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 가면서 창밖에는 소복이 쌓인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얗고 이쁘게 뒤덮고 있다. 이처럼 곱고 아름다운 풍경을 요즘처럼 자주 본 건 몇 년 만이다. 공기오염으로 서울에서 보는 지저분한 눈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눈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걱정의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진다. 미끄러운 도로를 매일 운전하는 남편이 내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일하는 남편을 떠올리면서 ‘남편은 왜 저렇게 열심히 돈을 벌까?’ 오직 아이들을 위해서 돈을 번다. ‘자식이 무엇일까?’ 자신이 해보지 않는 힘든 일을 해서라도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희생하는 남편을 보면서 ‘부모의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또한 ‘가족을 위한 헌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잠긴다.
얼마 전, 병원에서 아는 동생과 통화하는 걸 아들딸이 들었다. 아들이 서울대 가려고 제수하다 실패하고 외국으로 유학하러 갔다. 동생 아들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애교도 있고 사교성도 있으면서 욕심이 많다.’라는 걸 알고 있다.
동생은 아들 영어 공부를 위해 초등학교 때 몇 년간 외국 생활도 했다. 현재 미국 유학 간 아들은 즐겁게 열심히 공부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며, 만족에 만족하고 있는 아들을 자랑했다.
그 친구는 얼마 전 카페를 하는데 힘들어했다. 작년에 오픈할 때 말리고 싶었지만, 벌써 모든 계약이 끝난 상태라 응원만 해주었다. 다행히 하고자 하는 분이 나타나 이번에 정리를 한단다. 나는 너무 잘했다며 칭찬했다.
동생은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다고 했다. 얼마 전 회장실에서 쓰러지기까지 했단다. 마음이 아팠다. 우리 딸 수학도 가르쳐 주었던 동생이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동생은 더 이상 자기한테 배우면 안 된다며 딸에게 맞는 학원을 찾아 등록시켜 준 은인이다.
동생은 나에게 아들을 자랑했다. 자랑하는 목소리에 힘이 있어 이뻤고 좋았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한 학기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이 3,500만 원이란다. 그럼 1년에 1억은 보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놀라서 어떻게 보내주냐고 물었다. 자신이 그래서 쉴 수가 없단다. 마음이 아팠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아들 학비에 보태야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1년에 1억이면 4년이면 4억이다. 3학년 때부터는 돈을 번다고 해도 3억은 족히 든다.
일반가정에서 한 달에 천만 원씩이 가능할까? 아들은 자기 욕심과 욕망을 채우고 즐겁게 살겠지만, ‘그동안 부모의 고통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부모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어떤 생활을 할까? 정말 그렇게까지 밀어주어야 하는 게 부모일까?’
내가 그 입장이라면? 전화 내용을 들은 딸은 나에게 “부모 등골 빠지겠다. 엄마! 우리는 주제가 안 돼.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아.”라며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 딸은 주제에 맞게 쓰는 거야?”
“그럼. 이 정도는 우리 집은 써도 된다고 보는데.”
“나는 과하다고 생각하는데. 딸 몸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아.”라며 웃자, 아들딸이 함께 웃으면서
“엄마가 그렇게 낳았잖아. 왜 이런 피부를 물려 준 거야.”라며 내 탓을 했다.
“엄마는 피부 좋아. 여드름도 없었고, 아직도 수술한 거 빼고는 깨끗해.”
“아빠를 닮았어도 엄마 아빠 탓이니깐 어쩔 수 없어.”라며 모든 걸 유전 탓을 했다.
“엄마! 질문 있어?”
“뭔데?”
“어떤 신혼부부가 아기 한 명을 낳았데. 부인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만 키운 데. 남편은 연구직이고. 결혼기념일 날 남편이 선물 상자를 가지고 왔데. 근데 거기에 의대 합격증이 들어있더래. 어떻게 생각해?”라며 물었다. 나는 바로
“남편 집이 부자래? 아니면 여자 집이 부자래?”
“두 집 다 그냥 그런가 봐. 집 융자도 적지 않데.”라는 말에
“미친놈 같으니라고. 딸! 너는 그런 놈 만나면 안 된다. 하기야 살아보지 않으면 어찌 알겠냐만. 나이도 있을 텐데 그 나이에 의대 가면 누가 뒷바라지하고 아이는 누가 키우니? 졸업하고 전문의까지 따려면 몇 년인데.
어린 동생들과 공부해서 이길 수 있을 거 같나 보지? 이겨도 그래. 나이 45살이나 50살 되어서 의사 되면 뭐 하게? 여자는 무슨 고생이고. 요즘 의사 예전 같지 않아. 난 왜 의대 의대 하는지도 모르겠더라만. 완전 정신 나간 놈이여. 하려면 학창 시절에 했어야지.”
“3수까지 하다 떨어졌데.”라는 말에 나는 막 웃었다.
“3수 해서 떨어졌으면 포기해야지. 나이가 도대체 몇이냐 그럼?”
“평생소원이라 꼭 하고 싶다는데?”
“딸은 어찌 생각해?”라며 내가 반문했다.
“모르겠어. 댓글에는 의대 가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근데 나는 엄마랑 생각이 비슷해.”라며 뭐가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 사위가 그런다면?’이란 생각하니 끔찍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경력 단절된 아내에게 돈을 벌라고 하고, 학자금 융자를 받아서 등록금 낸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나와 가치관이 달라서일까?
“내 사위가 그러면 엄마 미쳐!”라고 하자,
“엄마! 내가 시집간다고 하면 꼭 말려줘.”라는 말에 나는 크게 웃었다.
“엄마는 절대 안 말려. 안 가면 좋겠지만, 간다고 남자 데리고 오면 여태 네가 엄마에게 맡긴 돈 있으면 모두 주어서 보낼 거야. 내 인생도 아닌데 엄마가 왜 이쁜 딸과 싸우니? 현명한 딸이 선택한 건데. 엄마는 무조건 딸을 존중해.”라고 말하자,
“엄마! 그러면 안 돼 에에. 내가 엄마 때문에 친구에게 부탁했어.”라며 웃었다. 나는 놀라움과 기막힘에 웃으면서
“친구에게? 아직 우리 딸이 덜 컸구나! 지금은 마음껏 즐기세요.”라며 즐거운 대화를 했다.
가족이라는 우주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꿈과 희망, 그리고 두려움을 공유한다. 우리의 대화는 때로는 심오하고, 때로는 가벼운 웃음으로 가득 찬다.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날,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작은 고민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서로를 위해 희생한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가족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이겨올 함박눈처럼,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서로의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녹이며 지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