 링거를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쉬고 싶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있는 일이라 생각이 많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일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공교육은 나라에서 무료로 해주는 교육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아이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선생님의 가치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가 선생님 생각처럼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에 다니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참했을까? 공교육과 학원 교육 사이에서 갈등이 생겼다. 선생님의 편견에 관한 질문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학원 교육이 현재 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보내야 하는 건가? 선생님에게 보여주기 위해 학원에 다녀야 하는 게 현 교육 실정인가? 아니면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처럼 교육청에 전화하고 교장실로 가야 하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민하는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아들 학교 번호였다.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들과 1시간 정도 이야기하면서 오해될 만한 소지는 다 해결했지만, 한가지는 선생님이 양보 못 한다며, “집에만 혼자만 있으면 안 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군대 가서도 겪어야 하니깐 대화를 많이 하자.”라고 했단다.


내 새끼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아들에게 밝게 웃었으면 좋겠다고 못을 박았단다. 아들에게서 “노력해 보겠다.”라는 대답을 듣고선 일단은 이야기를 끝냈다고 했다.


처음부터 선생님이 편견 없이 대했다면 아들이 상처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서로 마무리하는 과정이라 나도 웃으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만 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들과 이야기는 잘 끝냈지만, 아들이 다르게 오해할 수 있을지 모르니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시고 오해되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전해달라.”라며 처음 대화와 다르게 아이와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느낌을 주었다. 나도 여기에 부응하기 위해 “잘 말씀해 주셨겠지요?”라며 선생님 편에서 대답했다.




담임은 내성적인 아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말해 보라고 했단다. 아들은 누나와 게임 했을 때라고 했단다. 담임의 목소리는 더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의문에 차 있었다. 나는 부정하지 않고 가족끼리 놀 때를 가장 좋아했을 거라며 자연스럽게 확인시켜 주었다.


선생님은 친구나 다른 쪽을 유도해 봤지만, 가족 이야기만 하는 것에 놀란 것 같다. 나는 가족의 유대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간단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끼리 잘 지냈지만, 내가 아프고 나서도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도록 남편에게 5~6년간 아이들만 돌봐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도 “어머니께서요?”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집과는 다르다는 거 인정한다. 보통 아빠가 경제권을 가지고 경제적 활동해야 가정이 돌아간다. 우리는 함께 학원을 했지만, 남편과 나의 수익은 비교할 수 없었다.


처음 결혼해서 학원 운영할 때, 나는 수입을 합쳐 재산을 모으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반대했다. 각자 벌어서 쓰자며 자신이 수업해서 들어온 과외비를 혼자 관리하며 사용했다. 여러 번 요청했지만, 의견 합의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불리하니 남편은 그런 적 없다고 했지만, 그때는 늦었다. 남편이 번 돈은 주식으로 모두 날렸다. 결국 우리 집은 내가 경제권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학생을 둔 가정에서 가족 간의 불화가 없는 집이 드물다. 아이가 어떤 성적을 받아도 부모는 만족하기 힘들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부모와 대화를 최대한 회피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인 경우는 더 심하다.


담임은 이런 점을 알았기에 학교에서 어떤 행동을 해도 아이들이 집에 가서 이야기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학부모가 전화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는 엄마들이 성적에만 매달린다는 걸 알았기에 처음 나에게 말한 것처럼 무언의 협박이 먹혔던 거다.




아들과 이야기하며 남들과 다른 가족애에 놀란 담임은 이제야 제대로 된 상담할 자세가 되었다. 아들이 엄마와 누나를 유달리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엄마나 누나가 생각 없이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도 조금은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치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나는 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아들을 마음껏 높였다. 아들이 처음엔 공부를 못했지만, 항상 엄마가 “이 정도면 잘했어. 다음엔 조금만 더 잘하자. 역시 멋쟁이야.”라며 칭찬으로 키우면서 아이가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하자, “칭찬으로 키우면 좋지요.”라며 모든 말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나는 한술 더해서 “아들은 서울대 갈 수 있다. 하지만, 과가 높으면 연고대도 괜찮다.”라는 식으로 키웠다며, 아들을 연대 이상 보낼 것을 확신하듯이 말했다.




‘못 가면 어떠냐?’ 지금부터 기죽일 필요 없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내 자식을 무시하는 선생님께 엄마가 되어서 같이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는 무조건 아들 편이다. 지금은 담임 선생님을 맞추어 주면서도 다시는 우리 아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아들이 성장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도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들이 조금 부족한 길로 가라도 엄마인 나는 그의 곁에서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어있다.


-계속-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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