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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Feb 01. 2024

투병과 행복 사이 : 아들딸과 함께한 뮤지컬 관람기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살며시 내 병실을 밝히며, 마음이 들뜬 바쁜 하루가 시작됨을 알려주었다. 침대에서 민 기적 거릴 시간이 없었다. 오전에 병원 치료를 마친 후, 금요일 퇴원을 앞두고 짐을 줄이기 위해 옷과 몇 가지 살림을 차에 실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나는 흥겨운 마음으로 멜로디에 맞춰 흥얼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 너머로 세상이 지나가는 걸 바라보며, 내 옷차림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아들딸과 뮤지컬 관람을 준비했다. 얼마 만인가? 뮤지컬 보러 간 기억이 결혼 후, 몇 번 없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자주 갔었다. 처음에는 4식구가 함께 관람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 뮤지컬은 아이들 둘만 들여보내고 남편과 나는 밖에서 기다렸었다. 그러다 내 삶에 암이라는 뜻밖의 큰 병이 찾아왔고, 우리 가족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린아이들이 엄마의 암이란 병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남편 역시 일과 어린 자녀 둘을 동시에 돌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남편은 일을 그만두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거고, 나도 이렇게 오랫동안 투병 생활이 길어질지 몰랐다.      


10년이 흐르면서 우리 가족들은 각자의 삶과 문화생활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함께 뮤지컬을 보기로 한 특별한 날이다.     




딸은 반수에 실패하고, 그녀의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마음껏 문화생활을 즐겼다. 이에 맞추어 나라에서 청년들에게 문화 활동비를 지원해 주었다며 딸은 그 돈을 연극 보는데 투자했다.  

   

나도 글을 쓰지만, 자녀들은 내 글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책과 글을 멀리한 아줌마의 글이 뭐가 재미있겠는가? 나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변화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도 은근히 권했다.

     

어느 날, 딸이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고 했다. 너무 감사했고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글은 나의 마음을 울렸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었다. 남을 설득하는 글이 생동감과 재치마저 넘쳤다. 리뷰며 그날의 중요 사건을 적었는데, 내용도 문체도 단어도 짜임새도 어색하면서 편하고 재미있었다.     


딸은 자신의 글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에 기뻐했다. 하루에 70명 이상씩 블로그에 들어온단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러면서 잘하면 이걸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딸의 말에 부러우면서 자랑스러웠다.     




며칠 후, 딸에게서 온 톡은 나에게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김종욱 찾기> 뮤지컬의 리뷰를 써주는 조건으로 무료 관람권을 주겠다고. 나는 기쁘고 자랑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3장을 요청했다. 아들딸과 셋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딸은 “엄마 아들은 안 갈 텐데.”라며 “2장만 할까?”라고 물었다. 나는 무조건 3장 하라고 했다.

     

아들도 문화생활을 해야지. 매일 집에만 있으면 안 돼.”라고 말하면서 데리고 가자고 했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아들은 아침 일찍 운동을 다녀왔다. 나는 3시까지 집으로 갔다. 330분쯤 아들딸과 대학로로 향해 집을 나섰다. 뿌듯했다. 내 멋진 아들과 이쁜 딸을 양쪽에 끼고, 딸이 보여주는 뮤지컬을 보러 간다는 게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문제는 나였다. 한동안 몸이 안 좋았던 나는 일주일째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 몸이 부어있었다. 소변이 제대로 작동하면 몸이 조금씩 좋아지는 징조이다. 어제까지 잘 나오지 않았던 소변이 하필 오늘은 시간마다 나를 귀찮게 했다.      


불안한 나는 뮤지컬 시작 전에 화장실을 다녀왔지만, 100분의 상영시간이 부담스러웠다. 딸은 좌석에 앉으면서,     


“여기는 깨끗하고 좌석이 넓네! 한번 앉으면 움직이면 안 돼. 뒤에 사람이 신경 쓰여. 그리고 화장실도 가면 안 되고. 조용히 봐 야해.”라며 뮤지컬 중간에 말 걸지 말라는 뜻을 이렇게 일깨워 주었다. 월요일인데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문제는 다음이다. 전날 이상한 꿈을 꾸면서 잠을 설쳤다. 거기다 오랜만의 외출에 대중교통이 피곤했는지 따뜻한 좌석에 앉자, 졸음이 몰려왔다. 참을 수가 없었다.      


뮤지컬이 30분쯤 지났을까? 고개가 이리저리 떨어지며 아무리 눈을 꼭 감았다 뜨고 비비고 별짓을 다 해도 몰려오는 잠을 막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딸은,     


“엄마! 머리를 내 어깨에 대고 자!”라고 말하지만, 나의 머리는 자유자재로 이쪽저쪽 날 리가 났다. 한 20분 그러기 나니 정신이 돌아왔다.      




졸면서도 뮤지컬은 매혹적이었다. 한순간도 놓치기 아까운 장면들이었다. 1명의 여배우와 2명의 남자 배우가 모든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안, 한 남배우가 다양한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그 많은 역할을 하면서 그때그때 어울리는 의상을 어쩌면 그렇게 후다닥 갈아입고 나오는지 의상 변화와 연기력은 경이로웠다. 

    

특히 기억이 남는 의상은 한 사람이 두 명의 역할을 동시에 할 때 입고 나온 젊은 남자와 할머니 역할이다. 의상을 오른쪽에서 공연할 때는 할머니로, 왼쪽에서는 젊은 멋진 남성으로 변신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배우 모두 목소리 또한 너무 좋았다. ‘우리 아들도 저렇게 우렁찼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가는 오만 원이라고 적혀있지만, 각가지 할인을 적용하면 2만 원 선에서 볼 수 있었다.     


2만 원 선에서 100분간의 힐링치고는 만족스러운 뮤지컬이었다. 이 정도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뮤지컬이 있다면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대학로는 젊은 남녀의 데이트 장소답게 내용도 거기에 걸맞았다.

     



데이트하는 커플이라면 같이 손 꼭 잡고 보면 좋을 듯하다. 중요한 건 나의 소변이었다. 1시간쯤 지나자 미칠 거 같았다. 하지만, 공연장은 한번 나가면 절대 재입장이 불가하다. 또한 중간에 나가게 되면 공연하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거기다 내 자리는 중간이라 옆 사람이 모두 일어나 앞으로 나가야만 출입구가 있었다. 무조건 참았다. 온몸이 꼬였지만, 끝까지 참았다. 솔직히 뮤지컬도 재미있어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갔지만, 역시나 좁은 화장실은 만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 공용 화장실로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주책으로 옆에 앉은 딸에게 미안했다.      


딸은 졸고 있는 엄마의 고개가 뒷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했다. 나이를 먹으니 이런 조절도 못 하는 푼수가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날은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아들딸과 즐거운 관람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투병 중에도 가족과 함께한 이 시간은 나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었다. 그들과의 작은 행복이 나의 삶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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