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럽고 시끄러운 게 싫은데 딸내미가 몹시 서두른다. 무슨 일에 목소리가 크지도, 여간해선 바쁘지 않은 아인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 것 같기도 하다. 가족여행 내내 단 한 번도 계획한 일정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으니. 특히나 여행 마지막 날인 오늘은 가족사진을 찍기로 한 스튜디오에 시간 맞춰 가야 하고, 시간 맞춰 촬영을 마쳐야만 비행기 시간에 닿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저 소란스러움이 조금 불편하긴 하다.
아이들이 제주 여행을 하자네요.라는 아내의 전언을 들었을 때, 갑자기 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행을 종용한 적도 그런 눈치를 준 적도 없었고, 아이들 역시 무슨 조짐을 보인 적도 없었기에. 뭐 그래도 좋긴 했다. 그날이 그날 같은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았지만, 어느새 늙어버린 건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생긴다는 게 더 좋았다. 그렇게 떠난 제주 여행이었다.
오늘 일출 맞이까지는 느긋했다.
전날 새벽, 아무도 움직이지 않기에 혼자 숙소를 나와 어딘지도 모르고 더듬더듬 닿은 곳이 일출 명당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다는 듯 제법 많은 사람이 바다에서 얼굴을 내미는 해를 보며 탄성을 지르고, 사진을 찍고 그랬다.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내일은 같이 가잔다.
그래서 성산 일출봉이 보이고, 수평선이 보이고, 일출도 볼 수 있는 등대에 느긋하게 다녀왔다. 그리곤 식사하고 옷가지를 챙기는 등 출발 준비를 하는데 이게 너무 늦어진다. 아무래도 한 살, 세 살 손녀가 시간을 삼키는 것 같다. 소란스러움을 피해 슬그머니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온다.
스튜디오까지는 30분 거리다. 다행히 시간은 괜찮을 것 같다. 내내 운전하는 사위가 길을 찾는다. 결혼한 지 1년 조금 넘었나? 살가움은 없으나 까칠하지 않고 무던해 보여서 안심이 된다. 게다가 착하지 않은가? 편하지만은 않을 게 뻔한 처가 부모들과의 여행에 별말 없이 함께하는 걸 보면.
사진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게 아니란다. 제주스럽게 야외 촬영인 모양이다. 키가 크고 서글서글해 보이는 사진작가가 앞선 길을 따라간다.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어쩌지 싶은 좁은 길을 제법 오래 달려 길쭉하게 쭉쭉 뻗은 나무숲에 도착한다. 막 눈으로 봐도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은 장소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비쳐 드는 햇살과 검은흙바닥과 그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키 작은 식물들이 조화롭다.
빛이 잘 스며드는 장소에 가족 모두 일렬로 선다. 발끝을 가지런히 모으고 옆 사람과 손을 잡는다. 너무 구태의연한 포즈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래야 잘 나오나 보다. 하며 렌즈를 응시한다.
언젠가도 이랬었지!
옛날, 옛날 한 옛날, 까마득히 오래전 신혼여행의 성산 일출봉. 나는 결혼식장에서 입었던 검은 양복 차림이고, 아내는 노란 저고리에 빨간색 한복 차림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여행하기엔 정말 불편한 차림이지만 그땐 다 그랬으니 뭐.
어깨를 안고 눈길을 멀리 향하란다. 업으란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란다. 손바닥을 수평으로 펴란다. 그리고 아내는 경사진 언덕의 뒤편에 서란다. 이른바 손바닥 사진. 그래, 그때도 그런 걸 했었어.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어색한, 그리고 구태의연한 포즈를 취하는 거. 중매로 만나 결혼하기까지 두어 달의 기간 거의 매일 만나서 연애인지 중매인지 헷갈리던 아내와 함께.
노란 저고리의 곱던 색시는 아들 하나 딸 하나의 어머니가 되었고, 두 손녀를 둔 할머니가 되었고, 검은 양복의 신랑은 그 곁을 지키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잘 살아온 삶일까? 남은 삶도 잘 사는 삶이 될 수 있을까?
“안 되겠네요. 가족사진은 조금 있다가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부부 사진을 먼저 찍으시죠.” 손녀들이 당최 촬영에 협조하지 않으니 사진작가가 순서를 바꾸자고 한다. 그러는 게 좋을 듯하다. “아버님, 어머님이 먼저 이쪽으로 서시지요.” 우리 부부 먼저 찍으란다. 이것도 장유유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