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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Mar 28. 2024

아줌마가 되어가는 나 : 변화하는 행동과 태도


학창 시절,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의 분주함 속에서 우리가 소위 아줌마라고 칭하는 여성들의 무심한 자리 차지에 불편함을 느꼈다. 자리가 보이면 남들 생각하지 않고 먼저 앉는다.     


그들의 단호한 행동은 어린 마음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모자란 행위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무게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도 그렇지만, 생각지 못한 큰 병을 일찍 경험한 나는 몸이 부실하니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타지 않는다. 하지만 시내나 주차가 어려운 곳에 갈 때는 내 삶의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해하지 못했던 아줌마들의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나도 모르게 자리가 없으면 임산부 자리에 가서 앉는다거나 빈자리가 생기지 않나 여기저기 살핀다. 한때 비판했던 그 아줌마가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임산부가 오면 비켜준다고는 마음으로 앉긴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속으론 욕한다. 이런남들 욕할 거 하나도 없어너 나 잘해아이고쪽팔려라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되나?’라며 혼자 속으로 중얼거린다. 사람이 많을 때는 눈을 감고 자는 척까지 했다.     




결혼해서 살림과 육아라는 끊임없는 삶의 무게 아래서, “아줌마로서의 존재는 독하고 강인함의 상징이 되었다. 주어진 예산에서 자녀들을 최고의 학원까지 보내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대한 알뜰하게 살아야 했다.      


현대 사회는 맞벌이가 기본이다일하는 젊은 부부들은 예전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예전의 엄마들은 남편의 능력에 따라 제한된 금액으로 살림만 한 경우가 많았다. 엄마라는 위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안팎으로 많은 일을 하셨다.     




가난했던 나는 결혼해서 우선 돈을 모아야 했고 절약해야 했다학원 운영에서 적지 않은 돈을 벌면서도 집안일 하시는 분은 4~5시간 시간제로만 이용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오면 집안일과 아이들 간식해서 먹이고 재우면 엉덩이를 편히 바닥에 붙이는 시간은 늘 새벽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억척이란 말이 맞았다.     


갑자기 찾아온 유방암이란 불청객으로 인해 나의 억척은 멈추었다. 자연스럽게 집안일은 남편 몫으로 넘어갔고, 나는 강제적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이기적이라기보다는 필요한 변화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생활에 익숙한 나에게 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수능이 끝난 딸은 제과제빵 원데이 클래스를 자주 다니며 즐거워했다. 내가 딸 만할 때, 배운 기억을 더듬어 딸에게 팁을 주었다.      

“이쁘나! 빵 만드는 게 재미있으면 동사무소에서 하는 걸 알아봐, 거기 가면 싸고 좋은 재료로 많은 걸 배울 수 있어. 일 잘하는 아줌마들이 대부분이라 그렇게 힘들지도 않을 거야.”    

 

딸은 바로 알아보고 응암동에 있는 주민센터에 등록했다그곳은 3개월 단위로 등록할 수 있었고딸은 1월 2월 3월 석 달을 등록했다. 3월에 개강하고 나니 학교 수업 때문에 금요일 쿠킹클레스를 갈 수 없게 되었다.     

재료비가 한 번에 일만 원이고 수업료가 석 달에 45,000이었다. 모든 비용을 선불로 낸 딸은 나에게 대신 가서 빵을 가져오라고 했다자신의 피 같은 돈을 버릴 수 없다며.     




어쩔 수 없이 나는 금요일마다 빵을 만들러 갔다. 이번 주는 다음 주 선거로 2주 분량을 한 번에 한다며 바쁘다고 했다. 쿠키 2가지와 파이 하나를 만든다고 했다. 보통 9시 반에 시작해서 12시 반이면 끝났다. 일도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이번 주도 걱정 없이 참여했다.     


쿠키를 만드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쿠키 2개를 만들고 나니 모든 기력이 소진되었다. 이젠 그만하고 싶었다. 웃으면서 같은 조원들에게 힘들다고 하자, 그들은 “집에서 매일 이 정도 일은 하지 않아?”라며 나를 신기해했다.     


나는 미안했지만, 정말 힘들었다. 다리도 아프고 쉬고 싶어 의자 앉자, 그들은 내가 집안일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했다     


“우리 집 엉망이에요. 그래도 아들딸이 분업해서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딸이 착하다며 대견해하면서 속으로 나를 한심해하는 모습을 느꼈다. 상관은 없었지만, 괜스레 심통이 났다. 정말 쓸데없는 잘난 척을 했다.     


대신 돈 벌어다 주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요아이들에게도 항상 일한 대가를 주어야 좋아하잖아요.”라고 웃으면 말하자, 아무 말들이 없었다. 나의 자격지심인지는 몰라도 뭔가 기분 나쁜 감정이 쓸데없이 발동했었다. 이 얼마나 한심한 말인가?     


마지막 파이를 만들자며 모이라고 했다. 파이는 반죽을 밀대로 밀어야 하는 힘든 작업이 있었다. 나는 한번 밀다 포기하고 대신 개량하는 것과 다른 잡일들을 했다. 벌써 시계는 2시를 향하고 있었다. 아침도 먹지 않은 나는 배도 고프고 당도 필요했다     


만든 과자들을 먹자고 하자하나라도 더 가지고 갈 생각만 했지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나는 내 거를 먹자며 몇 개를 꺼내 놓았다. 아무도 먹지 않고 자신들 몫만 챙기기 바빴다. 아줌마들 욕심에 놀라웠다. 나 혼자 먹기 미안했지만, 배가 고프면 정신이 없는 나는 체면 불고하고 그냥 먹고 있었다.     


그들은 챙겨서 딸 가져다주라며 나에게도 먹지 말라는 은근한 압박을 주었다. 허리 다리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딸은 톡으로 왜 아직도 거기 있냐며 빨리 오라지만상황이 그럴 수 없었다모든 일이 끝나 가자고 하자, 파이가 식어야 한다며 기다리고만 있었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내 몫을 먼저 챙겨주며 가라고 했다. 그때 챙겨주는 엄마들의 모습에서 나는 새로운 면을 보았다. 나는 남에게 줄 땐 가장 좋은 걸 준다하지만 그들은 반대였다.      


처음에도 좋은 걸 모두 고르고 부서진 파이만 남았었다. 웃으면서 “이건 다 부서지고 갈라졌네요?”라고 말해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고 자신들 것만 챙기고 있었다. 별거 아닌 거에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마지막까지 제일 못난 걸 챙겨주는 모습에서 기분이 묘했다. 빨리 가라는 말에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나왔다. 딸이 매일 오면 아줌마들이 묘하게 자신을 챙기는 척하면서 기분 나쁘게 한다며 투덜대던 모습이 생각났다.     




만들어진 쿠키와 파이를 집으로 가져오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힘든 일을 오랜만에 한 내가 대견하면서도 나도 이젠 주책맞은 아줌마구나!’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고단했던 하루는 결국 과자와 파이에 만족해하는 아들딸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이를 먹으면서 얻는 것은 지혜뿐만 아니라각자의 상황에 따른 이해와 너그러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아줌마”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느끼는 아픔이나 변화는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 주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로 준다.      


이제 나는 이전보다 더 너그러워지려 노력해야겠다그리고 나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아줌마'들에게그들이 내포하고 있는 삶의 지혜와 경험을 존중하려고 한다     


결국, 쿠킹 클래스의 피곤함도, 대중교통에서의 불편함도, 이 모든 것이 삶의 일부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풍부한 내면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가까이에서 만나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인생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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