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년 3월 첫째 주 월요일이다. 매해 3월 2일이나 첫 주 월요일은 우리나라 모든 학교가 개학 & 개강의 문을 여는 날이다. 특별한 날인 오늘, 날씨 또한 새 학기를 맞이하는 아이들을 축복하며 반겨주듯 화창하고 따뜻했다.
주말 내내 링거와 시름 하느라 꼼짝할 수 없었던 나는 오랜만에 점심 식사 후 산책을 나섰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을 만끽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아침에 댄스학원 다녀와서 학교 갈 준비한다며 전화가 왔지만, 아들은 웬만해선 전화하지 않는다. 아들이 하교해서 집에 도착했다는 걸 확인하는 수단은 복싱학원에 갔을 때, 나에게 뜨는 도착 메시지가 전부이다.
이런 아이들의 일상 사이에서 나의 몸은 병원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특히 딸의 얼굴을 가득 메운 여드름은 나와 딸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처음에는 사춘기라 그러려니 하면서 화장품도 바꾸어 보고 여드름 치료에 좋다는 비누도 써봤다. 심지어 마사지 샵과 피부과에 가서 치료도 해보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시켜 한약도 먹이고 거기에 맞는 치료도 받았지만, 그때만 조금 줄어드는 듯하다 다시 올라왔다. 딸에게 원인을 찾아야 하니, 어떤 음식을 먹으면 더 올라오는지, 잠자는 시간, 생리 기간 등 여러 가지를 관찰하라고 했다.
정확한 원인 중 한 가지가 음식이라는 걸 발견했다. 작년에 학교를 2달 다니는 동안 점심으로 학식을 먹었다. 그때 여드름이 최고점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했던 입 주위는 통증까지 심했단다. 하지만 이제 4년을 더 다녀야 하는 학교에서 음식을 먹지 않을 순 없었다.
나는 딸에게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딸은 고민하다 그렇겠다고 했다. 내가 말한 도시락은 샌드위치나 간단한 간식 정도였지만 딸은 밥과 반찬을 원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직접 만들어 주었겠지만, 병원에 있는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제 전화가 여러 번 왔다. 우선 달걀 장조림을 만들었다며 사진을 보냈다. 7개의 달걀이 간장소스에 빠져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딸의 성장과 독립성이 느껴졌다. 아쉬운 웃음을 지으며,
“이쁜 딸! 기왕 만들 때 10개 이상 해서 아들 먹을 것도 하지? 아들도 달걀 장조림 좋아하는데.”라고 말하자,
“엄마는 내 도시락 반찬 만드는데 꼭 아들 걸 챙겨야겠어?”라며 서운함이 가득한 말투로 핀잔했다. 나는 무안하고 미안해서 더 크게 웃으며,
“엄마 입장이 그래! 우리 딸, 대견하고 멋져. 딸은 엄마의 자랑이야. 하지만, 알잖아? 아들은 딸과 엄마가 챙겨주어야 하는 거?”라며 서운함을 달래주었다.
잠시 후, 무음으로 해둔 핸드폰에 “내 이쁜 딸”이라는 글씨가 반짝이고 있었다. 딸은 진미채와 새우볶음도 만들고 싶단다. 3가지 반찬이면 일주일 반찬으로 충분하다며. 나는 행복의 웃음이 나왔다. 딸이 너무 커 버린 것에 감사했다. 도시락 반찬을 스스로 준비하는 딸이 대견했다.
마트보단 비싸도 건어물 가게에서 오징어 색으로 된 걸로 샀으면 했다. 열심히 설명해 주자, 딸은 시장 속 건어물 가게에 도착했지만, 아! 불사, 일요일은 휴일이란다. 어쩔 수 없이 마트에 가서 하얀색 진미채를 샀다.
얼굴 피부와 교정한 이가 걱정되는 나는 진미채를 먼저 잘게 자른 후 찜기에 양배추 찌듯 쪄서 독을 빼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내가 양념해 놓은 만능 양념장을 기름에 볶은 후, 진미채를 넣고 마요네즈와 물엿을 넣으면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병원 생활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지고, 남편이 일을 하면서 딸이 음식을 도맡아 하고 있다. 밀키트 음식을 주로 먹지만, 밀키트에서 주는 소스 양으로는 우리가 추가로 넣어 먹는 라면이나 떡 사리 등을 첨가해서 먹기엔 부족할 때가 많았다. 그때 넣을 수 있는 고추장 만능 양념장을 넉넉히 만들어 놓았다.
딸이 만든 진미채는 파는 것보다 색이 더 좋았다. 새우볶음은 딸 방식으로 닭갈비 양념처럼 국물이 있었다. 나와 다른 새우볶음이 웃기긴 했지만, 딸은 그게 맛있단다. 긍정적인 딸의 모습에 뿌듯하고 감사했다.
딸은 아점을 먹고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갔단다. 도시락통은 수능 때 딱 2번 쓴 새 보온 도시락 통이다. 무겁지 않냐고 묻자, 패드와 도시락만 들고 간단다. 책은 학교에 놓고 다닐 예정이라며 숙제하기 위해 학교에 오래 있을 것 같단다.
불현듯 아들이 걱정되었다. 딸이 저녁을 챙겨주어야 하는데? 나는 또다시 딸의 기분을 살펴야 했다. 항상 아들만 챙긴다며 불평하는 딸에게 아들 저녁을 위해 집에 일찍 오라고 하기가 미안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몸이 약한 아들을 아무거나 먹일 순 없었다.
“이쁜 딸! 그럼, 아들은 어쩌냐?”라며 조심스럽게 묻기가 무섭게 딸의 반응은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엄마는 아들밖에 몰라? 내가 엄마 아들 밥해주러 가야 해?”
“그러면 어째? 엄마 병원도 못 가. 불안해서! 엄마 목요일에 퇴원하고 집에 가도 얼마나 있을 수 있을까? 생리 터지면 바로 입원해야 해! 알잖아? 그때 링거 맞지 않으면 못 견디는 거?”
“그렇지! 그러면 7시 반 되야 먹을 텐데?”
“괜찮아! 엄마가 아들하고 통화해서 말해 놓을게. 그리고 오늘 저녁도 어떻게 했는지 물어봐야겠다. 부탁해 이쁜 딸! 대신 엄마가 이쁘니 원하는 거 더 해줄게!”라며 조심스럽게 최대한 부드럽게 설득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들딸에게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빨리 생리가 끝나서 아이들 식사라도 챙겨주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이젠 한 달에 한 번만 나와도 죽을 거 같다. 하지만 호르몬 불균형으로 한 달에 2번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남들은 갱년기 때문에 멈추지 않길 바란다는데, 나는 제발 하루라도 빨리 멈추었으면 좋겠다.
이처럼 딸이 준비한 도시락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딸의 여드름 치료제였다. 또한 동생 저녁을 위해 일찍 귀가하겠다는 딸의 말은 가족을 위한 사랑과 배려의 상징이었다.
오랜 투병 생활로 집을 자주 비우는 엄마를 위해, 바쁜 아빠를 위해 딸은 많은 부분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어제도 반찬 만들고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며 힘들다고 애교스러운 투정을 했다.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아들딸의 모습에서 나는 따뜻한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가족 각자의 필요를 세심하게 챙기는 딸과, 누나를 도와주는 아들은 나에게 무엇보다 큰 선물이며 보물이다.
202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