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개학한 고1 아들은 1시가 넘으면 집에 온다. 일찍 하교해서 오는 아들을 보며,
“아들! 요즘 학교 가서 뭐 하니? 수업 안 하니?”
“생기부 쓰고 별거 안 해.”라고 대답하는 아들은 ‘엄마는 그것도 몰라?’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는구먼! 학교도 수업일수 채우느라 애쓰는구먼!”이라고 말하자, 학교 상황에 관심 없는 엄마의 말이 황당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내일은 학교 안 가?”라며 신이 나서 말했다.
“왜 안 가는데? 목요일에 봄방학 한다며? 그럼, 오늘 하지. 내일 쉬고 모레 가서 봄방학 식하고 오는 거야?”
“어. 내일은 3학년 졸업식이야.”라는 말에 나는 혼자 좋아했다.
언제 또 병원으로 직행할지 모르는 나는 아이들과 영화를 보던, 외식하던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들 공부가 중요하긴 하지만, 문화생활도 공부 못지않게 중요하다. 딸은 혼자도 잘 다니지만, 아들은 나의 부제로 항상 집에만 있어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로 소극적인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보여주고 알려주고 즐기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했다. 나의 투병 생활로 더욱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아들을 보면서 항상 미안했다.
“그래? 잘되었네. 그럼, 우리 내일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라고 말하면서 나는 얼마 전에 강강술래에서 온 와인 쿠폰이 생각났다.
이번 달에 방문하면 와인 한 병을 받을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친구들이나 지인과 같겠지만, 이제는 같이 가자고 할 사람이 없어졌다. 얼마 전 인간관계를 정리하면서 혼자 노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좋은 곳에서 비싼 음식을 기분 좋게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오랫동안 입원하고 나오면 지인들 만나기 바빴다. 하지만, 이젠 나의 루틴을 바꾸었다. 지인들 만나 수다 떨고 술 마시며 노는 것보다, 그 돈으로 아이들과 맛있는 거 먹으면서 추억을 쌓고 싶어졌다.
내 속마음과는 달리 딸은 바로 “엄마! 우리 ‘아웃백’ 가자!”라며 식당을 정해버렸다. ‘아웃백’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레스토랑 이름이다. 결혼 전에 자주 갔던 훼밀리 레스토랑 중 하나다. 빕스, 베니건스 TGIF 등 이런 곳을 좋아했었던 나는 투병 생활로 어느 순간부터 잊고 살았다.
결혼 초,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불광동 빕스가 있어 무슨 날이면 갔던 기억이 난다. 딸과 아들은 전혀 기억이 없단다. 그러던 우리 집에 유방암이란 손님이 찾아오면서 가족 외식이 줄었다. 가도 고깃집 정도이고 거의 배달 음식으로 대체되었다.
“엄마! 우리 이런 곳 안 가봤잖아? 나 가보고 싶어!”
“왜 안 가봐? 어렸을 땐 자주 갔었지.”라고 말하자, 거짓말이라는 듯이
“우리는 기억에 없어. 빕스가 대개 먹은 곳이야?”라며 딸은 그나마 생각난 뷔페 레스토랑이 거기라며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거긴 정말 비싼 곳이고.”
“역시 비싼 곳을 가야 그나마 기억에 남네. 아무튼 내일 가자.”라며 반강제적으로 조르고 있었다.
거절하지 못하고 “할인 쿠폰 알아봐! 그리고 가격표도 한번 보자.”라며 딸은 할인 쿠폰을. 나는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점심 특선이 괜찮네. 빵과 음료도 주고 수프도 주고, 커피까지. 거기 수프 맛있어. 그 유명한 아웃백 빵도 괜찮고.”
딸은 아웃백에 가입하면 일만 원 할인권을 받을 수 있다며, 우선 아웃백에 가입했다. 카드 할인은 많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카드는 없었다. 새로 만들려고 해도 대부분 중단된 카드만 가능했다.
“딸아! 아웃백 상품권 싸게 파는 곳 좀 알아봐라.”라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당근에서 십만 원 상품권을 구만 원에 판다며 구매했다.
가격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듯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20~40% 할인되는 카드나 조건이 많았다. 지금은 예전 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첫 가입 고객 할인과 통신사 할인 정도였다. 그것도 우리는 LG라 제외되었다.
물가가 오른 것에 비해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지금이 훨씬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할인 카드가 많아 제 가격 주고 먹으면 손해 본 것 같고 바보 같았다. 지금은 할인은 많지 않지만, 음식의 질이나 다른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비교했을 때, 그리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전에 예약하려고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평일이라 사람이 적을 거로 생각하고, 아들 복싱학원 다녀온 뒤, 바로 출발했다. 도착하자, 나는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대기 번호가 19번째다. 아들이 오늘 졸업식이라고 말한 게 생각났다. ‘아이고 미련한 엄마 같으니라고. 졸업식 날 이런 곳을 오다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음식점에서 기다리는 건데.’ 하지만 나에겐 선택이 없었다.아들딸은 기다리겠다며 각자의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시간 가까이 기다리자, 우리 차례가 왔다. 서빙 하는 아가씨가 이쁘고 친절했다. 웃으면서 주문받는 거며, 꼼꼼히 챙겨주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저 아가씨. 일 잘한다. 손님과 대화할 땐 웃으면서 예의도 바르고. 아들딸, 이런 곳에 오면 일하는 사람들을 좀 봐봐. 너희들도 저런 건 배워야 해. 앞으로 사회생활에서 중요해. 말도 똑 부러지게 잘하고 얼굴도 이쁘고, 저 아가씨는 뭘 해도 잘하겠다.”라고 말하자,
“엄마! 저렇게 꼭 허리를 굽혀야 하나? 허리 많이 아플텐데.”라며 서빙 하는 직원을 걱정했다.
“돈 벌기가 쉽지 않지. 똑바로 서면, 우리 눈높이가 안 되잖아. 예전에는 무릎 꿇고 했는데 이런 바닥에 무릎 꿇으면 무릎 다 나가. 우리 아그들이 돈을 벌어봤어야 알지? 아들도 지금은 괜찮은데, 사회생활 할 땐 앞머리를 올려야 해.
엄마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머리가 내려오면,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상대가 내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코를 보고 이야기하게 되거든. 아이 컨텍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아들?
그리고 목소리 크게 하고, 말할 때도 항상 미소 짓는 거 잊지 마! 잘생긴 아들은 미소 지으면 더 멋있어 보이는데 표정이 무표정할 때가 많아.”라고 말하자, 옆에서 딸은 웃으면서
“엄마! 내가 엄마 아들 그만 쓸데없는 자존감 세워주라고 했지? 엄마의 그 쓸데없는 자존감 때문에 엄마 아들 성적 좀 봐. 나에겐 고등학교 때 왜 1등급을 못 받냐며 나를 이상하게 보더니만, 지금 엄마 아들 상태 좀 봐. 그만 아들 자존감 세워.”라며 나에게 아들 공부 못하는 책임을 미뤘다.
“딸! 아들이나 나도 중학교 때 올백 맞고 하니깐 잘할 줄 알았지.”
“엄마! 엄마 때문에 아들이 자만에 빠져서 저렇게 된 거야.”라며 모든 탓을 나에게 해대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 위치가 참 더럽네! 나도 할 말 많다고. 왜 너희는 뭐만 안되면 다 엄마 탓이라고만 하는 거야? 피부가 나쁜 것도, 잠 못 드는 것도, 게으른 것도, 재수에서 실패한 것도, 아들이 공부 못하는 것도. 이쁘게 낳아서 잘 키워주었음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정말 치사 해서 리. 내가 자식이라 참는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겉으로는 웃고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깔끔하고 정갈하게 담긴 음식은 나의 모든 근심을 잊게 했다. 자식의 잔소리도 스테이크를 자르는 칼질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먹으며 행복해하는 나를 보며 ‘내가 그 힘든 투병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게 먹는 걸 좋아해서 가능했구나! 역시 분위기 좋고 보기 좋은 음식은 날 기쁘게 해준다니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혼자 웃었다.
딸의 잔소리도 아들의 부족한 성적도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모든 걸 잊게 해주었다. 돌아오는 다음 주말은 아들과 아빠 생일이 하루 차이다. 내 계획은 그때 더 비싼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오늘 나온 음식에 아들의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 예약도 해 버렸다.
거의 10여 년 만에 온 훼밀리 레스토랑이지만, 아들딸의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에 한동안 자주 오지 않을까 싶다. 자녀들과 나누는 소소한 추억들을 나의 책장에 채워나갈 수 있는 소중함을 깨달으며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주는 가치와 행복을 알기에 나는 오늘과 같은 소중한 순간들을 더 자주 만들고자 한다. 아웃백에서의 하루는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외식을 넘어,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가족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이처럼 의미 있고, 기쁨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