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아들은 방학을 했고, 딸은 반수를 한다.
집에 아이들이 있다 보니 하루에 두 끼는 챙겨주어야 한다.
오늘은 점심을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하던 중 갑자기 나는 '쿠우쿠우'가 생각났다. 오늘 못 먹으면 한동안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아들과 딸을 데리고 연신내점 쿠우쿠우 식당에 도착했다.
뷔페식당으로 일식인 회초밥부터 중국음식, 이태리 피자, 디저트까지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요령 없는 아들은 초밥에 있는 밥을 다 먹어 몇 가지 못 먹는다.
나는 아들에게 밥은 먹지 말고 회만 골라 먹고 이것저것 먹으라 했다.
얌체 짓인지 알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왔는데 샐러드부터 골고루 먹었음 하는 엄마 마음이다.
아들이 "우동은 어떻게 먹어?"라고 물어봤다.
나는 "누나야! 어찌 먹니? 딸이 잘 먹잖아!"
"가서 면을 달라고 하면 줄 거야"라고 설명해 주었다.
아들이 우동을 가지러 간사이 딸은,
"엄마 아들이 바보 같아! 말도 못 하고. 잘 가지고 올까?"
"딸! 왜 그래? 자꾸 잘 가르쳐 주어야지. 착해서 그런 거지."
딸은 코웃음을 치면서 아들이 어떻게 우동을 가지고 오나 보고 있었다.
"그래도 김가루랑 이것저것을 좀 넣네!"라며 완전 바보는 아니라는 듯이 보았다.
아들이 우동을 가지고 왔다.
우동 위에는 김가루와 유부 등 몇 가지가 얹어 있었다.
"울 아들 잘했네... 김가루랑 이것저것 골고루 잘 넣었네...
나중에 여자친구 만나면 아들이 이렇게 해주어야 해. 알았지?"
옆에서 듣던 딸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웃었다.
"딸! 속으로 너 나 잘해!라고 말했지?"
"어. 연애를 왜 해? 연애는 애정결핍증이 있는 두 남녀가 만나는 거야.
우리처럼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들은 연애할 필요 없어. 머리만 아파!"
"딸! 결혼은 안 해도 사랑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좋은 거야.
애정결핍이 있어서 만난다는 것도 인정해. 하지만 사람은 완벽할 수 없잖아. 그런 점을 서로 보안해 주면서 서로의 마음도 공유하고, 서로 아껴 주는 거야. 사랑하면 표정부터 달라져. 사랑하면 너무 행복해!ㅋㅋㅋㅋ"
항상 사랑을 주고받기 좋아하는 나는 나의 기분에 도취돼서 말하고 있었다.
"글쎄! 엄마 아들과 나는 우리끼리 잘 지낼 거 같아. 애정결핍이 없잖아.
애정결핍 쩐 사람들 신경 쓰면서 살 필요가 뭐 있어 이렇게 좋은데...ㅋㅋㅋ"
나는 여기서 요즘 젊은 사람들의 놀라운 생각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애정 결핍을 채우주기 위해 만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사랑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사랑은 '많은 애정과 관심을 포함한 강렬한 감정의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포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랑은 '관용성을 가지고 있어 상대방의 약점이나 부족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여겼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자신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의 행복을 위해 나 자신을 많이 포기했다.
아이를 키우는 15년 동안 나는 나의 삶을 거의 살지 않았다.
결혼 후, 경제적인 해결을 위해 학원을 운영했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을 잘 키워야 한다. 돈도 좋지만 자식이 잘못되면 돈도 필요 없다'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모든 사랑과 내가 좋아하는 돈과 정성을 아이들과 남편에게 받쳤다.
그러면서도 아깝다거나 억울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잘 크는 모습에 만족감이 충만했다.
하지만 우리 딸의 생각은 너무나 달랐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랑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자식도 절대 낳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키우기 힘든 자식을 낳는 것은 찬성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랑이 '애정결핍이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 달라면서 만나는 관계'라는 말은 정말 쇼킹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개념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인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자녀 중심적인 현대사회에서 이들이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인터넷과 혼족 생활의 편리성으로 이루어진 우리 자녀들의 세대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어떻게 변화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