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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Aug 08. 2024

“뼈 전이”라는 사형선고 : 통증과 죽음의 길목에서

  

나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날짜를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사형선고를 받은 자는 언제 죽을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그날까지는 통증이라는 육체적인 고통을 모르고 살겠지?’ 그들의 심장은 두려움에 떨겠지만, 적어도 몸은 고통에서는 자유로울 것이다.    

 



반면, 나는 “골수암”이 아닌 “뼈 전이”라는 죽음의 병을 선고받았다. 나는 어떤가? 매일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점점 나빠져 가는 몸 상태를 보면서, 단 하루라도 통증 없이 지내길 기도한다.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질 거고 나는 이런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견뎌야만 한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 내가 정말 무슨 큰 죄를 지어 이런 벌을 받는 걸까? 법적인 죄는 없어도 무언가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했으니깐, 이런 천벌이 나에게 내려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아니 매시간 통증에 시달리며 조금이라도 덜 아픔을 느끼기 위해 걸음걸이부터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 한다. 정상인 들이 바쁘게 걸어가거나 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몇 달 전까지 저들처럼 활기차게 뛰어다녔는데? 지금의 내 모습은 장애인이 따로 없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뼈 전이” 환자의 평균 수명은 20개월이다. 나는 1년 조금 넘겼다. ‘평균 수명은 숫자에 불과해! 나는 보여줄 거야. 오래 사는 모습을.’라고 나에게 다짐해 보지만, 불안정한 나의 걸음걸이를 볼 때마다 ‘내가 과연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또다시 심한 통증이 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대학병원이 아무리 바쁘다고, 검사 결과를 보러오지 않았다고 이렇게 중병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TV 드라마에서는 나쁜 검사 결과가 나오면 의사나 간호사가 전화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현실은 그렇지 않단 말인가? 작년에만 알았어도 이렇게까지 놔두지 않았을 텐데. 원망하고 싶은 곳이 필요했다.      




‘내가 왜 뼈 전이가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코로나 백신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텼다. 드디어 나라에서 “2022년 1월 백신을 맞지 않으면 카페 출입도 불가능하다.”라는 발표와 요양병원에서의 보이지 않는 강압에 어쩔 수 없이 2022년 1월에 백신을 맞았다.     


1차를 맞고는 괜찮았다. 2차를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욕이 떨어지면서 입덧처럼 음식 냄새도 역겨웠다. 같이 있던 환자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약해지는 몸을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그해 4월에 코로나까지 걸렸다. 그 후 내 몸은 급격히 쇠약해졌다. 본능적으로 암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본병원에서 검사를 하자, 역시나 유방엔 2개의 암 덩이가, 자궁엔 선근종 혹이 더욱 커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몸이 약한 나는 유방암 수술만 그해 10월에 했다. 다음 해 8월에 본 병원에서 본 스킨 한 결과 뼈 전이가 발견되었지만,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통증은 없었다.      


9월에 갑자기 찾아온 어깨 통증도 다른 병원에서 염증 때문이라며 초음파를 본 뒤 어깨에 직접 염증 주사를 맞았지만, 모든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여러 번 X-Ray 초음파 검사 결과 별 무리 없다고 해서 진통제만 먹고 있었다.     


다리도 12월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못 움직일 정도가 아니어서 디스크 4번 5번이 터지고 자궁의 혹이 옆으로 누웠을 때 쏠려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본병원에서 알려주지 않았기에 한 번도 “뼈 전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딸이 2시간씩 마사지를 해준 날은 그래도 통증이 덜하다. 하지만 딸도 이젠 학교도 가야 하고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나에게만 매달리라 할 수 있겠는가? 통증이 덜 해진다고 암이 낫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한의사 선생님 말씀도 마음에 걸렸다.     


정말 나에게 미래란 게 있을까? 이런 상태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지금은 죽고 싶지 않다. 아무리 매달려도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달리고 싶다. 하나님만이 기적을 주실 수 있다는 거 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나를 이뻐해 주셔서 기적과 같은 자비를 베풀어 주실까?      


통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통증 없는 날이길 기도한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의 고통을 조금씩 줄여가며, 내 소중한 자녀들과 작은 기쁨과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힘든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하나님 저를 끝까지 붙잡아 주세요.’라며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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