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건 한 번 더’였나? ‘멋있는 건 한 번 더’였나? 뭐가 됐건 좋은 걸 한 번 더 하는 건 불변의 진리이다. 그래서 맛있는 국수 이야기를 이어서 쓰는 것이고…
국수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다. 소고기 향이 진하게 밴 육개장 국수도, 살짝 투박하게 보이는 선짓국에 말아먹어도, 언제나 괜찮은 추어탕 국수도. 그런데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괜찮은 조합이 있다. 돼지 국수. 어딘가 좀 어색한 명칭이긴 한데, 어쩌겠는가? 달리 부를 이름이 없으니.
누군가가 알려 준 소읍의 중심도로에 면한 허름하고 길쭉한 식당에 앉는다. 잡내 없이 깔끔하게 잘 끓인 돼짓국과 함께하는 국수. 진한 국물과 푸짐하게 들어있는 돼지고기와 면발이 환상의 조합이다. 왜 이걸 하는 가게가 많지 않은 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만! 그러고 보니 제주의 고기국수도 돼지고기가 베이스였던가?
뽀얗게 우려낸 육수에 잠긴 국수 면발에 구수한 돔베고기 몇 점을 맛깔스럽게 올린 제주의 고기국수. 제주를 찾을 때면 꼭 먹겠다고 다짐하지만 먹기가 생각보다는 힘든 게 이 음식이다. 왜냐고? 고기 국숫집이 귀해서? 가격이 비싸서? 그럴 리가. 대부분 여기까지 와서 국수 먹자고? 에 부딪혀 무산되고 만다. 그러고 보면 국수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쨌거나 또 다짐해 본다. 이다음 제주에 가면 꼭 먹어야지 하는 약간 소심한, 소박한, 소소한, 사소한 그런 다짐.
칼국수도 당연히 국수다. 당연한 말인가? 5일 장이 서는 시장에 맛있는 칼국수집이 있었다. ‘있었다’라는 것은 불행히도 지금은 영업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이 펄펄 끓는 커다란 솥 옆에서 젊은 사장님이 주문량에 따라 그때그때 국수를 썰어내고 익혀서, 별다른 고명 없는 칼국수를 테이블에 내는데, 그 간단하고 조촐함 때문일까? 면발은 깔끔한 맛을, 뜨끈뜨끈한 국물은 뜨끈해서 시원한 맛이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닫아버린 문이 아쉬웠는데, 우연히 버금가는 칼국수집을 알게 된다. 당일 여행의 귀갓길 저녁 식사 장소로 들어간 가게였는데, 옛날 칼국수 맛이 나는 거였다. 깔끔하고, 뜨끈해서 시원한 그 맛. 이후 타지에서 다니러 온 몇몇 지인들과 그 맛을 나누었는데 다들 좋단다. 다들 좋아하니 맛있는 것인가? 맛있으니 다들 좋아하는 건가?
성향이라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국수를 좋아하니 당연히 라면도 좋아하고, 냉면은 물론 밀면도 좋아하고, 호불호가 갈리는 고수 향 진한 쌀국수도 좋고, 파스타의 살짝 느끼함도 좋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건 정성이라는 게 들어간 아내표 집 국수 아니겠나? 이거 아부?
잘 삶아진 국수에, 멸치와 다시마 등을 아낌없이 넣고 우려낸 육수를 붓고, 그 위에 호박 나물, 계란지단, 어묵볶음, 부추나물, 총총 썬 김치, 김 가루 등 갖은 고명을 얹는다. 간장에 다진 마늘, 다진 고추, 고춧가루 등을 넣고 참기름으로 마무리한 양념간장으로 간을 맞춘 다음, 후루룩 마시듯 먹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 맛있고, 맛있는 만큼 빠르게 그릇은 비워지고 이어지는 포만감과 만족감. 사는 게 별거 있나? 행복이란 게 별 건가? 싶은 시간이다.
좋아하는 국수 이야기를 국수만큼 길게 했다. 하얗고 긴 국수는 장수의 의미를 지닌 음식이란다. 그래서 결혼식이나 환갑 등 잔칫날에 손님들에게 대접해 왔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의미의 맛있는 음식이 국수다. 맛있는 국수처럼 맛있는 대화를 하고, 맛있는 관계를 맺고 사는, 맛있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아니 세상 모든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