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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Mar 22. 2024

타인의 시선 :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만큼 성장해요!


때때로 사람들의 시선과 궁금증은 한없이 따뜻한 빛을 발하지만, 그 빛이 너무 강렬해 우리의 삶을 가리는 그림자를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나도 친한 지인이거나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관심을 가진다. 예전에는 그들의 삶까지 알고 싶었다. 내가 한가해서였을까? 그들이 부러워서일까? 뭘 그렇게 알고 싶었던 걸까?      


지금은 내가 힘들어서 그런지 남의 삶에 관심은 별로 없다. 친한 분들의 고민 정도? 그들이 말하는 한도 내에서만 알고 싶다. 말하지 않는 남의 집 속사정이나 가정형편까지 알고 싶지 않다. 만났을 때의 행복한 모습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를 아는 주위 분들은 생각 외로 나의 삶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양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투병 생활이 벌써 11년째인데 무엇으로 먹고사느냐?’라는 질문을 돌려서 한다.     


남편이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다. 키즈카페 그만두고 거의 8~9년 동안 일정한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했다. 거기다 아들딸이 잘 커 준 걸 보면서 나에게 복도 많다며 은근히 부러워했다.      


이처럼 세상은 늘 타인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라는 질문 속에는 다양한 감정이 서려 있다. 부러움, 걱정, 때론 순수한 호기심 등. 우리의 삶이 외부의 기대나 통념과 어긋나면, 그 궁금증은 더욱 커지곤 한다.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서, 내 가족의 행복을 최우선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남의 삶, 특히 그들의 어려움이나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 나의 관심사는 친한 사람들의 행복, 그들이 고민을 나누고 싶을 때 그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것까지다.      




엄마가 아픈데 아이들이 잘 크면 이상한 건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왜 궁금한지 모르겠다. 한 동생은 부럽다며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비결은 내 삶의 여정에서 피어난 작은 기쁨과 그 속에서 극복해야 했던 크고 작은 시련들을 현명하게 대처한 결과이다.     


투병 생활 중에도 나는 아이들에겐 최선을 다했다. 내가 남편에게 일을 하지 말고 아이들만 키워달라고 한 것도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일하시는 분이 집에 오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학원 하면서 어린 자녀들을 저녁에 혼자 돌보는 것이 무리였다. 몇 시간씩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분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이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모르는 분이 집에 오는 게 부담스러웠단다.      


유방암에 처음 걸렸을 때, 아무도 돌봐줄 가족이 없어 어린 자녀를 돌봐주고 집안일을 도와주실 분을 부르겠다고 하자, 두 아이는 싫다고 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지내자, 그렇지 않아도 밝지 않은 아들은 더 우울해졌다.      


나는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게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은 나의 우주이며,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태양처럼 밝게 빛나야 했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당신들의 기준에 꿰맞추기식으로 자녀들을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키즈카페를 정리하면서 나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남편은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남편이 아이를 키우면서 항상 2%가 부족했다. 처음엔 누나 옷을 아들에게 입혀 학교를 보낸 적도 있었고, 옷을 뒤집어서 입혀 보낸 적도 있었다. 아들은 다행히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신경이 쓰였다.     


그때마다 남편에게 웃으면서 옷장 정리도 다시 해주고 설명도 해주었다. 지금은 남편의 그런 행동이 고의가 아닌 성격이라는 걸 알지만 그 당시 무관심한 남편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했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아이들 입장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걸 먼저 알려고 노력했고, 그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가 어렸을 때, 하기 싫었던 건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부모의 사랑을 기대했다.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부모는 나의 단점만 찾아서 야단치고 한심한 아이로 취급했다. 나는 어디 가나 기가 죽어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나고 부족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나는 내 딸과 아들의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그 부분에 대해 야단 치기보다는 누구나 그럴 수 있고, 너희가 아직 연습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함께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아들과 딸을 키우면서 아들은 항상 딸보다 부족했다. 학교에 가도 학원에 가도 선생님들은 아들을 보고 딸과 남매가 맞냐는 둥 왜 이렇게 다르냐는 둥 아들의 부족함을 나에게 말했다. 그런 말을 듣는 부모는 얼마나 속이 타는지 모른다.     


한번은 딸이 차 안에서 운전하는 나에게 미술학원에서 아들을 데리고 오는데, 선생님께서 동생이 집중도 안 하고 그림도 못 그린다며 안 좋은 말만 했단다. 나는 정말 화가 났다. 나의 참을성에 한계가 오는 듯했다.     


아들은 뒷좌석에 앉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큰 눈에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다. 신호에 걸려 정지된 차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으로 핸들을 찌며 씨팔! 미친 새끼!”라며 큰소리로 욕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놀라 조용했다. 아들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딸에게     


! 그 선생님이 너에게 먼저 말한 거야? 아니면 네가 먼저 물어본 거야?

“날 보고 반가워하시기에 내가 먼저 동생 어때요?”라고 물어봤어.”     


! 잘 들어! 어디 가서 동생에 관해 아무것도 물어보지 마! 엄마도 아들이 어떤지 알고 있어. 모르고 보내는 거 아니야. 아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자꾸 너랑 비교하게 만들지 마!      


아직 아들이 잘하는 걸 찾지 못했지만, 나중에 분명 너보다 잘하는 게 있을 거야. 지금은 찾아가는 중이고. 그 미친 새끼! 선생이면 선생답게 굴어야지. 어린 누나에게 무슨 동생 이야기를 하니? 싸움을 만드네!     


딸! 네가 동생 엄마니? 할 말이 있으면 엄마인 나에게 해야지? 학원비도 내가 주지 네가 주니? 어디다 동생의 단점을 누나에게 말해! 완전 똘아이 미친 새끼네. 한 번만 더 그러면 당장 학원 옮겨버려야지.      


아들! 너도 신경 쓰지 마! 엄마 아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다 알아. 그니깐 그냥 즐기고 와! 만약 선생님이 너에게 뭐라고 하면 엄마에게 말해! 알았지? 아들은 잘못한 거 없어. 그림 좀 못 그리면 어때? 아들이 화가 될 것도 아닌데.      


지금은 우리가 아들이 잘할 수 있는 걸 찾아가는 중이야. 엄마는 내 멋진 아들을 믿어.”라고 말하면서 나의 분을 삭이고는 있었지만, 마음속 한편에서는 정말 아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아들의 성적은 급격히 상승했다. 항상 밑바닥이던 아들은 엄마의 믿음에 용기를 얻었다. 피아도 대회에 나가서도 학년 최우수상을 받아 자랑했다. 여기저기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일이 이때만 있었을까? 어린이집 다닐 때도 말이 없는 아들을 선생님들은 가끔 이상하게 취급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한번은 벽에 똥칠했다며 아들을 정신과에 데리고 가라고 한 사건이 있었다.      


아들은 어렸을 때 변은 항상 밤에 보았다. 그때마다 내가 모든 뒤처리를 해주었다. 그런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아침에 화장실에서 변을 본 거다. 내성적인 어린 아들은 처음 있는 일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선생님을 부르지 못하고 스스로 하려다 손에 변이 묻자, 벽에 손을 문지르고 팬티와 바지에 묻힌 거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전화해서 아이가 이상하다며 와서 데리고 가라고 했다. 학원에 있던 나는 남편에게 전화해 옷 가지고 빨리 어린이집에 가서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내가 본 아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 당시 당황한 건 선생님이 아니고, 어린 내 아들이었다. 정신병원은 아이를 이해하려고 들지 않은 선생님이 가야지, 왜 내 아들이 가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한두 번 이었을까? 그때마다 엄마인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우리 부모님은 이런 일이 생기면 사랑으로 나를 감싸주기보다는 모잘란 병신 취급했고, 모든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며 야단치고 겁을 주었다.      


나는 우리 부모와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을 칭찬하며 위로해 주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항상 믿어주고 격려해 주었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이 마주하는 모든 문제와 도전들이 귀중한 기회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실패와 좌절도 인생의 일부이며, 그것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진정한 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함께 해결점을 찾는다.      


자식은 절대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먹으면서 성장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저절로 착하고 바르게 큰 게 아니다. 엄마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나의 삶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에 대해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내 가족의 지지와 사랑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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