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음의 행복

이제는 다만, 일상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by 김종열

별 일이 없다는 것은 따분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것이라는 건 별 일이 생기면 알게 된다. 사건의 발단은 초보 견주인 생각이 없는 할배와, 오래간만에 집에 온 엄마의 무지에서 시작되었다.


유난히 부산스러운 날의 아침, 유난히 많은 밥과, 유난히 많은 배변 패드를 깔아 둔 채, 할배, 할매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설 때, ‘얼마간은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기다림 모드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현관 도어록 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평소 자주 보았던 부자(까칠하기 그지없는 흰색 스피츠) 엄마가 나를 안고서는 강아지 호텔이라는 곳에 맡기고선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은 ‘또 버려졌구나.’였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일주일 전쯤부터 내가 지낼 곳을 왕래하면서, 그곳의 냄새와 사람들과 낯이 익게 한 후 맡겨야 하는데, 초보스러운 생각 없는 할배가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며 이웃에게 나를 맡겨 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또 버려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버려진 강아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슬픈 눈동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멍한 상태가 될 수밖에. 그리고 이번에는 지독한 상실감에 밥 한 톨, 물 한 모금도 넘어가지 않았으니…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즈음 정말 기적같이 내 눈앞에 할배와 엄마가 나타났다. 처음 몇 초간은 실감이 나질 않아 멍했고, 다음은 엄청난 반가움에 몸부림쳤고, 다음은 까닭 모를, 아니 까닭 있는 설움이 밀려와 나는 할배 품에서 기어이 꺼이꺼이 목 놓아 울고 말았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강아지도 짙은 설움에 복받치면 울게 된다니깐.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팠다. 아픈 마음이 몸까지 아프게 한 것 같았다.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어쩌다 넘긴 간식은 바로 토하게 되고, 설사를 하고, 그렇게 죽을 듯 아팠다.

나를 살린 건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할매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황태국을 끓인 것이다. 뽀얀 황탯국은 그나마 조금씩 삼킬 수 있었고, 토하지도 않아서 나는 차츰 원기를 회복하였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할매는 그렇게 내 생명의 은인이 되었지만, 이 할매는 좀 많이 나를 힘들게 한다. 발톱을 깎자 느니, 목욕을 하자 느니, 이빨을 닦자 느니, 빗질을 하자 느니 하는 일들로 말이다.

가장 힘들었든 건 내 털을 홀랑 깎아 버린 일이다. 내 털이 길기도 하거니와 이중모여서 청소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건 나도 아는 일이다. 그렇지만 한 마디 상의 없이, 예고 없이 털을 깎아 버리면 그 부끄러움을 어찌하라는 것인가? 나는 내 엉덩이를 보이지 않으려고 후다닥 이곳으로 와서 앉고, 저곳으로 가서 숨곤 하였다. 이해할 수 없다고? 발가벗긴 채 바깥에 나와 있다고 생각해 보라 바로 그런 기분이다.


세월이 약인 건 확실한 것이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옮겼을 때의 어리둥절함도, 초딩들이 있는 집으로 보내졌을 때의 황당함도, 강아지 호텔에 맡겨졌을 때의 상실감도, 털을 몽땅 깎였을 때의 수치심도 어느덧 기억 저편의 일이 되어 버렸으니까.

이제는 다만, 일상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별일 없음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 개 세이(개+에세이, 개+say)는 반려견의 관점으로 쓴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