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일지 3
2022/09/13
리허설 후기: 동균- 1시간
너무 속상하다. 이 사람은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벽이 있는 것 같고 수비하고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게 너무 느껴지는데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나의 거울일 뿐이라서 이 사람에게서 느끼는 얕음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이 사람의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은 내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꾼다. 그뿐이다. 내 인간성은 왜 이렇게 언제나 부끄러울 뿐일까. 정말 부끄러운가? 부끄러움을 느낄 때 나는 나 자신을 귀하게 느끼고 있는가? 이 부끄러움은 아픔에서 기인한 것이고 내가 부족한 부분은 살면서 알게 되고 배우고 그렇게 될 테니 내려 두고 성급하게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재단하지 말자. 그런데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마음을 열도록 어떻게 해야 할까. 동균 오빠는 눈뜨고 사람을 찔러놓고 자기는 모르고 억울해할 것 같은 사람이다. 악의 없이 자기 좋은 일을 해놓고 먼 훗날 알고 와서 미안하다 말할 사람이다. 그래서 이 사람이 밉고 위험하게 느껴졌다.
내 안에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시점으로 보면 그 누구도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없을 거다. 모두가 나를 실망시킬 것이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울어댄다. 속상해한다. 나는 눈앞에 있는 동균에게 나의 사랑이 되어달라고 요구한다. 이 사람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모른다고 하지 마라.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슬픈 것이다. 슬퍼서 자꾸 멍을 때린다.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린다. 이 굶주린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긴. 너는 거기 있구나. 그래 거기 있구나. 그렇게 알아줄 뿐이다.
내가 느끼는 것을 귀하게 여기자. 나는 그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어여삐 여기자. 나니까.
연우님의 인스타를 염탐했다. 연우님은 감성적인데 INTJ 인 것 같은 느낌. 이 분에게서 배울 것은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고 드러낼 줄 아는 사람.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배울 점이 있다.
내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넌 화만 내’라는 콜은 사실 우리 엄마가 떠오르는 말이다. 우리 엄마는 나한테 고집만 부린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내 마음은 알아주지 않은 채 날 비난하기에 바빴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서로를 그 입장에서 바라봐줄 줄 몰랐다. 자기 입장에서만 바라보기에 바빴을 뿐이다.
근데 나는 그걸 싫어하면서도 여전히 내 입장에서 바라보고 상대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거리를 둔다. 무서우니까. 그와 엮이면 예전의 나로 돌아갈 것 같은, 원하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 같은 그것. 그 풀에 빠지지 않으려고 이렇게 거리를 두고 있다. 그게 옳은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그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것일까.
연우님을, 동균오빠를 나보다 더 나은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기죽지 말자. 인간의 미운 점을 보면 그게 미워서 미쳐버릴 것 같다. 그게 너무 밉다. 그 사소한 게 나를 돌아버리게 한다. 너에게 거리를 두고 등을 돌리게 만든다.
이 끝없이 바라고 외롭고 흔들리는 아이가 배워야 할 단어
- 아님 말고
- 어쩌라고
나는 오지 않는 그들을 기다린다. 유치원 때도 오지 않는 친구들을 해가 넘어가도록 기다렸고 치과에서 오지 않는 관계자들을 기다렸고 학원에서 너를 기다렸고 대학교에서 오지 않는 선배를 기다렸고 여전히 오지 않을 그를 기다린다. 영원일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기다림은 지친다.
기다림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기다림은 내 숨을 막는다.
기다린다는 말도 안 해놓고
나는 기다린다.
기다린다는 말을 못 하고
나는 기다린다.
원하는 바를 말하지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고 원하면서 상처받는 내 패턴은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까?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아닌가. 너를 밀어내는 힘은 언제나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지기 마련이고 당기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지고 만다. 내 삶을 신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삶을 신뢰하면 부끄러움은 사라진다.
나는 그렇게 싫어하고 혐오하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덕분에 성장했다. 그들을 그렇게 미워하고 밀어내야 할까. 그들이 정말 위험대상일까. 처음에는 그들이 나와 너무 다른 것이 이해가 안 되고 싫었다. 그들의 진심은 알 수 없고 한없이 가볍기만 했다. 지금은 그들이 나와 달라서 좋다. 귀엽고 심심하지 않고 신난다. 그냥 사랑스럽달까. 사람을 미워하면 내 손해다. 사람을 미워하는 내가 밉다. 사람이 어떻던 존중하는 마음을 먼저 꺼낼 수는 없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