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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Mar 29. 2024

금이 선사한 기적 : 통증 해결에서 재테크까지

금을 처음 알게 된 건 2번째 유방암 수술을 마치고 나서다. 치료의 두려움과 아픔을 견디고, 일상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도 있었다. 그때, 우연히 금으로 시작된 새로운 여정이 내 앞에 펼쳐졌다.     


스포츠센터에서 만난 동네 금방 언니의 꼬임이 시작이었다. 운동이 끝나고 사우나 후, 화장대 앞에 있는 나에게 매일 같이 언니는 금을 사라고 권유했지만, 나의 무관심에 방법을 바꾸었다.      


인경아우리 점심때 피자 먹자언니가 사줄게가게로 가자!”     


“피자요?”라며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가게로 오라는 건 금을 사라는 이야긴데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번 피할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도넛 몇 개를 사 들고 갔다.     


전날 나는 남편에게 금방 언니 이야기를 하면서 난처하다고 하자, 남편이 금은 사놔도 괜찮으니까 이쁜 거 있으면 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피자를 먹는데 손님 한 분이 금값을 물어보며 주문을 넣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천만 원어치만 사달라고 했다. 귀금속은 차야 맛인데 덩어리만 가지고 있으면 뭐 하겠는가?’라는 생각에 목걸이팔지반지도 한 세트 맞추고 왔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금은 내게 특별한 효능을 선물해 주었다. 1달 정도 지나자유방암 수술한 왼쪽 팔의 통증을 어느 순간부터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걸 발견한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유명한 한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이게 가능한지를? 한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금의 효과는 아무도 명확하게 답을 할 수가 없단다사람마다 차이가 나지만금이 잘 맞는 사람은 차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어디까지 나타나는지를 측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금침을 맞은 사람 중엔 금침으로 평생 효과를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 효과도 없는 사람이 있단다. 금침을 맞으면 그 침은 몸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X-RAY 촬영을 하면 금침이 그대로 보인다.     


그때 당시 몸의 상태가 최악이었던 나는 걸을 때마다 발바닥의 통증이 심했다. 한의사 선생님 말씀을 믿고 금방 언니에게 발찌를 병원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발찌를 차고 몇 시간이 지나자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신기했다.     


이처럼 금의 효과가 어떤 이에게는 평생의 치유제가 될 수도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을 수도 있는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금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금이 몸에 맞지 않는 사람이 금을 착용하며금의 색이 검게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간혹 금을 사 간 손님이 가짜 금을 팔았다며 들고 오는 일도 있단다. 반면에 금이 몸에 맞는 사람은 금의 노란빛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난다.    

 

그때부터 나는 금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네 언니한테만 샀다. 언니는 자신만 믿으라며      


“너와 내가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에게 왜 이렇게 싸게 해주지? 인경아, 죽으면 하나님께 물어봐봐. 내가 왜 너에게 이렇게 잘해주는지? 언니만 믿어!”라는 말에 한 번도 언니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종로에 가서 알게 되었다. 이 언니가 나에게 얼마나 바가지를 씌우며 팔았는지를. 지금까지의 신뢰는 배신으로 나의 가슴에 상처가 되었다남의 말을 잘 믿는 나의 바보 같은 성격에 또 한 번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어렸을 때의 부족한 사랑이 어른이 되어도 항상 그 사랑을 갈구하나 보다누가 조금만 잘해주어도 착각한다무조건 믿는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어리석은 나를 원망하지만, 사랑 면에 있어서는 평생 정신 못 차릴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종로로 금을 사러 가기 시작했지만, 종로에서 금을 사는 것도 만만치는 않았다. 종로에서 우리를 받아주는 대부분의 금 가게는 99%가 소매업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매라고 하지만 거짓말이다. 

    

종로 상인들은 일반소비자들을 도매업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내가 처음 도매업을 알게 되면서 파악이 빠른 나는 도매와 소매업의 구분을 바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새로운 도매 금방에 가서 새로 나온 디자인을 사려고 하면 그들은 바로 나에게 물었다.     


“상호 이름은?”

“없는데요?”     


여기서는 거래할 수 없어요우린 소매는 취급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신상품을 볼 수 없게 수건으로 가리거나 물건을 치웠다     


자기네 고유 디자인 물건들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거짓말을 못 하는 나는 몇 번 ‘동네 금방 언니 가게 이름을 말해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만두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은 낳고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금 거래하는 언니는 내가 가면 언제나 친절하게 받아주었다. 나는 언니에게 물었다.      


왜 도매에서는 저를 받아주지 않아요?”

상도덕이야그리고 소매에 팔다가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거든.”     


“무슨 문제요?”

“생각보다 많이 생겨. 우리는 뒷거래 금이잖아그리고 현금거래고잘 사서 가고는 신고하는 사람도 있고별별 사람이 다 있어. 자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별로 없어.”라며 언니는 나를 이해 시키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래도 종로 여러 군데를 다니며 거래했다. 금을 사러 갈 때는 되도록 몸에 금을 여러 개 차고 갔다. 금에 관심이 있고, 여기 거래가 처음이 아님을 나타내 주는 표시기도 했다.      


종로는 일반인이 상대하기 쉬운 곳이 아니다. 처음 금을 사는 손님이 오면 동네만큼 비싸게 부른다. 금은 변동성이 심해서 부르는 게 값이다한번 사고 나면 환불도 쉽지 않다.      


종로의 상인들은 내 몸에 찬 금을 보고 사게 주는 척했지만, 결국은 소매보다 조금 싼 금액으로 이렇게 저렇게 속여 남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곳에서 매일 금값을 보내준다는 밴드 모임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거기서 금 거래를 한동안 해주고 밴드에 가입했다모든 게 공짜는 없었다. 지금도 거기서는 일주일에 2~3번 정도씩 종로에서 거래되는 금값 현시세를 올려준다.      


그 이후론 종로에 나가면 예전처럼 속지는 않았다. 도매업 언니는 변동성이 심한 날은 나에게 언니 폰에 시시각각 올라오는 가격을 직접 보여주었다. 몇 번 언니에게 나에게도 금 시세를 보내달라고 부탁했지만, 안된다며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밴드에서 올라오는 정도로 지금은 만족하고 있다.    

 



금은 내게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삶과 싸움그리고 배움의 상징이 되었다금을 통해 겪었던 깨달음과 시련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내 삶의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가 금을 착용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위함이 아니다나의 통증 치료와 나를 성장시킨 시간들의 상징이다금은 이제 내 이야기의 한 장을 차지하며, 나는 그 금빛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강인함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삶을 걸어 나갈 것이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금과 같은 외부의 가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되는 무한한 가치와 가능성이라는 것을.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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