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뼈 전이”라는 진단을 받고 퇴원한 나는 집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아들딸과 즐겁게 보내면서도 내가 집에 있는 것 때문에 아들딸이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딸은 외출을 하면서도 나의 식사를 걱정했고, 말 없는 아들은 엄마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결국 나는 새로운 치료를 위해 송파에 있는 D 대학 한방병원에 입원했다.
처음 입원할 당시 혼자 있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딸은 함께 있어 주겠다고 했지만, 대학생의 첫 방학을 엄마 병간호로 모든 시간을 보내게 할 순 없었다. 게다가 이 병원은 1인실 추가 비용이 높아 다인실을 이용해야만 했다.
한발 한발 움직이기 어려운 나는 병원 안에 있는 치료만 받고, 가능한 내 침상에 머물렀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어떤 치료가 정말로 나에게 효과가 있을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인데.’
암은 열에 약하다. 우선 열 치료에 집중해 보자. 그리고 혈액순환은 뭐니해도 전신 마사지가 최고이다. 하지만 열 치료는 땀이 많이 나기에 체력이 받쳐 주어야 한다. 현재 나는 잦은 생리와 과다 출혈로 체력이 저질이다.
우선 비싼 물과 기운 올려주는 한약으로 체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오전 오후로 할 수 있는 물리치료와 부항은 혈액순환을 위해 최대한 등 전체로 해달라고 했다.
뜸치료를 하면서 암이 있는 어깨에 큰 통을 하나 더 올려달라고 하자, 뜸 담당 선생님을 화상과 뜸 통이 떨어질 위험이 있어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나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는 5개의 탄을 넣은 큰 통을 어깨에 올려주셨다.
처음에는 엎드려서 올리며 떨어질까 봐 내 옆에서 지켜봐 주셨다. 뜨거운 열이 쑥쑥 들어가는 느낌이 시원하면서도 뜨겁고 좋았다. 10분이 지나 탄이 식은 것 같다고 하자,
“탄이 식은 게 아니라, 뜨거움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똑바로 누워서 마저 하면 안 될까요? 선생님이 너무 힘드시겠지만요”
“그래요? 제 걱정은 하지 말고 치료에만 신경 쓰세요. 그러면 돌아 누울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모든 찜통을 치워주셨다.
다른 사람의 두 배인 어깨와 허리엔 큰 통을, 두발까지 모두 4개의 통이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위해 정신없이 찜통을 치우시고 잘 돌아 누울 수 있게 비게와 지지대 등으로 받쳐 주셨다. 나는 온몸의 통증을 호소하며 한참 동안 몸을 꼬아 돌아 누었다.
온 힘을 다 준 나는 똑바로 누우면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기운이 없어 시체처럼 누워있는 내 배 위와 어깨에 다시 큰 통을 올려주시고, 발은 다시 묶어주셨다. 그렇게 30분 이상을 하고 나면 온몸은 땀으로 젖어 내 침상에 가서 지쳐 쓰러졌다.
나는 잠시 누워있을 때도 주열기로 어깨 앞뒤를 지졌다. 정말 쉬지 않고 치료에만 집중했다. 나의 노력이 하늘에 닿았는지, 입원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나의 병에 호전이 보였다. ‘정말 기적이란 게 나에게도 오는 걸까?’
오늘도 나는 눈을 뜨면서부터 치료계획을 세웠다. 9시 전에 물리치료를 받고, 9시 반에 뜸을 어깨와 허리, 배, 발 등에 뜬 후, 어깨에 증기 치료를 했다. 그리고 대퇴골의 암과 잦은 생리를 위해 좌훈을 한 시간 정도 하면 오전 시간이 빠뜻하다.
기력이 딸리는 나는 오후 치료를 위해 비싼 물과 영양가 있는 식사를 배불리 먹는다. 오후에도 오전과 똑같은 치료를 한 후, 근처 세라젬 매장으로 바쁘게 갔다. 음료 한 잔을 시킨 후, 온몸을 풀어주는 세라젬 의료기기에서 등 마사지를 받았다.
병원에 돌아와서는 준비된 저녁을 먹고, 파라핀을 한 시간 이상 팔다리를 해주었다. 지금 내 발은 파라핀에 구워져 뱀파이어 피부처럼 징그럽다.
발을 보며 속상해하는 나에게 딸은
“엄마 발 아직도 이뻐!”라며 위로해 주었다.
“엄마는 어디 가서 이젠 발이 보이면 창피해! 세라젬 가서도 의자에 앉아서 마사지할 때, 발이 보이면 숨기고 싶어져.”
“엄마! 내가 엄마 발이 이쁘다는데 다른 사람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해주는 딸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리는 19일 만에 또 시작되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한약을 먹어도 점점 빨라지는 생리를 나는 감당하기 힘들다. 생리가 끝나면 그 후유증이 어떻게 올지도 겁이 났다.
심한 통증도 생리 끝나고 왔었다. 통증이 가시기도 전에 생리가 또 터진 것이다. 그때도 끝나고 심한 통증이 왔었다. 하지만, 처음처럼 무방비 상태는 아니어서 잘 넘기긴 했다. 이번엔 어떻게 넘겨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이번 PET CT상에서는 폐경기 여성의 모양으로 나왔는데 나의 생리는 왜 멈출 줄 모르는 걸까?
“하나님! 저에게 힘든 시련은 그만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에도 팔의 통증에 힘에 붙치네요. 저에게 사랑과 지혜를 주세요! 그래도 아직까지 아이들 곁에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0.5%라도 더 나은 삶을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렇게 기도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나에게 기적이란 것이 찾아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내가 죽을 거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이러한 나의 노력이 하늘에 닿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2024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