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경 Feb 03. 2024

밤의 대학로 : 가족과 함께한 식탁 위 미완성 대화

   

뮤지컬이 끝나고 우리는 예약된 식당을 찾아 대학로 길을 걸었다얼마 만에 걷는 밤의 대학로 거리인가이 길은 한때 나의 일상이었고, 대학원 시절의 열정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 시절, 이 거리는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북적북적한 거리에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오늘 밤대학로는 예전의 그 활기를 잃고 조용히 숨죽인 듯하다내가 기대한 화려한 대학가의 거리가 아니었다코로나 이후로 세상은 많은 걸 바꾸어 놓았다. 자영업자들의 경영난을 명동과 종로에 이어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코로나 초창기 때, 화려함을 기대하며 명동에 갔다가 사막과 같은 고요함에 깜짝 놀랐었다. 거리는 잡상인들로 북적거리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던 번잡하고 화려한 명동거리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여기저기 ‘임대문의라는 딱지만 유리창에 쓸쓸히 붙어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거리였는데, 씁쓸함과 고요함이 싫어 바로 예약된 식당으로 방향을 바꾼 뒤론 다시 가지 않았다. 종로나 인사동 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예전 같은 화려함이나 활기찬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학로마저도 이렇게 죽어있을 줄은 몰랐다. 가장 핫 한 자리에는 명동이나 종로처럼 임대문의라는 하얀 종이만 외로이 매달려 있었다. 울긋불긋한 네온사인이 있는 북적북적한 흥분된 밤의 거리를 좋아하는 나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리가 예약한 식당은 인도 식당이었다. 대학로에 오기 전에 나는 아들딸에게 가고 싶은 곳을 예약하라고 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안 데리고 다녔는데 아이들이 알 리는 만무했다.


이쁜 딸아식당은 젊은 연인들이 연애할 때 많이 갈만한 곳으로 골라 봐앞으로 연애할 때새로운 곳도 가봐야지.”라고 말하자, 모른다며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나는 ‘대학로 맛집’을 치자 처음으로 나온 “머노까머나”라는 인도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가격 대비 코스 요리도 푸짐해 보였다인도 식당은 나도 서울에서는 몇 번 가보지 못했다. 딸에게 말하자, 바로 예약했단다.     




나는 남편에게 저녁값을 부탁했다알겠다는 답이 왔다식사 비용이 해결되자남편에게 7시까지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톡을 남겼다. 아무 말이 없었다.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가족 간의 시간을 중요시 여기자만남편은 생각이 달랐다일이 있으면 일 먼저 하려고 한다.     


내 생일에도, 가끔 가지는 가족 모임에도 남편은 빠졌다. 그때마다 화를 내니 나만 손해였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딸은 매번 포기 못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나는 4식구가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식당을 향해 걸어가면서 딸이 톡했다. 남편은 주차 때문에 망설이면서 배가 고프지 않으니 맛있게 먹고 오라며 딸에게 저녁값을 주었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주차를 물었다. 식당 주인과 직원이 인도 사람이라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주차가 된다고 했다. 딸은 아빠 안 온다는데 왜 물어보냐며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3미터 큰 차도 가능한지주인은 유료주차장이라 1시간만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바로 남편에게 연락했다. 남편도 동대문에 있다며 10분이면 온다고 했다.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이 배고파해서 코스 요리를 시켰기에 남편 먹을 만큼만 남겨두고 아이들부터 먹였다. 남편이 왔다그의 온기가 가득 찬 식탁을 더욱 화목하게 만들었다. 음식을 추가해서 함께 웃으며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다.     




나는 알고 있다. 우리 가족 모두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걸새로운 음식을 탐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아들딸은 이런 음식보단 치킨 피자를, 남편은 한정식을 선호한다. 부족함을 알지만 그래도 다양함을 즐기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모두가 맛있게 먹어 주었다     


매일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새로운 음식점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기쁨을 느끼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낙이다. 다행히 딸이 나와 비슷해서 그나마 이곳저곳 갈 수 있다. 만약 딸 없이 지금의 아들과 남편만 있었다면 나는 무척 외로웠을 거다.

      

오늘 아들은 엄마가 가자고 하고, 누나가 간다고 하니 따라 나왔다. 남편 또한 요즘 불경기라 콜이 없어 가족 모임에 오라 하니 의무적으로 온 거다. 부자가 끌려 나온 걸 알지만나는 이런 자리를 자주 마련하고 싶다.




식사 후아들은 남편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딸과 나는 대학로의 디저트 가게를 몇 군데 돌아다녔다. 우리가 원하는 디저트를 찾지 못해 결국 연신내 동네로 왔다. 예전부터 딸이 눈여겨 놓았던 디저트 카페에서 치즈케이크랑 딸기 라떼쵸코 르뱅 쿠키를 포장했다.          


딸과 둘이서만 먹고 가자니, 아들과 남편이 눈에 아른거렸다. 4명의 가족이 함께 이야기하며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소망일 뿐, 남편은 저녁도 원하지 않았던 인도 음식이었는데달달한 디저트까지 같이해 줄 넉넉한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은 배부르다며, 씻고 자기 방으로 향했다. 나는 웃으면서 “배가 불러도 먹는 게 디저트야.”라며 다시 한번 식탁으로 와줄 걸 권유했지만, 무시당했다. 내 욕심이었다. 이젠 익숙해져서 그런지 무시해도 기분 나쁘지 않다안타까울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과 함께 앉아서 이야기할 시간을 놓치다니! 힘들게 돈 벌어서 식사값 내주고 아이들에게 용돈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놓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는데아이들이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게 아닌데     


그럼에도 바보 같은 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남편이 가족의 일부로서 느끼는 소외감을 줄이고자아빠로서의 권위를 존중해 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만의 가치관만 고수한다.     




오늘 대학로의 밤은 우리 가족에게 다양한 감정의 색을 더해 주었다.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도가족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이번 밤은 내가 꿈꾸는 완벽한 가족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지만, 이 순간들이 모여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대학로의 밤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변화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가족이라는 소중한 연결고리는 여전히 내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내일이 오면,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의 추억은 우리 가족의 소중한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20240130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을 여는 브런치 스토리와 변화되는 효도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