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더위에 에어컨 친구인 여름은 점차 사라지고, 시원스러운 비와 함께 찾아온 오늘은 가을을 알리는 서늘함을 전해주는 날이다.
매일 아침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잠을 깨던 번잡한 여름이 점점 가라앉는 듯하다. 대신, 저녁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귀뚜라미의 속삭임이 가을의 입장을 알려주고 있다.
가을 하면 예쁜 색으로 물들어진 낙엽이 떨어지는 산의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그런 가을을 느끼기 위해 북한산의 풍경이 모두 보이는 카페를 찾아간다.
3년 전, 시시각각 변화하는 산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보기 위해 열흘 정도 매일 갔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지 않는 비싼 커피나 음료를 마셔야 하는 부담감은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자연을 통해 얻는 감동은 모든 것을 보상해 준다. 알록달록한 자연에서만 나올 수 있는 수채화 색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색의 변화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세상 아름다운 모든 것을 다 같은 느낌이다.
나에게 있어 가을 하면 또 다른 소중한 추억이 있다. 그중 하나가 곶감을 만든 기억이다. 중학교 시절, 친한 친구의 집에 감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가을만 되면 친구는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었다. 나도 몇 번 친구가 따온 감을 깎아서 바구니에 담아 옥상에 같다 논 기억이 있다. 감은 점점 말라가면서 달콤한 향기가 풍긴다. 친구는 항상 우리가 만든 곶감을 선물로 주었다.
결혼 후, 큰딸이 5~6살 때였던 것 같다. 남편과 딸이 유난히 곶감을 좋아했다. 그때만 해도 가족 건강을 위해서 음식은 가능한 한 만들어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특히 곶감은 만들어서 파는 것보다 집에서 만든 곶감의 당도가 월등히 높았다. 연시가 익어가면서 말랑말랑할 때 하나씩 따먹는 그 맛은 파는 곶감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신기한 단맛을 선사해준다.
나는 인터넷에서 곶감 걸이를 먼저 주문했다. 그리고 연시는 10kg에 알이 70~80개 들어있는 대자나 특대시켰다. 이상하게 나는 대봉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봉의 특유의 단맛이 싫다.
보통 30kg 정도 주문을 한다. 그러면 밤새 감을 깎아야 한다. 나중에는 손가락도 아프고 허리 무릎 등 온몸이 쑤신다. 하지만 다 깎아 놓은 감은 부자가 된 것 같은 뿌듯함을 준다.
"이 많은 곶감을 언제 다 먹지?"라고 내가 말하면, 딸은 옆에서 "언제 먹을 수 있어? 빨리 먹고 싶다."라며, 웃는 이쁜 딸을 보면 깎을 때의 힘든 고통이 모두 녹아버린다.
감은 딸 방 창문에 매달아 놓고 모든 가족이 하루에 몇 번씩 들여다본다. 3-4일 정도 지나면 그때부터 만져 본다. 말랑하고 맛있어 보이는 감부터 하나씩 따 먹는다. 거의 200개 이상 깍아 걸어 둔 곶감은 10일 정도 지나면 100개 정도로 줄어있다. 곶감 걸이 여기 저기서 "내감 돌려 주세요!"라고 말하듯 코다리만 달려있다. 오며 가며 하루에 2-3개씩 따 먹는 남편과 아이들은 얼굴에 만족감이 가득하다. 맛있을 때 옆집 아주머니나 주위 분들도 몇 개씩 드렸다. 말린 곶감을 정리하다 보면 허무해진다. "에게…. 이게 뭐야? 그 많던 곶감은 어디로 간 거지? 언니도 주고 친한 분들도 만나면 주려고 했는데…."라고 말하면 또 한 번 말린 기억이 난다.
지금은 안 좋아진 몸 상태 때문에 곶감 말리는 일은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가을을 부르는 소리가 예쁜 연시와 곶감의 즐거운 기억을 상기시켜준다. 가을의 아름다움은 이처럼 나에게 따뜻한 감동도 선사해준다. 건강상 올해도 가을 산은 갈 수 없겠지만, 카페에 가서 북한산의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변화를 감상하며 가을을 느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