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의 시각에서 본 의료시스템:2차병원 & 3차병원

by 김인경


나에게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온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찾아간 곳은 당연히 크고 유명한 병원이었다.


L 병원에서 첫 수술을 후, 교수님과 레지 선생님의 강한 권유로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그 길이 내게 맞는 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항암 & 방사선 치료를 거부한 나는 L 병원을 다시 갈 수 없었다.




한방병원으로 발길을 돌린 후, 양방과 한방의 협진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주었다. 3차 병원은 아니어도 의료진도 믿을만했다. 이 병원에서 2번째, 3번째, 4번째 수술을 하면서 나의 주 치료 병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수술의 결과는 모두 만족했다. 나는 큰 병원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하기 시작했다.




처음 암이 우리 몸에 찾아오면 걱정이 앞서 모두가 큰 병원으로 간다. 물론 나도 그랬다. 지금은 2차 병원도 가볼 것을 권유한다. 2차 병원의 장점은 교수님이 모든 부분을 보살펴 주신다.


3차 병원의 유명한 교수님은 바쁘셔서 잠깐 얼굴만 비춰주시고 아래 레지나 인턴이 모든 일을 한다. 수술도 ‘담당 교수님이 많은 수술을 모두 하실까?’라는 의문이 든다. 웬만한 수술은 레지가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큰 수술에서 중요한 순간에는 교수님이 하실지 몰라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담당 교수님이 다 할 거라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첫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준비하기 위해 입원한 암 환우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웃음이 나온다. 그들은 삼성, 아산, 서울대 등 3차 병원에서도 유방암에 가장 권유자인 교수님에게 수술했다며, 서로 같은 교수님일 경우 반가워한다.

여러 명이 이야기하는 걸 듣다가 웃으면서 내가 물었다.

“자기야! 정말 그렇게 유명하신 교수님께서 간단한 유방암 수술을 직접 하셨을까?”

“그럼요? 근데 뭔가 이상하긴 했어요.”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가?”


“수술 후, 몇 가지 의문이 생겨 질문했는데, 옆의 새끼 의사들을 쳐다보는 거예요. 그랬더니 한 의사가 나와서 설명하더라고요.”라고 말하자, 또 한 명의 환우는,


“나는 남편이 물어보니깐, 교수님을 얼버무리다가 옆의 의사에게 ‘이런 것도 내가 설명해야 하나?’라고 말하자, 옆의 젊은 의사가 놀라서 대답했어요.”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답 나왔네. 그 의사가 수술한 의사겠지? 수술실에 교수님께서 있었는지는 몰라도, 수술은 딴 사람이 한 거지. 수술실에도 있었을까? 자기 마취 상태에서 누가 있었는지 알아? 유방암처럼 간단한 수술을 교수가 직접 할까? 하루에 몇십 건은 될 텐데 가능할까? 그리고 교수가 간단한 수술까지 다 하면 레지나 인턴은 언제 연습하지? 우리는 마루타야.”라고 말하자, 다들 자신들의 수술 상황을 생각하면서 부정하지 않았다.




20대에 맹장이 터진 적이 있었다. 동네 유명한 병원으로 가서 급하게 수술했다. 수술 후 자국을 보니 3~4센티 되는 작은 칼자국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맹장 수술은 간단한 거구나!’라고만 생각했었다.


몇 년 후, 대학병원에서 맹장 수술한 환자들을 만났다. 칼자국이 나의 2배가 더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학병원에서 높으신 교수님은 가족이 아닌 이상 맹장 같은 간단한 수술을 직접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도 위험한 수술이거나 급박하지 않으면 나이 드신 교수님이 아닌 젊은 레지나 인턴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조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마취 상태이다. 수술 후 자국을 봐도 짐작이 된다. 나의 2번째, 3번째, 4번째는 K 병원 교수님이 해주셨다.


처음 수술과 비교가 되었다. 크기부터 다르다. 마지막 실밥까지도 교수님께서 직접 정리해 주셨다. 암 수술 환자가 3차 병원처럼 많지 않기 때문에, 2차 병원에서는 레지나 인턴에게 맡기지 않았다. 어쩌면 그 교수님 성격일 수도 있다.


그분은 수술할 때 수술복을 입으시고 수술실로 들어오셔서 수술 준비하는 과정까지도 보여 주신 후, 마취를 시작했다. 수술 후에도 그분은 직접 병실로 오셔서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이처럼 교수님은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하셨고,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차이는 환자에게 큰 안도감을 준다.




나의 경험은 3차 병원과 2차 병원 사이의 선택은 단순히 의료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의사와 환자 간의 소통, 환자의 요구에 대한 이해와 반응에서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암이 찾아와서 걱정하시는 분이나 병원 소개를 부탁하시는 분에게는 꼭 3차 병원만 가지 말고 2차 병원에서 수술을 많이 해보신 분을 찾아보라고 한다.


2차 병원은 암 환자가 오면 검사도 우선으로 해준다. 3차 병원처럼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는다. 친절함도 다르다. 교수님과 면담할 때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궁금한 점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신다.




요양병원에서 만난 동생이 자신과 같이 3차 병원에 가달라고 했다. 그 친구는 온몸에 암이 다 퍼진 상태였다. 궁금한 게 많은데 의사 선생님께서 2~3분 이상을 만나주지 않는다며, 나에게 궁금한 것 좀 질문해 달라는 것이었다.


남의 일에 상관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때 당시 그 동생은 나에게 많은 걸 의지하고 있었다. 살고 싶어 했다. 나이도 40대 중반이었고 아이도 3명이나 있었다. 막내가 초등학생 5학년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배 쪽이었는데 드문 암이라 정확한 병명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쪽 분야 선생님이 많지 않다며 선택이 폭이 좁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났다. 동생은 어쩌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녹음하고 있었다. 동생이 가져온 CT 촬영 결과를 보면서, 나는

“선생님! 저기서 어떤 게 암인가요?”라고 묻자

손으로 "이 부분입니다.”라며 사진 전체에 원을 그렸다.

암이 배에 저 정도로 있으면 온몸에 다 퍼졌다는 건데.”라고 내가 말하자, 동생은

“언니! 어디가 암이야. 어떤 걸 말하는 거야?”라며 간절하게 물었다.

그런 건 두 분이 나가서 이야기하시고, 항암치료를 빨리하시지 않으면 위험합니다.”라며 짜증을 냈다.


나는 황당했다. 환자가 물어보는데 성의 없는 대답은 물론이고 화를 내다니? 내가 기가 막힌 표정을 짓자,


“온몸에 퍼진 건 다른 사진을 보지 못해서 모르겠고요.”라며 내 눈치를 살폈다. 동생은

항암치료를 하면 얼마나 사나요?”라고 애절하게 물었다.


“저번 약이 효과가 없어 새로운 약을 써야 하는데 해봐야 알겠지요. 그리고 이번 약은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심장 검사도 하면서 할게요. 아무튼 지금은 항암부터 하세요.”라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항암 약을 더 독한 걸로 바꾸면 통증도 심해질 거고, 지금 동생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견딜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약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가요?”라고 내가 다시 질문했다.


고통은 심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 약이 최선입니다.”라며 억지로 말하다, 내가 인상을 쓰자, 내 눈치를 보면서 “내가 해본 건 아니지만, 고통은 참을 만합니다. 다른 환자를 보니깐.”이라며 성의 없이 얼버무렸다.


선생님, 제가 그 항암 치료하면 효과는 분명히 있나요?”라고 동생은 간절하게 물었다. 의사의 한계가 왔는지


“해봐야 알지요.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항암하고 가세요.”라며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물어도 속 시원하게 말하는 것도 없고, 귀찮아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시계를 보는 의사가 더 화나게 했지만, 내 담당 교수도 아니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진료실을 나오자, 간호사의 말은 나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듯했다. 항암치료 하시고 2주 뒤에 심장 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심장에 무리가 간다면서 항암치료 하기 전에 심장 검사를 하고 하는 게 아니라 항암하고 심장 검사를 한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시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음 환자가 밀렸다며 더 이상 면담을 거절했다.


그날 우리에게 7분 이상을 면담해 주었다. 동생은 언니 덕에 궁금한 거 물어왔다며 고맙다고 했다. 항상 의사 선생님의 오더와 함께 나와야 했다는 것이다. 궁금한 사항을 물어볼 곳이 없어 지금까지 끌려다녔다고 했다.



큰 병은 빠른 대처가 중요할 때가 많다. 유명한 교수님 기다리다 시간 보내고, 검사 기다리다 시간 보내면 중요한 순간을 놓칠 수 있다.

암과의 싸움은 단순한 병과의 전쟁이 아니다. 생명과 연결된 의료 시스템 속에서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최선의 결정을 스스로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암 환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치료 선택은 당신만의 이야기이다. 당신에게 맞는 최적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진의 추천은 경청하되, 자기 몸과 마음을 먼저 돌보는 것을 잊지 말자.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암과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다. 올바른 정보와 현명한 결정, 무엇보다도 서로의 지지와 격려 속에서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전하며,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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