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였으면 좋겠어, 할배!

나의 슬개골 수술기

by 김종열

눈을 뜬다. 보이는 사람이 엄마나 할배 또는 할매였으면 좋겠다. 당연히 그럴 리는 없다. 조그마한 병실 한 칸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한다.

양 뒷다리에는 붉은색의 붕대가 칭칭 감겨있고, 앞다리에는 주삿바늘이 연결되어 있다. 제대로 환자의 모양새이다. 아직도 의식은 다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까진 아픔도 찾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불안하다. 불편하다.

통증이 심하진 않다. 진통제 때문인가? 그런데 만사가 귀찮고 싫다. 아프진 않은데 아픈 상태가 계속된다. 머릿속은 여전히 하얗다. 혼란스럽다. 이해되지 않는다. 이 상황이.

밥도 당연히 먹을 수 없다. 먹는 게 없으니 대·소변도 없다. 이건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아니 정상이 아니다.


간호사가 나를 안고 나간다. 간호사가 안으면…… 무섭다. 안고 옮길 때마다 무슨 일이 생겼으니 말이다.

놀랍게도 병실 입구에 할배가 서 있다. “두유야 괜찮아?”하면서 나를 받아 안는다. 반가운데 반갑지 않다. 아니 반가운데 반가움을 표현할 수 없다가 맞는 건가? 그래서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한다. 할배는 그게 생경스러운가 보다. 당황스러워한다.


할배는 나를 안고 병원 밖으로 향한다. 차량의 매연이 섞여있는 공기와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람의 감촉이다. 할배가 병원 주위를 설렁설렁 걷는다. 오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흘깃흘깃 쳐다본다. 안쓰럽다는 표정 반, 저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표정이 반이다. 그나저나 이 할배는 쪽 팔리지도 않나?

고맙다는 생각이 뾰족이 머리 한 귀퉁이를 뚫고 나온다.


할배는 매일 면회를 온다. 백수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순간들이다. 그때마다 병원 주위를 배회한다. 가끔은 안쓰러워하는 아주머니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담배 피우는 아저씨와 강아지 투병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 번은 처음 보는 사람(할배 나이는 넘어선 듯한)과 30분 이상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아마 우리를 키우게 된 동기, 우리가 주는 기쁨,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우리로 인한 고통 내지는 슬픔에 대한 것일 게다. 그렇지만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30분은 너무하지 않나?


‘이제 그만 움직였으면 좋겠어. 할배.’