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병원의 풍경 : 마루타는 안 할래요!

by 김인경


수술하고 한방병원에서의 입원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었다. 양방병원처럼 한방병원도 대학병원에는 레지와 인턴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의과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더 많은 배움을 갈망하며, 인턴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새싹이 싹트는 것처럼 신선하고 희망찬 모습이었다.



양방과 달리 한방의 세계는 인턴 생활 1년 만에 레지로 승진했다. 그들은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실습도 하고, 각 과의 교수님들에게 의학의 전반적인 흐름을 배운다. 레지로 승진하면 대부분 대학원에 입학하고, 인턴 때와는 달리 그때부터는 정식 한의사로 그들 명의로 진단서도 발급된다.


인턴들은 한계가 있다. 그들은 아직 침술이나 약을 처방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환자가 많은 과는 인턴이 전기 침과 같은 간단한 침술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때 환자들은 마치 실험 대상인 마루타가 된다. 대부분 환자는 인턴과 레지를 구분하지 못할뿐더러 의사가 말하면 무조건 신뢰한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태도를 취했다. 그들에게 침을 맞거나 약을 처방 받지 않았다. 웃으면서 인턴들에게 물어본다.


“선생님! 나 마루타 되고 싶지 않아요. 침 많이 놔 봤어요?

당황해하는 인턴 선생님은 “그럼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선생님과 머뭇거리는 인턴으로 나뉜다.


“누구에게 얼마나 놔 봤어요? 학교에서는 누구에게 실습해요?”라고 묻자,

친구들끼리 서로 놔 줘요. 그리고 집에서 식구들에게 해봐요.”라며 솔직히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엄마는 무슨 죄야? 자식 잘 둬서 안 맞겠다고도 못하고!”라고 말하면, 인턴들도 웃으면서 “그러게요. 엄마잖아요.”라는 인턴도 있지만, 엄마가 얼마든지 연습하라는 분도 계신다고 했다.




한방도 양방처럼 대부분 주치의인 레지 선생님이 침과 약을 처방한다. 레지부터는 정식 한의사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마음 놓고 환자에게 연습할 수 있다.


지금은 몸이 약해서 침을 전혀 맞지 않지만, 초창기에는 침을 맞았다. 처음에는 나도 뭘 모르고 맞았다. 봉침을 맞아보고선 다시는 레지에게 침을 맞지 않는다.


봉침은 한의약에서 말하기를 “자연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한다. 벌침으로 아무리 맞아도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봉독을 위해 테스트하고 문제가 없으면 환자에게 맞게 농도를 조절해서 놔준다.

봉침은 가능하면 대학병원에서 맞는 게 좋다. 봉침은 농도 조절이 중요하다. 알레르기 성분을 제거하고, 봉침의 농도를 1,000:1부터 20,000:1까지 세분화했다.


처음 봉침을 놓는 레지는 주사기에 있는 약물을 흘릴 뿐 아니라 손을 떨고 있을 때가 많다. 특히 앞면 마비에 같이 얼굴에 놓는 경우, 고도의 스킬이 필요하다.



침구과는 다른 과에 달리 침을 잘 놔야 한다. 침을 배우고 싶으면 침구과로 가고 약을 조제 하기 위해서는 내과 쪽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한 인턴이 레지로 승진을 한 달 남긴 의사가 있었다. 그 레지는 침구과를 선택했다. 침을 많이 놓아 보고 싶어 했다. 특히 장침을 배우고 연습하고 싶어 했다. 나는 장침에 한번 놀란 적이 있어 절대 맞지 않지만, 허리나 근육 쪽에는 장침을 잘 놔야 유명해진다.


레지는 매일 내 옆의 언니에게 와서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같이 대화도 해주고 시간을 보냈다. 언니는 심심하기도 하고 친절한 의사 선생님께 감사했다.


그 친구는 언니에게 침을 맞으면 효과가 좋으니 놔주겠다고 했다. 나는 옆에서 웃음만 나왔다. 언니는 거절할 수 없었다. 엎드려 누우면 레지는 장침을 들고 한참 고민한다. 그러다 이것 저곳을 찌른다. 옆에서 보는 나는 겁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레지 선생님이 간 다음에 언니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 입 막고 침 맞았다. 왜이리 아프노?”라고 말했다. 나는 웃고만 있었다. 레지도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마루타가 되고 싶지는 않다.




15년 전, 결혼 초에 아이 둘을 낳고 시집과 남편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던 나는 못된 성질에 못 이겨 자주 아팠다.


한번은 허리가 너무 아파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엎드린 나는 장침을 놓는지 일반 침을 놓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어 며칠 계속 왔었다. 갑자기 속이 안 좋고 이유 없이 움직이기 힘들어 동네병원에 입원했다.


학원 쉬는 주말만 치료받고 나갈 예정이었다. 모든 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아이들도 어리고 학원 때문에, 퇴원해서 나가면 2~3일을 못 견디고 기절하듯이 입원을 반복했다.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검사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에 가도 병명이 없어 입원이 안 될 거라며 가끔 와서 쉬고 가라고 했다. 마음이 급했다. 아이들도 걱정되고 학원도 잘못되면 우리는 살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미칠 것 같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오빠와 친척 오빠를 데리고 병원에 오셨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병 문환 오실 분이 아닌데 이상했다. 친척 오빠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평상시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고 아프다고 올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닌데.


아니 이 밤 중에, 모두 웬일이세요? 오빠는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친척 오빠에게 묻자, 이상한 긴 쇠붙이 두 개를 흔들며, “입원위치도 좋고, 누워봐”라며 명령조로 말했다.


“어떻게요? 똑바로요?”

“어. 똑바로.”라고 말하며, 내 손을 잡았다. 한 5분 정도 있다가 “엎드려 봐!”라며 내 등을 쓰다듬었다.


“인경아! 너 허리에 침 맞았니?”라며 묻는데, 깜짝 놀란 나는

오빠가 어떻게 알아요? 귀신도 아니고?”라고 황당해하며 묻자,


그 침이 너의 모든 장기랑 몸의 리듬을 다 망가트렸어. 이제 괜찮아 질 거야. 퇴원해서 큰 병원 가지 말고 2~3일만 더 있다 퇴원해. 그리고 다시 연락하자. 나 지금 너무 힘들다.”라며 곧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며 갔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다음날부터 내가 돌아다녀도 몸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빠 말대로 며칠 더 있다 퇴원해서는 정상인이 되었다. 나는 이해 할 수 없어 전화했다.


오빠 말로는 “기치료”라고 했다. 나 해주고 오빠는 2~3 동안 산에 가서 기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웃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암보다 더 심각했었다. 일상생활이 전혀 되지 않았었다.


그 당시 오빠의 직업은 학교 생물 선생님이었고, 아들은 대학병원 의사였다. 나는 침의 무서운 경험을 하고 난 후, 절대로 장침은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레지가 놓는 마루타는 더욱 조심한다.




한방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그들의 노력과 도전에 존경심을 표한다. 또한 환자로서 내가 겪은 고난과 회복의 과정은 한의학에 대한 깊은 이해의 기회가 되었다.

현재 나는 더욱 신중하게 나의 몸을 돌보며, 한의학에서 내게 필요한 것을 좀 더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 대학병원의 인턴과 레지던트의 세계를 경험하며, 한의학의 다양한 얼굴을 보았다. 그 속에서 얻는 지혜와 교훈이 내 삶의 소중한 일부가 되었다.


20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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