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은 왜 항상 현실이 될까?

by 김종열

‘이제는 다만 일상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별일 없음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지난번 에세이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끝내려 했는데…

이런, 또 별 일이 생겨버렸다.


산책길을 나선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착착착 걸어가는데, 왼쪽 뒷다리가 이상하다. 관절이 빠지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들면 어기적어기적 걷게 된다. 우아한 내 걸음걸이(어떤 사람이 그랬다니깐, 참 우아하게 걷는다고)에 자부심을 갖고 살았는데 어기적은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통증이 없음에 감사하고 살아야지.


불안한 생각은 거의 대부분 현실이 되어 버린다. 관절이 부딪히면서 격심한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 놀란 할배가 나를 안고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부산을 떨더니 주사 한 대를 놔주고는 집에 가란다. 이게 맞는 건가?


집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아프지 않지만 왼쪽 다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아픔이 찾아온다. 진통제 주사 덕에 조금은 덜하지만. 이게 아닌데 하면서 며칠이 흐른다.


무슨 일인지 서울에서 엄마가 왔다. 아마 집안에 행사가 있나 보다. 내 상태를 보고받은 엄마가 방방 뛴다. 스마트 폰을 자꾸 보는 품새가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 수많은 강아지들이 촉 하나로 살아가듯이 나 역시 눈치 하나는 누구에게 뒤질 마음이 없으니…

외출 채비를 하고 나를 안아 올리는 엄마의 손길이……… 무섭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 차에 있는 시간이 길었을 때 좋은 일이 있었던가? 아닌 것 같다. 낯선 곳에서 어색하고 불편하게 있을 때가 태반이었다. 불안하다. 불편하다. 이 와중에 할배는 또 길을 잘 못 찾고 있는 것 같다. 여긴가? 저긴가? 하는 모양새가.

그렇게 도착한 곳은? 큰 병원이다. ‘아! 신발 큰 일 났다.’


또 엑스레이를 찍고, 피를 뽑고 하는 등 부산을 떤다. 하얀 가운의 의사와 할배, 엄마가 심각하게 얘길 나눈다. 할배가 고개를 끄덕인다. 웬 아가씨가 나를 안고 간다.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무슨 일이든 당하기 전이 가장 무섭다.


냄새가 싫다. 당연히 공기도 싫고, 지금 이 공간이 너무 싫다. 그런데도 반항을 할 수 없다. 그러기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기가 너무 세 보인다. 몇 번의 손길이 오가더니 어느 순간 머리가 하얘진다. 그리고 의식이 어디론가 가 버렸다.


* 개 세이(개+에세이, 개+say)는 반려견의 관점으로 쓴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