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차가운 벽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 이틀도 지나지 않아 몸무게가 2kg이나 늘었다. 딸이 정성껏 준비해 준 음식들이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몸이 아팠을 때, 잠시 잃었던 입맛이 돌아오며, 아이들과 즐거운 식사는 행복을 더 해주었다.
주메뉴는 오직 한가지씩이다.어제 아점은 병원 방문으로 지친 몸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오리 훈제와 김치, 뭇국, 생고추로 집밥의 풍미를 가득 담고 있었다. 디저트로 준비해 둔 과일과 딸이 만들어 온 맘모스 빵은 딸의 사랑이 듬뿍 담긴 선물처럼 느껴졌다.
저녁은 딸이 만들어 준 스파게티와 파운드케이크, 여러 과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혼자 먹는 병원 밥과 달리, 정성이 담긴 딸이 해준 음식들 앞에서, 오랜만에 잊고 지냈던 행복한 시간의 순간을 다시 한번 맛보았다. 걱정과 달리 대만족이었다.
오늘 아점은 김치 볶음 찌개였다. 딸의 요리 솜씨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딸은 남으면 내일 먹는다며 넉넉히 했다는데, 우리 세 사람은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딸은 먹으면서 “엄마, 입 하나가 정말 무섭네!”라며 엄마의 출현에 놀람을 표시했다. 둘이 먹다 세 명이 먹으니, 거의 2배 이상 먹는 느낌이라고 했다.
딸은 조금 남은 김치 볶음 찌개에 스팸과 김 가루를 넣고 밥 2공기를 저녁이라며 볶아놨다. 예전엔 둘이 2끼도 먹었다며, 3명의 저녁으로는 충분하다며 흐뭇해했다.
점심 후, 후식으로 귤을 나누어 먹으려 과일 가격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엄마. 아빠가 귤값이 비싸다고 말한 거 알아. 아빠가 그런 말 한 적 처음이야.”라며 딸은 웃으면서 말했다.
“요즘 엄청 비싸더라. 엄마도 병원에 있어 몰랐는데 슈퍼 지나면서 5kg에 30,000원이라고 쓰여 있어서 깜짝 놀랐어.”라고 말하자, 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엄마가 잘못 봤겠지?’라며 그때까지도 별 반응이 없었다.
피아노학원에 다녀온 딸은 현관을 들어오며 놀란 목소리로,
“엄마! 올해 가장 무서운 공포 영화가 뭔지 알아?”
“뭐 재밌는 영화 나왔어? 영화 보러 갈까?”라고 묻자,
“아니! 귤 작은 박스가 28,000원이라고 쓰여 있어. 이게 올해 가장 무서운 공포 영화야.”라며 나를 웃겼지만, 그 속에는 현실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아빠가 오죽하면 너희에게 과일값 비싸다고 말했겠니? 과일 좋아하는 아빠가 아무리 비싸다고 말할 사람이니? 그러니깐 사 온 건 다 먹어. 버리지 말고. 예전만큼은 과일도 없네. 예전에 과일 가게처럼 종류별로 사 놓고 먹더니만.”
“내가 못 사게 했어. 냉장고 꽉 차 있는 거 싫어서.”
“역시 내 딸이야. 다 먹고 사! 먹고 사는 건 얼마를 써도 뭐라 안 해. 사 놓고 먹지도 않고, 상해서 버리면 아깝고. 버리는 것도 일이야. 알지? 아빠가 엄마 말은 안 들어도 딸 말은 잘 들어 주니깐 딸이 조절 잘 해줘!”라고 애교스럽게 말하자, 아들딸은 웃기만 했다.
저녁이 되자, 딸은 치킨도 먹고 싶다며 한 마리 주문했다. 얼마 전까지 포장해 오면 포장 할인까지 18,000원에 콜라까지 서비스로 주었다. 오늘은 22,900원이라며, 콜라도 주지 않았다.
우리는 치킨 덕에 볶음밥은 남을 거로 생각하고 낼 점심이나 아침에 아빠 주자며 덜어서 먹었다. 하지만, 치킨과 볶음밥의 상자에는 어떤 음식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식사 후, 과일을 먹고 딸은 낮에 사다 놓은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꺼내며 오늘로 이 아이스크림도 그만 먹자고 했다.
내가 웃으며 무슨 뜻이냐는 듯이 쳐다보자, “파인트가 9,800원이야. 이것도 비싸서 먹지 못하겠어.”라는 딸의 불평 아닌 불평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딸! 우리 딸이 언제부터 돈 걱정하며 먹었어?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건 무조건 다 먹고 사야 하잖아?”라고 웃으며 묻자,
“이젠 안 되겠어. 내 통장이 요즘 계속 텅장이야.”라며 죽는소리에 아들과 나는 딸을 보면 큰소리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딸의 경제적 관념에 대한 변화된 태도는 그만큼 딸의 성장을 의미한다. 엄마 아빠의 부재로 살림하면서 몸소 체험하며 돈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돈 버는 모습에 돈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물가는 올랐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며 기쁨이었다.
과하게 저녁을 먹은 나는 추워서 나가기 싫었지만, 산책하러 나가는 딸을 따라나섰다. 딸과의 산책은 언제나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연신내역으로 산책하러 나간 우리는 오랜만에 코인 노래방에 들렀다. 고등학생 때부터 딸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곳으로 아무 때나 와서 노래 몇 곡씩 부르곤 했었다.
나를 데리고 다닌 이유는 코인을 미리 사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인이 떨어질 때쯤이면 딸은 어김없이 나를 데리고 갔었다. 그러면 나는 2~3만 원씩 넣어주었다.
한동안 나는 몸이 안 좋아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고, 딸은 다른 문화생활에 올 시간이 없었단다. 코인이 54개나 남아 있었다. 지금은 당연히 코인값도 올랐겠지만, 작년에 넣어둔 코인은 오르지 않았다. 딸과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그간의 걱정과 스트레스를 벗어버렸다.
“이쁘나! 유일하게 안 오른 건 코인 노래방뿐이네. 40곡 이상 남은 거 열심히 불러. 다 부르면 엄마 이젠 부르지 말고.”라고 말하며 서로 큰소리로 웃었다.
딸은 오면서 아이스크림이 비싸서 치즈케이크를 못 샀다며 은근히 나를 부추겼다. 어쩔 수 없이 디저트로 아들딸 케이크를 사 오면서 “엄만 무서워서 딸과 못 돌아다니겠다.”라고 말하자,
“엄마는 우리의 영원한 ATM이야.”라며 딸은 걱정하지 말란다.
우리 삶에 있어 엥겔지수는 20%를 넘기면 생활에 어려움이 올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추세라면 웬만한 가정의 엥겔지수는 금세 30% 이상 나올 수 있다. 경제적인 변화와 상승하는 생활비 속에서도, 가족 간의 사랑과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주었다.
현대 사회처럼 맛있는 음식이 널려 있는데 엥겔 비용을 줄이겠다고 못 먹고 산다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우리의 일상에 부담을 주기는 하지만, 가족과 함께 나누는 웃음과 대화, 그리고 사랑은 그 어떤 가격으로도 매길 수 없는 귀한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