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담임 선생님 편견을 이긴 가족의 결속(2)
가난이란, 인간이 살면서 돈이 없다는 건 비참함을 의미한다. 월급 전에 떨어진 통장은 기다리면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끝도 없는 가난은 삶의 질이란 표현이 호사스럽게 들린다.
어렸을 때, 나는 가난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온몸으로 경험했다. 돈이 없다는 건 단순히 재정적 어려움을 넘어, 때로는 인간 존재 자체의 비참함을 상장하기도 한다. 주위의 무시는 당연하다. 심지어는 친척들도 싫어한다.
냉정한 시선과 멸시 속에서, 어린 나의 성격 또한 세상을 긍정으로 볼 수 없었다. 가난한 가정은 자녀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거기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는 밤마다 가족을 괴롭혔다.
나는 항상 돈을 모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 집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였다. 결국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 후에 벗어났지만, 가난은 희망이 없는 상상할 수 없는 지옥의 연속이다.
나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돈도 모으고 늦게나마 공부도 했다. 살면서 여러 유혹도 많았지만, 떳떳하게 살고 싶어 달콤한 유혹도 뿌리쳤다. 무던히 애썼다. ‘절대 내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리라. 내가 원하는 행복한 가정을 선물해 주리라.’라는 신념 하나로 살았다.
우리 아들이 가난에 찌든 가정에서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 불쌍한 아이 취급을 고등학교 올라가서 받았다.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교 1학년 담임에게. 참혹한 현실이었다.
계속되는 상담에서 나는 아들 칭찬을 많이 했다. 아이가 머리도 좋고, 칭찬에 따라 행동이 바뀌는 아이라며 말이 없어도 능력 있는 아이라는 걸 강조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들은 친구들보다 누나와 엄마에게 만족을 느끼는 아이라는 것도.
학원을 그만둔 이유도 누나가 “메가스터디”를 끊어주면서 시간표를 짜주자, 불만 없이 따라 했다. 메가 방송이 학원보다 좋은 강사들은 많지만, 의지력을 걱정하자, 스스로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학원을 과감히 그만두었다는 것도 정확히 말했다.
문제를 많이 풀지 않는 이유는 학교 가면 핸드폰을 내면 할 일이 없어 그때 하면 된다며 방학에 쉬고 싶다고 했다. 언제든 아들이 원하면 과외든 학원이든 보내주겠다고 했기에 아들 자유에 맡겼다는 것도 강조했다.
은근히 우리가 은평구에서는 살 만큼 산다는 것도 누나의 말을 빗대며 담임에게 강조했다. 가난해서 학원에 못 가는 집안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담임의 불신을 풀어야 했다.
작년에 아들딸과 식사하면서 직장에 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예전의 나는 무조건 돈과 명예를 얻어야 한다는 태도였지만,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지금은 다르게 말한다.
“아들딸, 우리나라에서 살려면 학벌은 무시할 수 없어. SKY 나오면 더없이 좋겠지만, 못해도 상위학교는 가야 해. 평생 달고 사는 거라 무시할 수 없어.”라고 말하자, 딸이
“나도 그건 느꼈어.”라는 대답을 해 놀란 적이 있었다.
“언제 딸이 그런 걸 느껴?”라며 놀라운 듯 묻자,
“학교에서 한번 부모님 학벌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어. 그때, 아무 생각 없이 내 차례가 되어 엄마 아빠 학벌을 말했더니,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모두가 나를 보는 거야.”
“왜? 보는 눈이 어땠는데”라고 웃으며 묻자,
“나를 다르게 보더라고. 그때 알았어. 학벌이 중요하다는걸.”
“맞아. 학벌은 중요해. 하지만,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어. 그리고 직장은 꼭 있어야 해. 그렇다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는 마. ‘가늘고 길게’라는 말이 있잖아. 예전의 엄마라면 ‘굵고 길게’라고 말했을 거야. 거기서 최고가 되라고. 하지만, 지금은 최고보다는 중간만 가고 시간의 여유를 얻으라고 말하고 싶어. 일은 맡은 일만 문제없이 하고 최대한 너의 시간을 가져.
그 시간에 너희가 하고 싶은 모든 걸 해. 돈 벌어서 모으려고도 하지 마. 사고 싶은 거 사고 하고 싶은 거 번 돈 한도에서 써. 그리고 돈이 남으면 금을 사. 엄마가 너희를 위해 보험도 충분히 들었잖아. 아파도 걱정 안 할 정도로 충분히 들어놨어. 인생 별거 없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깐 항상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아야 해.
남도 생각하지 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항상 남을 의식하면서 사셔서 내가 뭘 하고 싶어해도 찬성한 게 없었어. 남들이 보면 뭐라 하겠냐며? 그게 뭐가 중요하니? 무조건 너희가 행복해야 하고 너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해.
돈도 너희가 쫓는다고 모이지 않아. 돈은 따라오는 거야. 엄마 봐라. 이렇게 많은 돈 벌었어도 엄마에게 써보지도 못하고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날아가고. 지금도 돈만 찾고 있잖아.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버리질 못해. 너희는 엄마처럼 살면 안 돼.”라며 이야기하자,
“엄마. 나는 쓰는 돈이 없으니깐 돈을 벌지 않아도 되잖아?”라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질문에 할 말을 잃은 나는 웃으면서 먹던 밥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딸이,
“무슨 소리야. 서울에서 숨만 쉬어도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들어. 냉장고 음식은 거저 나니? 지금 먹고 있는 음식도 돈 주고 사야지 누가 주니?”라며 황당하다는 듯이 누나가 흥분하며 말했다. 이렇게 철없는 아들 때문에 당황스러웠다며 선생님께 이야기 해주었다. 선생님도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당황스럽네요.”라고 대답했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아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과도 스스로 결정한 것임을 알렸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저도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아이가 원하는 과를 선택해서 평생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가 저의 지론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 아들을 엄청나게 아끼는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웃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우리 아들! 잘 웃어요. 엄마는 아들이 웃으면 잘생긴 얼굴이 더 잘생겨 보이고 이뻐 보인다고 말하자, 계속 웃고 다녔어요. 잘 웃는데 요즘 학교 다니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담임은 중학교와 환경이 달라서 웃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며, 오늘은 2번 웃었다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담임 선생님한테 놀랬는데 말 못 하고 혼자 힘들어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상식적이지 못한 담임의 행동을 집으며 이야기하자 자신도 잘못된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어제도 딸이 전화했다고 하자, 담임은 “한번 거치고 들으셨구나?”라며 의문이 풀렸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바로 “아니요. 둘이 이야기하는 걸 스피커 폰으로 같이 이야기한 거지요!”라며 세 명이 함께 이야기했다는 걸 강조했다.
모든 아이가 담임 생각처럼 함부로 대해도 아무 말 못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 주었다.
여기서 나는 담임에게 경고를 웃으면서 했다.
“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가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해 볼게. 만약 이야기가 잘되지 않으면 학교를 찾아가는 한이 있어도 먼저 담임하고 이야기해 봐야지.”라고 말하자,
“그러셔야지요!”라며 담임이 기가 조금 죽어 대답했다.
“혹시나 너에게 피해가 간다면,”라며 계속 말하는데 담임은
“아이 그런 건 없지요.”라며 부정하고 있었다. 나는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전학을 가는 한이 있어도 너에게 피해 가게 하진 않을 거고. 만약에 전학을 가게 되면 엄마가 가만히 나누고 갈까? 학교 가만히 안나 둬. 다 뒤집어 놓지.”라고 말하자, 담임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절차와 순서라는 게 있으니깐 말해 보고 말이 안 통하면 그다음엔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깐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자, 담임의 대답이 더욱 정중해졌다.
나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예전에 학원 할 때 남편이 그 학교에 방과 후 교환 강사로 나갔었다. 남편은 그때의 인맥을 들먹였지만, 나는 필요 없다고 했으며 내가 해결하겠다고 했다는 걸 강조하면서, 반협박식으로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집에서 공부한다니깐 형편이 어렵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라고 묻자,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엄마와 대화해 봤는데 우리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면서, 아들에게
“만약에 공부하기 싫다고 한 아이에게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이가 어딜 갔을 거 같아?”라고 물었단다. 아들이 바로 “PC방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너도 알다시피 학원도 안 다니고 경제적으로 힘들다고는 말 안 했지만,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야지!’라고 말한 게 맘 상했니?”라고 물었단다.
지금처럼 부드럽게 물어본 게 아니라는 걸 담임도 알면서 계속된 변명이 웃겼다.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걸 버리지 못했다. 내가 아니라고 한 말이 생각나니 바로 거짓말로 얼버무리는 담임의 가치관을 바꿀 수 없다는 걸 확신시켜 주었다.
일반적인 아이처럼 대해서 그랬다는 담임의 변명이 웃겼다.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아니다. 아이가 학원을 스스로 가기 싫다는 아이보다는 경제력이 어려워서 못 가는 경우가 많은 동네이다. 또한 누가 누나가 가르쳐주는 공부를 하겠는가? 대부분 누나와 동생 관계가 좋아도 누나가 모든 학과 공부를 가르쳐 준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는 거 인정한다.
하지만, 신학기부터 담임이 학생에게 색안경을 끼고 대하는 방법이 틀렸다. 이해 안 되면 자세히 물어보고 아이의 의사를 엄마인 나에게 말해주었다면 훌륭한 담임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자신의 기준과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고, 가난한 집안의 아이라고 함부로 대하고 결정하고 판단한 담임. 적응도 안 된 학생을 신학기에 눌러버린 선생님을 어찌 제대로 된 교육자라 하겠는가?
가난이 아이들에게는 죄가 아니다. 현실을 피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학교 담임 선생님만은 사랑으로 대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자라라는 아이가 가난 때문에 꿈과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기도 전에 막살 당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2024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